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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공동존재의 그물망

기자명 법보신문

이 우주일체의 존재방식은 인드라망 구조
존재론적 사유만이 공동존재 그물망 형성

영가대사는 ‘증도가’에서 “거울 속의 형상보기는 어렵지 않으나, 물 속의 달을 붙들려 하나 어찌 잡을 수 있으랴. 항상 홀로 다니고 항상 홀로 걷나니 통달한 이 함께 열반의 길에 노닐도다”라고 읊었다.


불교는 거울 속의 형상을 보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실을 존재하는 그대로 비추어주지만, 물속의 달을 잡으려 해도 결코 잡을 수 없듯이 불교는 세상의 사실을 소유하는 방법을 결코 말하지 않는다. 불교는 존재론적 진리를 말하지, 결코 소유론적 진리를 설파하지 않는다. 우리가 소유론적 진리를 버리고 존재론적 진리를 증득하기만 하면, 우리는 부처의 길에 들어서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불교의 진리가 아무리 복잡다단해 보여도 결국 그것은 존재론적 진리의 생활화일 뿐이다.


사람들은 존재론적 진리를 어설프게 알아서 불교가 공(空)과 무(無)를 즐겨 말하니, 존재론적 진리의 세계와 불교는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이 말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 이런 발상은 불교를 너무 외곬으로 오해하고 존재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짓과 같다. 존재가 바로 공이고 무다. 이제 그런 착각은 멀리 던져 버리자. 존재가 바로 공이요 무라는 것을 인류사에서 최초로 밝힌 성자가 중국의 노자와 인도의 석가모니다. 이 두분을 제외하고 존재가 바로 공이요, 무라는 것을 언급한 철학적 통찰력이 없었다.


서양철학사에서 가끔 존재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지만, 그들이 쓴 존재라는 용어는 엄밀한 의미에서 존재가 아니고 다만 명사적인 존재자를 지시한 것일 뿐이다.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는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쓴 용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서양은 오랜 세월동안 존재를 이해하기 힘들어서 존재를 존재자인 양 착각하고 오해해 왔었다. 이것은 하이데거의 지적인데, 너무나 탁월한 견해다.


영가대사는 계속 언급하고 있다. 존재론적 사유가 ‘항상 홀로 다니고 홀로 걸어다녀도, (그 사유에) 통달한 이는 함께 열반의 길에 노닐고 있도다. 옛스런 곡조 신기(神氣) 맑으며 풍채 스스로 드높음이여. (그러나) 초췌한 모습, 강건한 뼈(탄허번역 참조)를 사람들이 되돌아 보지 않는도다.’ 존재론적 사유는 비록 외롭고 쓸쓸해 보여도, 존재론적 사유를 하는 이들은 항상 열반의 공동체에서 노니는 사람들과 같다. 왜냐하면 소유론적 사유는 절대로 공동 사유가 안된다. 마르크시즘의 가장 큰 과오가 소유론은 철저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데 마치 공동존재가 가능한 것처럼 착각한 데 있다 하겠다.


공동존재는 공동소유와 다르다. 반면에 존재는 비록 홀로 걸어도 그 사유는 언제나 공동존재의 의미를 품고 있다. 존재는 본질적으로 공동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우주의 만물은 명사적으로(존재자적으로) 개별적이고 단독적이지만, 존재론적으로는 모두 상관적으로 엮어져 있고 얽혀져 있기 때문이다. 하찮은 야생풀 한 포기도 홀로 단독적으로 개체적으로 존립할 수 없다. 그것은 일체의 다른 존재자들의 존재방식과 서로 엮음띠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을 불교는 인드라망(網)이라 부른다. 이 우주 일체의 존재방식은 인드라망의 구조를 띤다.


존재론적 사유만이 오로지 공동존재의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기에 거기에는 어떤 사설적(私設的) 영역의 봉토(封土)를 불허한다. 열반은 사설적 봉토의 영지를 갖고 있지 않다. 열반은 자아와 그 의식의 고통이 없는 자연의 일심(一心)이다. 존재론적 사유는 소유론적 사유만을 생각하는 중생들에게 초췌하고 초라해 보인다.

 

▲김형효 교수

소유론은 늘 남 보기에 근사해 보이고 화려해 보이나, 기실 그 사유는 의식상 겉보기만 그럴 뿐이다. 존재론적 사유는 노자가 ‘도덕경’에서 한 말처럼 뼈가 튼튼하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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