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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혹은 지나간 미래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1.11.22 17:01
  • 수정 2011.11.22 17:08
  • 댓글 0

지난 15일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여 한미FTA 처리를 부탁하고, 민주당은 16일 6시간에 걸친 격론 끝에 그의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이제 한나라당은 강행처리를 향한 본격적 행보를 시작하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며칠 뒤, 아니 이 글이 인쇄되어 나가기 전에라도 국회의원들이 몸싸움 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비준안이 처리될 지도 모르겠다.


지금 ISD조항이 논란의 중심이 되어버렸지만, 단지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한미FTA는 지금도, 처음 협상안이 나왔던 노무현 정부 때도 한국의 ‘미래’를 위해 추진해야 한다고들 말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그 미래는 아직 ‘오직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미래가 이미 과거에, 혹은 현재에 속하는 것이다. 2008년 미국에서, 바로 그 미국에서 시작되어 지금 유럽연합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위태로운 세계가 그것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중국과 FTA 추진을 중단하고, 미국과 FTA를 추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선진금융기법’을 배우고 얼른 자리 잡게 하는 것이었다. 그 선진금융기법이란 무엇인가? 예를 들면, 파생상품을 이용해 돈을 버는 첨단의 금융기법들이 그것이다. 파생상품이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단순한 예를 들면, 집을 담보로 10억을 대출해준 은행이 그 집을 담보로 9억짜리 채권을 발행하고, 그 채권을 산 금융회사가 그걸 담보로 다시 8억짜리 채권을 발행하는 식으로 계속된다. 이런 연쇄적 발행이 10번 이어지면 10억짜리 집 하나로 55억 이상의 돈이 시중에 돌게 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증식의 기법인가! 그래서 정확히 계산될 수 없지만, 지금 파생상품의 규모는 실물재화의 10배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2008년 담보로 잡았던 집들이 안팔리거나 값이 폭락하면서, 집을 담보로 발행한 채권이 부도가 나자, 그 채권을 담보로 발행한 다음번의 채권 역시 부도가 난다. 10번 발행된 채권 전체가 부도가 난다! 게다가 자기가 산 채권이 부도나기 전에는 그 앞에서 부도가 난 것을 알지 못하며, 따라서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다. 이 연쇄부도가 이어지면서 세계 1~10위 굴지의 거대금융기업들이 줄지어 도산했다. 이게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다. 따라서 뻥 튀기듯 거품을 만들어 증식하는 파생상품을 규제하지 않고선, 경제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 경제위기 직후 취임한 오바마가 규제를 시도했지만, 월가의 반대와 압력으로 실패했다. 사실 그걸 규제해서 파생상품이 움직일 수 없게 되거나 사라지게 되면, 지금 돌아가는 부의 거대한 부분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선진금융기법’을 위해 금융자본을 규제하는 문턱을 없앤 나라로선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그걸 시행하지 못한 것을 단지 월가의 압력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알다시피 미국에서 시작된 위기가 2년만에 유럽에 다시 들이닥쳤다. 계속되고 있는 이 경제위기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출구가 없다고들 전망한다. 글로벌화된 이 시대에 금융시장이나 상품시장이 개방된 한국이 다행히 그 경제위기를 겪지 않은 것은, 그 ‘선진금융기법’이 아직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FTA는 지지자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국가간에 서로 시장을 개방하는 그런 협정이 아니다. 그건 이미 자유무역협정(WTO)에 의해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한미FTA를 통해 노무현 정부가 도입하려고 했던 이 선진금융기법을 지금 이명박 정부의 FTA가 그대로 포함하고 있다. 지금 한미FTA를 비준한다는 것은 2008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금융위기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진경 교수

‘대통령의 자존심’을 위해 국민들이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의 삶을 위해 대통령이나 협상단의 자존심을 잠시 접는 게 지금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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