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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공갈치지 마라

새해 들어 지관 큰스님의 원적이 있었다. 그분의 크신 인품과 행적을 돌아보며 우리 한국불교계가 지양해야할 몇 가지 문제들과 지향해야할 올바른 방향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관 큰스님은 ‘학승’이라는 칭호가 따라 붙던 분이셨다. 왜 일반적인 고승대덕들처럼 상당법문 안하시냐는 물음에 “니나 많이 공갈치며 살아라…”하셨다는 일화는 우리 불교계의 문제점에 대한 그분 나름의 뼈아픈 통찰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선종을 표방하는 불교가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가? 공갈치는 불교가 되는 것이다.


선은 부처님의 마음을 전한 것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라는 구분으로 선종의 우위성을 말하는 것
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불교의 정신, 아니 선종의 정신으로 보더라도 마음 떠난 말이 없고, 말 떠난 마음이 있을 수 없다. 둘은 표리관계이며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일 뿐, 어느 것이 우월한가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인 것이다.


선종이 나타난 배경을 살펴보더라도 교종이라는 바탕이 없이는 선종의 의미가 제대로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종이 융성하여 방대한 교리체계가 형성되고 그것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드러나게 된다. 순기능이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역기능이란 다름 아니라 지식과 깨달음이 혼동되고, 지식의 유무가 중생의 근기를 재는 척도가 되며, 오히려 지식이 깨달음의 장애가 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선종이 큰 의미를 가지고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지식을 넘어서 진정한 깨달음의 세계로 뛰어 들어가며, 유·무식을 넘어서 모든 중생에게 깨달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이 바로 선종의 정신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선종이 종파로 서게 되고 선종의 많은 이론들이 성립되며, 1700공안이 세워지고, 거기에 많은 선어들이 덧붙여지면서 선종 자체의 말잔치가 벌어지게 된다. 교종과는 다른 형식의, 말을 넘어선 말의 잔치가 벌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교종과 다른 선종의 언어 사용은 정말 일정한 잣대를 들이대기가 매우 힘들기에, 자칫 잘못하면 지관스님의 표현대로 ‘공갈’이 난무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까마귀의 암수를 가리리오!”하는 탄식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선종 자체의 이론 틀과 준거에 대하여 엄밀한 학문적 정립이 있어야만 한다. 또한 불교 일반의 교리체계에 대한 학문적 축적이 바탕이 되고, 그 위에서 선종의 의미가 올바로 드러나고 선수행의 올바른 방향이 세워져야 한다. 이런 기초들이 무시되고 마음 타령만 하다가는 정말 완전히 비불교적인 선을 하면서도 ‘공갈’로 일세를 풍미하는 사이비 선승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부처님의 근본적 가르침인 무아설에 위배되는 ‘나’찾기가 마치 선수행의 근본인 듯이 여겨지고 있는 것이 우리 불교의 현실이 아닌지 반성해보야 할 일이다. 진정한 자신의 자아와 우주의 본질이 둘이 아니라는 인도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에 바탕한 요가 수행과 선수행이 어떻게 구별되는지도 모르는 채, 무조건 선을 하고 나를 찾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가?


말을 떠난 마음은 위태롭다. 마음을 떠난 말은 공허하다. 말을 넘어서야 한다면서, 그 말을 넘어선 경지를 주제로 하는 말들은 더더욱 위태롭고도 공허하다. 그러하기에 선종이 선종의 언어와 구도 속에 머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선불교의 이론적 틀과 역사적 배경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선불교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불교라는 것을 너무 고집하지 말고 불교 교학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를 장려하고, 모든 스님들과 불자들이 일정한 교리적 바탕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성태용 교수
지관 큰스님은 선불교적인 전통 속에서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색채가 강하지만, 그것을 더 넓혀 일반 불교 교학이 바탕이 되고 그 위에 올바른 선풍이 진작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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