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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내가 어찌하여 잇펜(一遍) 스님에게 마음이 이끌리게 되었는가 하는 인연에 대해서도 기록해 두고자 한다.
스님을 알고서 마음에 깊이 새겨두게 된 것은 책을 통해서가 아니다. 또 시종(時宗) 사람들과 교류가 있어서도 아니다. 혹은 스님에 대한 가르침을 들었기 때문도 아니다. 전적으로 한 장의 그림에 빠져들게 된 것이 인연이었다.
나중에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그 그림은 교토 로쿠조(六條)의 간기코우지(歡喜光寺)에 전하는 ‘잇펜히지리에(一遍聖繪)’(六條緣起)였다. 그 12권을 모두 본 것도 아니고, 그저 한 장의 그림이었다. 그것도 원화(原畵)가 아니라 빈약한 망판(網版)의 복제였다.
장면은 대자연이 배경인데, 넓게 펼쳐진 물을 뒤로 해서 멀리로는 산들이 흐릿하고 기러기 무리가 저녁 무렵의 허공을 난다. 가까이는 모래사장처럼 보이는데, 거기에 몇 그루의 노송이 서있다. 그 가까이를 두세 명의 제자를 거느린 채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스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유구한 대자연 속에 지극히 작은 인간의 존재가 눈에 비친다. 그렇지만 불가사의하다. 바로 대자연에 몸을 맡겨온 인간에게서, 자연의 뜻이 모여져 있는 것같이 보인다. 끝이 없는 편력의 길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계속 걸어온 스님의 모습이야말로, 인간 그 자체의 모습은 아닌가. 적막한 이 광경이야말로 동양의 철리를 남김없이 묘사해 내고 있다. 이 그림의 주인공, 잇펜 스님은 어떤 사람일까? 유행(遊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한 장의 그림은 나로 하여금 스님을 사모하게 만든 기연(機緣)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장면은 ‘육조연기’ 1권에 나오는 것이고, 화가는 엔이(圓伊), 시대는 가마쿠라 말기이다. 일본의 두루마리 그림(繪卷) 중에 백미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인연이 정토교에 더 한층 나를 가깝게 했다. 그러나 구하고자 한 문헌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그만큼 잇펜 스님에 대한 책은 부족하다. 이것이 또 내가 이렇게 붓을 잡게 된 이유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님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나올 것이 틀림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이런 정도를 앞에 써 두고, 본문에 들어가 보자.
일본불교사연구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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