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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정(定) ②

기자명 법보신문

선정수행의 궁극은 자아의식의 멈춤
진정한 자유는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우리는 지난 호에서 주의를 한 곳에 집중해 산란하고 복잡한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고 멈추게 하는 선정(禪定)수행이 정서를 안정시키고, 조절하고, 자각하는 능력을 증진시키는 최고의 치유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선정수행이 치유적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정서, 감정의 뿌리가 아만·아애·아견·아치의 네 가지 자아의식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다. 또한 선정수행의 궁극적 목적은 감정, 정서의 고요함이나 편안함을 넘어 자아의식의 작용을 멈추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이는 선정수행의 의미와 가치가 우리 마음의 거울을 깨끗하고 맑게 유지함으로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볼 수 있도록 하는데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욕망이나 화, 무지로 인해서 현상을 왜곡하거나 투사하지 않고 얼마나 있는 그대로 잘 비출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네 가지 자아의식의 작용여부와 그 정도에 달려있다.


그러면 치유적 관점에서 위의 사실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는 흔히 선정수행의 궁극적 목표는 주관과 객관의 구분이 끊어진 적멸한 상태인 삼매체험에 있다고 들어왔다. 그런데 만일 그와 같은 삼매체험이 일상의 삶에서 자아의식의 작용기능을 완화시키고 약화시킴으로서 보다 원만하고 조화로운 인간관계와 행동방식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삼매가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다시 말해 자아의식의 작용이 멈춤으로서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아는 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선정상태의 체험이 이후의 일상의 삶과 인간관계에 전이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선정수행이 현실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 마음, 온몸으로 자아와 현실을 직면하고 극복, 초월하도록 돕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런데 자아의식이 왜 나쁜가? 자아의식이 작용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대주혜해(大珠慧海) 선사가 수행의 효용을 묻는 질문에 보통 사람들은 밥 먹고 잠자면서 온갖 잡생각을 다하지만 자신은 밥을 먹을 때는 그저 밥을 먹고, 잠을 잘 때는 그저 잠을 잘 뿐이라고 대답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여기서 잡생각은 일종의 자아의식이다. 자아의식이 작동하면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경험을 있는 그대로 체험하지 않고, 그 경험에 대한 소유권을 투사하게 돼 나의 경험, 나의 생각, 나의 느낌이라고 주장하고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이 다르고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갈등하게 되고, 그것이 지나치면 미워하고 분노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의 경험은 있는 그대로의 신선함을 잃고 퇴색하게 되어 더 이상 여기-지금(hear and now)의 경험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심지어 자아의식은 우리가 사랑할 때도 그냥 사랑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체험 그 자체는 우리들로 하여금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하고 존재감의 극치를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삶은 고통이 아닌 선물임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런데 자아의식이 작동하게 되면 사랑의 대상에 집착하게 돼 그 결과 사랑은 사라지고 소유권, 집착만이 남게 된다.


이처럼 자아의식은 체험을 체험으로 두지 않는다. 체험의 다양성은 그 자체로 신선하고 고유하기 때문에 호기심을 자극하고, 창의적이다. 그런데 자아의식은 우리들의 다양한 인생체험과 경험, 그리고 그 대상들을 분별하고 비교해 우열을 가림으로서 열등감과 우월감을 조장한다. 또한 옳고 그름의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비난·칭찬·인정 등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만든다.


▲서광 스님
선정수행은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고요히 잠재우고, 출렁이는 마음들의 틈새로 드러나는 자아의식의 존재를 조금씩 알아차리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 모양이 완전하게 드러나고 선명해지는 순간, 우리는 마침내 우리들의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서광 스님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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