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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흔히 불종자(佛種子)라는 말을 많이 쓴다. 부처님의 씨란 말일게다. 부처님의 종자를 많이 뿌려야 많은 부처님께서 등장하실 테니까. 그러면 부처님의 종자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뿌려야만 하는 것일까. 부처님께서 “법이 불이요. 불이 법”이라고 하셨다. 결국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 가르침에다 비겨보면 부처님의 법문 즉, 부처님의 가르침이 불종자일 수밖에 없다.
부처님의 법문을 끊임없이 펼쳐야 무량중생들의 마음 가운데 부처님의 종자, 보리의 종자를 많이 뿌리는 것이 된다. 성실한 농부가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을 거두는 것처럼 끊임없이 법문을 펼치는 사람은 마음 가운데 부처님을 탄생시키는 것과 같아 그 공덕은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부처님 말씀 한 말씀 남에게 설해주는 것이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 보시하는 것 보다 크다고 하신 말씀과 맥을 같이 한다.
농부가 우량종을 골라 씨를 뿌리듯 부처님의 법을 많이 펼쳐야 이 땅은 불국토가 된다. 눈을 뜨면 온 세상이 그대의 복밭임을 알라하는 가르침 역시 온 세상 무량중생들의 마음 가운데 부처님의 법을 펼치라는 가르침과 무엇이 다른가. 부처님 법 이상으로 탁월한 씨가 또 있는가. 씨앗은 항상 열매를 만들기에 인과(因果)란 말을 쓴다. 씨앗이 자라 열매가 되는 것처럼 법을 펼치면 그 결과물인 부처님이 계속 탄생할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 부처님을 탄생시키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또 있는가. 포교를 해야 불교가 산다. 포교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문화포교, 수행포교 등등 모든 포교가 하나같이 법을 근간으로 한다. 무량중생들의 마음 가운데 보리수를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길 그 길은 불종자, 보리의 종자를 심는 일이다. 불교의 가치를 드날리고 부처님의 이상을 실현하는 길은 부처님 법을 펼치는 길이다. 법을 알아야 참선도 한다. 법을 모르고서 참선을 할 수 있는가. 최상승이라고 하는 선의 경지도 법이 뒷받침 돼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탁월한 선사들의 경지도 하나같이 탁월한 법의 연마를 통해 가능했다.
초전법륜이란 것도 다섯 비구에게 설하신 것 아닌가. 가르침을 전달해야 의의가 있는 것이고 부처님께서도 “떠나라 만중생의 이익을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해 떠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덜한 자도 있으나 법을 듣지 못하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그들도 깨달을 것이다”고 말씀하지 않았던가.
법을 전하는 것은 다목적이다. 법을 전해 그들로 하여금 발심하게 하고 그 결과 그 가르침을 실천하게 될 것이며, 부처님의 고귀한 가르침의 이상을 이 땅위에 실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법화경’에서 “너희들은 마음을 다해 이 가르침을 전파해 세상을 널리 이익되게 하라”하지 않으셨던가. 부처님 법을 전달함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을 평안케하고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으며, 온 세상에 물질을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크나큰 이익을 이 땅위에 펼칠 수 있다. 진정 가장 중요한 공덕행인 것이다. ‘금강경’뿐 아니라 모든 경전들이 하나같이 법을 펼치는 공덕이 무량함을 한없이 강조하지 않으시던가.
그 어느 곳에 있던지 부모, 친척, 친지들을 위해 힘껏 법을 설하라. 그러면 그 사람은 듣고 나서 기뻐하여 다시 부처님을 대신해 법을 설할 것이며 그것을 들은 사람들 역시 기뻐하며 부처님을 대신해 가르침을 설함으로써 차례차례 부처님 나라로 만들어갈 것이다. 불법의 홍포야 말로 불제자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 불법을 펼치지 않으면 불자가 어떻게 생겨날 것이며, 불교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배달겨레는 선조들 덕분으로 불교의 맥이 이어져오고 있지만 점차 법을 펼치려는 노력이 미약하기에 불교가 점차 취약해지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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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 스님 서울 능인선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