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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절규

기자명 법보신문

‘오늘’은 세상 그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날이다. 각기 세상과 맺은 인연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탄생의 기쁨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만남의 즐거움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일본 대사관 앞에 모이는 할머님들의 ‘오늘’도 의미 있는 날이다. 수요집회 1,000번째를 맞기 때문이다. 할머님들의 ‘오늘’은 역사의 오늘이면서도 슬픔과 외침을 넘은 절규의 오늘이기에 가슴 한 구석이 시리다.


위안부 할머님들의 수요집회는 1992년 1월18일 시작됐다. 할머님들의 ‘절규’에 묻어 난 요구는 간단하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명예회복이다. 피해 보상도 중요하지만 오늘 모이는 할머님들에게 그 보상이란 것도 사실 일본의 ‘사과’ 다음 일일 뿐이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피해 할머니 234명 중 169명이 세상을 떠났다. 65명의 할머님이 생존하고 계신데 평균 연령이 86세라고 한다. 생존한 할머님들조차 일본의 사과라도 받고 눈을 감으실 수 있을지 예측하기 힘들다.
지난 20년 동안 침묵한 일본이 향후 2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모르쇠로 일관할 가능성이 농후하지 않은가.


그래서 필요했다. 아니, 절실했다. 자신의 몸 조자 홀로 가누기 힘든 그 분들에게 힘이 되어 줄 사람이 필요 했다.
교계로 눈을 돌려 보자. 1990년대 초반, 위안부 할머님들에 대한 관심도는 그 어느 종교계 보다 불교계가 높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5년 경기도 광주에 ‘나눔의 집’이 신축되면서 교계는 더 한층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그 단면이라도 들여다보자.


999회 집회가 있었던 지난 주 수요일. 1,000회 집회 전이었던 만큼 세인의 이목이 집중됐었다. 그러나 너무나 아쉽게도 그날 모인 인파 중 승복을 입은 스님은 보이지 않았다. 반면 수녀님은 10여 명 이었다.
단순한 숫자 우위 비교를 하자는 게 아니다. 나눔의 집과 위안부할머님들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제대로 잡혀 있는지를 자문해 보자는 것이다.


혹, ‘스님이 대중집회에 동원되는 인력자원이냐?’ 반문할 수도 있겠다. 물론 그렇지 않다. 하지만, 위안부 할머님들의 대사관 앞 절규를 외면하는 건 정당할까? 누가 그들을 보듬어 주는가. 누가 그들의 양 팔을 잡아 줄 것인가. 누가 그들의 절규에 외침 하나라도 보탤 수 있는가.


이옥선 할머님에게 1,000번을 맞는 수요시위의 의미를 본지 기자가 여쭈어 보았다.
“1,000회든, 2,000회든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일본정부가 저렇게 모른척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분노는 아니더라도 서럽지 않은가.‘계약 체결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은 계약체결 전 발생한 사유에 관해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다’는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의 제2조 3항이 너무도 뼈아프지 않은가.
그래도 그 할머님들은 그 때의 과오를 따지기에 앞서 일본에게 ‘사과’만을 요구하고 있다.


999회 시위에, 2,000회 시위에 한 번 나선다고 일본이 사과할 리 없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상대에게 ‘요구’하지 않으면 그 상대는 ‘할 것도’없어진다. 지금도 그들은 협정 조항을 들먹이며 ‘법적으로 자유롭다’는 입장만 내세우고 있다. 수요시위가 벌어지면 일본 대사관은 문을 굳게 닫고 모든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린다. 듣지 않겠다는 무언의 표시다.


▲채한기 논설위원
20년의 절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그들의 절규를 먼저 들어야 할 상대는 일본이 아닌 우리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이 ‘어제’와 같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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