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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하는 언행에 신도들 발길 돌린다

기자명 법보신문
▲ 포교학 개론

태양은 온 천하를 비춘다. 빛이 안 드는 곳은 죽음이다. 부처님께서는 빛이요, 등불인 법을 믿을지언정 사람을 믿지 말라하셨다. 사람이 사람을 실망시키기에 사람을 믿다보면 신심도 떨어지고 부처님도 멀리하게 된다하셨다. 실제 자기가 따르던 사람이 속으로 돌아가 버리면 실망해 부처님을 멀리하게 되고, 자기가 따르던 사람이 사람들에게 비난을 사게 되면 속이 상하고 실망해 신심이 약해진다 하셨다. 그래서 사람을 믿지 말고 광명인 법을 믿고 따르라 하셨다.


백번 천번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법당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부처님이나 법이 좋아 나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스님보고 오는 것 아니겠는가. 절도 많고 교회도 많고 성당도 많은데 하필 왜 당신 절에 나가겠는가. 무언가 끌리는 것이 있어 그 절에 나가는 것 아닌가. 그럴 바에야 그 절의 스님은 항상 그 어떤 신도에게도 태양처럼 빛을 비추어야한다. 사람이 많아지면 바쁜 나머지 대단히 힘겨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 어떤 신도들에게도 환한 미소를 띠며 반기는 모습을 보이고 항상 부처님 말씀을 들려주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야한다.


태양이 만 생명을 살리듯 스님이 모든 신도들에게 고루고루 보살핌의 광명을 비추는 한 그 법당은 앞으로 살아나갈 수 있다. 어느 곳에는 비추고 어느 곳에는 비추지 않는다면 분명히 어두운 곳이 생길 수 있고 법당에 어두운 세계가 열릴 수 있다. 공기나 빛, 산소가 부족한 곳에 암세포가 자란다하듯 원리는 하나다. 신도들과의 소통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끊임없이 모든 신도들에게 광명을 선물하려는 마음을 가진 포교사, 법사는 분명히 성공의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법당은 계속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다. 새로 유입되는 신도들이 있을 경우 스님은 당연히 새 신도들에게 관심을 쏟게 마련이다. 새로 왔으니까 좀더 친절하게 대해야할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자연인이기에 세월의 흐름에 따라 힘이 부치기 마련이고 새로운 신도가 늘면 늘수록 더욱더 바빠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기존의 신도들은 예전 같지 않은 스님의 태도에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절에 “내가 왜 거기 가니” 그런 말을 내던지게 되고 발걸음이 뜸해 질 수 밖에 없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교회나 성당이 파리 날리는 이유를 아는가. 내가 미국에 가서 법회를 할 때 초청한 사람들이 호텔을 잡아 주었다. 호텔이름이 사람 이름이었다. 로저스 호텔이었던가로 기억된다. 대단히 훌륭하고 아름다운 호텔이었다. 호텔이름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목사님”이라는 대답이었다. 미국의 프로비던스라는 도시를 개창한 목사의 후예가 지은 호텔이라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등지의 과거 성직자들은 엄청난 부를 쌓았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이 다 목사들 이름 아닌가. 그들은 더 이상 고생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상태에 와있다. ‘구태여 신도들에게 시달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모두는 아니지만 서양에서는 그 결과 교회나 성당들이 점차 사양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신도들에게 몸과 마음을 다해 그들의 정신적, 영적 성장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신도들은 이내 떠나버린다. 십일조를 내는 여타 종교와 달리 절은 더하다.

 

새로운 신도들이 생겨나면 생겨날수록 기존 신도들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한다. ‘스님이 자신들에게 관심이 없는 데 꼭 그 절에 갈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생각한다. 참으로 포교당이나 절이 커지면 커질수록 희비쌍곡의 일들이 부지기수로 생길 수밖에 없다. 항상 부처님 마음이 되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선물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소외된 사람이 없도록 하는데 각별히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그 같은 일은 참으로 힘들다.

 

▲ 지광 스님

포교사는 그래서 항상 광명의 인간이 되어야한다. 갖가지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며 대승보살의 분신으로서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운명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지광 스님 서울 능인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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