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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정치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1.12.05 14:51
  • 수정 2011.12.05 14:55
  • 댓글 0

채 돌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곤히 자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들고 눈을 뜨더니 해맑게 웃는다. 엄마를 본 모양이다. 엄마가 옆에 있어 행복한 표정이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금세 눈을 감는다. 깜빡 잠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엄마를 보고 웃곤 다시 잠이 드는 아이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미국 CNN 방송의 유명 앵커들은 물론 수십만 명을 파안대소하게 했다. 아이의 웃는 얼굴처럼 맑고 아름다운 게 달리 또 있을까 싶다.


웃음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웃는 집에 만복이 깃든다(笑門萬福來)”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 동물학자에 따르면 침팬지나 개도 웃는다고 하지만, 사람만큼 웃는 동물은 없다. 그래서 J.호이징하는 ‘웃는 동물(animal ridens)’이란 개념이 ‘사회적 동물(homo sapiens)’이란 개념보다 인간을 더 완벽하게 구분시켜준다고 했다. 동물도 웃는다고 하지만 웃길 줄은 모른다. 웃을 수 있고 웃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는 사람밖에 없다.


사람들은 웃음을 즐기지만 정작 웃음을 주는 사람을 우습게 여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희극과 비극이 같이 상연되었으나, 비극이 더 많이 알려지고 존중받았다. 이런 사정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엔 상황이 거의 역전된 듯하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정통극 배우를 코미디 프로에 초대하면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아이돌 멤버들까지 코미디나 예능프로에 경쟁적으로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려 노력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비극에 관한 이론서다. 당시에도 비극과 희극이 함께 상연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 관한 글만 쓴 모양이다. 사람들의 궁금증이 희극에 관한 이론은 없을까 하는 데 모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점에 착안하여 중세 수도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소설화한 것이 U.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다. 이 소설에서 맹인 수사(修士) 호르헤는 ‘시학’의 2부 ‘희극론’에 독을 발라 놓아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을 독살시킨다. 그는 “웃음이란 인간의 타락이고 어리석음이며 천박한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으로 자멸의 길에 빠져든다.


TV 오락프로그램에서 코미디는 약방의 감초다. 많은 사람들이 주말 오후 코미디 프로를 보며 한바탕 웃으며 피로를 잊고 삶의 활력을 찾는다. 젊은 개그맨들이 벌이는 희극은 그저 웃자는 것이지 누구에게 상처를 주거나 해치자는 게 아니다. 가끔 현실 정치나 세태를 꼬집는 경우가 있어도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 어떤 코너에서는 경찰서장과 장성(將星), 심지어 대통령마저 웃음의 대상이 된다. 그래도 누구 하나 특정 대통령이나 경찰서장·군 장성 모두를 바보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저 허구화된 희극일 뿐이란 사실을 연기자나 시청자 모두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코미디보다 더 희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한 국회의원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정치인을 모독했다며 특정 개그맨을 검찰에 고발한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국회의원은 하필이면 아나운서를 모독하는 발언을 해 사회의 지탄을 받은 인물이다. 하버드대 법학석사에 변호사 자격을 가진 엘리트가 코미디와 현실을 구분 못해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여론이 들끓자 그는 고소를 취하하고 해당 개그맨에게 전화로 미안하다고 했다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은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터이다. 그가 변호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된 것은 우리 사회의 수준이 그 정도라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장영우 교수

누가 봐도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정치인이 되면 이상하게 변한다. 2012년은 정치인들에게 매우 가혹한 해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일류대학을 나와 판검사를 하거나 고위공무원을 지냈다고 국회의원 자격까지 주는 관대함을 버려야 한다. 비상식적인 언행으로 세상을 실소(失笑)·고소(苦笑)케 한 이들을 걸러내 건강한 웃음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게 내년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장영우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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