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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불교는 심판의식을 멀리한다

기자명 법보신문

한국인은 흑백논리 천착하는 한계 지녀
불교엔 한쪽만 택일하는 사고방식 없어

한국인의 정의사랑이 거의 낭만적인 수준이다. 이것은 한국인이 역시 낭만이란 말을 아주 좋아하고 그것을 자주 사용하는 것과 상통한다. 그래서 한국인의 정의사랑은 낭만적인 말의 사용 빈도수 만큼 강하다. 그러나 낭만이 현실적 감정이 아니고 주관적 공상의 차원이듯이, 정의의 의미도 역시 그러하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사실이므로 한국인들이 낭만의 감상적 몽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듯이, 또한 정의의 감정적 덫을 슬기롭게 벗어냐야 한다. 확실히 한국인들은 쉽게 흑백논리의 감정적 분류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선악의 이분법을 잘라 말했던 유교적 가치법을 던져버리지 못한 발상법에 기인한다 하겠다. 유교적 가치의 이분법은 무엇이든지 모든 것을 흑백적 선악으로 잘라 말하고, 그래서 세상을 옳고 그름으로 쫙 이원적으로 쪼개버리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이런 전통적 가치의 이분법은 기독교적 선악투쟁주의의 교리에 의하여 더욱 강화되어 우리사회를 정신적 투쟁의 싸움터로 만드는 일을 더 굳혀 놓는 계기를 만들었다.


누구나 다 아는 민담차원의 소설을 생각해 보자. ‘심청전’, ‘춘향전’, ‘장화홍련전’, ‘흥부전’ 등은 악질과 가련한 착한이 등의 이분법으로 확연히 나누어진다. 가련한 심청과 악질 뺑덕 어멈. 그리고 춘향이와 변사또, 또 장화홍련과 그 사악한 계모, 그리고 가련한 흥부와 심술궂은 놀부 등과의 대대법적인 구조는 변치 않는다. 우리는 그 작품들을 통하여 불쌍한 이들이 재기하는 경우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박수를 차고, 악질들이 징계받기를 학수고대하고 기다린다. 그 사이에 어떤 고민이나 번민이 없다. 다만 분노를 느끼며 욕설을 하고, 흥분을 하는 것으로 우리의 심리는 위안을 받는다. 위에 든 예의 작품들은 결코 우리를 깊이 있게 하지는 않는다. 깊이 있는 작품은 어떤 갈등 구조가 있고, 그 갈등 사이에서 우리가 결심을 쉽게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때에 사람들은 짙은 고뇌에 빠진다. 그 때에 사람들은 깊이 있는 사색에 잠긴다. 우리는 우리 문화가 흑백의 구조 속에서 쉽게 분노하고 또 우울해 하는 장면을 표출할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유의 깊이에로 내려간다고 말하기 힘들다. 백로와 같은 의사와 열사는 쉽게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지만, 까마귀와 같은 악의 상징은 칭송받지 못한다. 백로와 까마귀는 조선 건국을 반대했던 고려의 유학자 정몽주가 남긴 은유중의 하나다. 저 백로와 까마귀의 은유는 조선조를 넘어서 대한민국의 건국을 통하여 여전히 살아있는 언어가 되어 우리의 머리를 무겁게 점유하고 있다.


깊이있는 사유를 우리는 노자의 ‘도덕경’에서 배워야 한다. 노자는 자기의 사유를 현학(玄學)이라 부르기도 하였고, 또 현동(玄同)이라는 의미를 진술하기도 하였다. ‘현학’이라는 용어는 도의 애매모호함을 진리로 여기는 학문을 일컫는 것이고, ‘현동’이라는 것은 이중적인 애매모호함을 함께 동시에 한 곳에 동거시키는 이중성의 사유를 말한다. 칼날같은 흑백론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단순재판식의 사유는 노자의 ‘현학’을 백번죽어도 이해하지 못한다. 또 노자가 말하는 성인은 결코 유가적이거나 기독교적인 도덕적 성인의 개념이 아니다. 유가적이고 기독교적인 성인의 개념은 너무 도덕적으로 성결적이어서 노자가 말하는 ‘화광동진’(和光同塵=빛과도 화친하고 먼지와도 동거하는)하는 존재론적 ‘병작’(竝作=자작이 아니라 함께 아울러 지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빛은 깨끗하고 먼지는 더럽기에 택일하는 삶은 노자적인 성인의 삶의 방식이 아니다. 먼지가 더러우나 그 먼지를 통하여 만물이 자라고 거기에서 영양분을 흡수한다.

 

▲김형효 교수
먼지는 영양분의 보고다. 그래서 한쪽만 택일하는 사고방식은 편협하고 신경질적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불교적인 스타일이 못된다. 불교가 한국인의 신경질적인 스타일을 고쳐야 한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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