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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혜(慧) ③

기자명 법보신문

몸 떠난 마음은 망상일 뿐 깨달음 존재치 않아
몸을 바탕으로 바르게 보고 사유하며 정진해야

우리는 신체감각을 바탕으로 아는 앎이 세 가지 앎의 방식 가운데 두 번째 방식인 직관, 통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는 몸으로 아는 앎은 추론이나 판단 등의 인지, 지각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아는, 언어 이전의 직관적 앎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선정수행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더러는 신체감각을 통한 지혜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이들은 수행과 신체학대를 착각하기도 한다. 그들은 몸과 마음의 기능을 혼동하거나, 몸의 건강과 유지를 위한 정상적인 반응을 비정상적이고 불건강한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성충동 속에는 애정결핍, 사랑과 인정에 대한 욕구, 스트레스 등 심리적 요인이 엄청나게 개입함에도 그들은 그것을 순전히 마음이 아닌 몸의 생리적 욕구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마음대신 몸을 무시한다. 이는 마치 자신의 억압된 성충동에 위협을 느낀 남성이 역으로 여성이 자기를 유혹한다고 투사하고 착각해서 여성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과도 같은 원리다. 또 ‘유식30송’에 의하면 수면의 욕구 자체는 선(善)/불선(不善)이 아니라 중성적 성질임에도 불구하고 건강유지를 위한 정상적인 필요를 마구니라 부르면서 잠이 오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다는 선지식의 깊은 뜻을 외면한다. 그들은 마치 고도의 집중, 몰입이 잠자는 것조차 잊게 만드는 현상을 거꾸로 잠을 자지 않음으로서 집중하게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우리의 몸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지혜롭다. 몸을 통해서 아는 앎을 우리는 몸의 감각(body-sense), 몸의 느낌(body-feeling/felt), 또는 몸의 지혜(body-wisdom)라고 부른다. 한때 타이, 미얀마 등지에서 승려생활을 한 후 미국으로 돌아와 수행지도를 하고 있는 임상심리치료가인 잭 콘필드(Jack Kornfield)는 “우리 몸이 바로 부처”라고 강조하면서 우리는 깨닫기 이전에도 몸을 통해 살고, 깨달음을 이룬 이후에도 몸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티베트의 스승 총카파는 우리의 몸은 오직 이번 한 생애에서만 우리의 것일 뿐 곧 사라져버릴 아름다운 것이니 그 어떤 보석보다도 귀하고 소중하게 다루라고 충고했다.


선수행에 입문하는 이들이 가장 흔하게 듣는 소리 가운데 하나가 선(禪)을 하려면 몸부터 조복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조복받고자 하는 그 주체는 누구인가? 만일 그것이 마음이라면 그 마음은 한마디로 주제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몸이 없으면 존재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과 몸을 함께 가지고 살아가는 정신-신체적 유기체다. 그런데 마음과 몸을 이원적으로 구분하고 마음을 몸의 우위에 놓는 것은 옳지 않다. 깨달음의 여정에는 마음뿐 만이 아니라 몸도 포함되어야만 한다.


치유적 관점에서 볼 때 신체적 심리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수행법은 비효과적이다. 잭 콘필드는 자신이 미얀마 사원에서 수행하던 때 스승의 지시에 따라 몸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집중수행에 몰입한 나머지 훗날 잃어버린 몸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수행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서광 스님

부처님은 우리 몸 안에 모든 가르침이 있다고 했다. 몸 안에 고통이 있고, 고통의 원인이 있고, 그리고 고통의 소멸이 들어있다고 했다. 몸을 떠난 깨달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몸을 떠난 마음은 망상일 뿐이다. 선에서 “여기 지금 머무르라”는 말은 바로 마음이 몸을 떠나지 말라는 이야기다. 마음이 몸을 떠나는 순간이 바로 잡념의 순간이기 때문에 마음을 다시 몸의 일부인 호흡에, 단전에, 또는 여러 가지 차크라로 데려오라고 하는 것이다. 몸은 지혜의 보고다. 팔정도에서 올바르게 보고, 사유하고, 노력하라는 가르침은 바로 몸을 홈그라운드로 삼고, 보고, 사유하고, 노력하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서광 스님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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