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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가치평가와 소유의식

기자명 법보신문

주관적 좋고 나쁨은 이미 정신·물질 함의
윤리도덕적 가치와 경제적 소유 다르지 않아

소승적 도덕의 길은 점진적 변화의 길이나, 대승적 존재론적 사고의 길은 소유의 언덕을 넘어서 돌연히 나타나는 존재의 언덕으로 뛰어 들어감과 같다고 하겠다. 흔히 중국 선가에서 일컬었던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이를 상징한다. 깨침과 수행이 다 순간적 비약의 행위와 같다는 뜻을 안고 있다. 영가(永嘉)대사가 ‘증도가’에서 읊은 ‘근원에로 직절(直截)히 들어감은 부처님이 인가하신 바이요, (번잡하게) 잎을 따고 가지를 찾음은 내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로다’의 구절은 이를 두고 한 말이겠다. 대사의 말처럼 근원에로 직접 들어가는 일이 가능한 까닭은 내가 스스로 부처님의 마니주(여의주)를 내 마음 속에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영가대사의 말씀을 계속 더 보기로 하자. “여섯가지 신통묘용은 공이요 동시에 공이 아니고, 한덩이 둥근 빛은 색이면서 색이 아니로다. 오안(五眼)을 깨끗이 하여 오력(五力)을 얻음은 오직 증득해야 가능하지, 헤아림으로는 측량하기 어렵도다.” 여섯가지 신통묘용은 인간의 의식활동을 가능케 하는 여섯가지 근원(六根=眼耳鼻舌身意)을 가리킨다. 마음의 신통묘용한 미니주는 우리의 일상적 감각과 의식의 기능을 가리키는 육근을 제외한 별다른 곳에 신비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마음의 오묘한 작용은 우리 몸의 일상적 감각작용과 의식의 정신작용을 떠나서 별도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처되기의 길은 인간의 평상적 삶과 아주 다른 신비스럽고 기이한 일이 아니라, 바로 평상적 삶의 존재론적 운영이 바로 부처의 모습이라는 의미를 영가대사가 니타내고 있다. 중생의 일상적 육근의 작용은 보통 소유론적 사고방식에 얽매어 있다. 우리의 일상적이고 평상적 마음가짐이 소유론적 태도에서 존재론적 사고방식에로 마음자리를 옮기자마자, 우리는 단번에 중생에서 부처의 경지로 초탈하게 된다는 것이다.


존재론적 마음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일체의 주관적이고 호오적 가치평가를 떠나 무념무상한 의식상태에서 모든 사실을 존재하는 그대로 인식하는 태도를 말한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그의 인식론에서 인간의 감각은 인식의 단순 질료로서의 감각자료를 의식의 사고에 교부하여 거기서 판단을 받는다고 말했지만, 그의 이론은 정밀하지 못하다. 그는 인간의 감각기관이 중성적 상태에서 감각자료의 내용을 의식작용에 전달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이미 감각에 새겨진 감각자료는 이미 인간의 주관적 호오작용의 선(先)개념적 평가를 안고 의식의 개념작용에 교부된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색감과 벽돌처럼 까칠까칠한 물질은 이미 개념적 판단을 의식적으로 얻기 전에 이미 감각적으로 호오에서 달라진다. 인간의 감각작용도 주관적 가치판단 이전의 무기(無記=선입견이 없는 몽롱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관적 가치가 전제되어 있다.


‘신심명’에서 승찬대사는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다만 호오의 간택을 싫어할 뿐이다’라고 언명했다. 우리는 보통 선택과 가치를 매우 신성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불법의 가르침에 의하면, 가치는 결코 신성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와 다른 측면인 소유의식을 전제하고 있다. 소유의식을 전제로 하기에 우리는 무엇을 가치로 평가하고 우열을 따진다. 그 가치가 실생활에서 가격으로 환산된다. 정신적 가치는 경제적 가격의 의미와 맞먹는다. 비싼 것은 정신적으로 쉽게 소유할 수 없는 가치를 띄며, 그것이 경제적으로 값나간다.

 

▲김형효 교수

주관적 호오는 이미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격의 두 요소를 아울러 함의하고 있다. 윤리도덕의 가치의식과 경제적 소유의식은 다른 것이 아니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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