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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상도 범접치 못한 옛 석공의 현란함

기자명 법보신문

⑦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

'크메르 예술의 극치, 크메르의 보석'이라는 찬사를 받는 곳이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이다. 앙코르 복원 작업에 참여했던 프랑스 건축가들이 남긴 탄성이다.

'창조주의 두 손을 빌려와 창조주의 두 손을 창조한 사람, 영혼을 빚은 조각가의 삶과 예술 그리고 지독한 사랑, 신의 손을 지닌 인간' - 이것은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에게 바쳐진 헌사이다.

정교함, 현란함, 치밀함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앙코르 유적 중 단 한 곳을 지정하여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반띠아이 쓰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건축물의 어디를 샅샅이 꿰뚫어 보아도 단 1 평방센티미터의 여백이 없다. 숨이 막힌다. 재료가 돌인가 나무인가 흙인가 확신이 없어 송곳으로 찔러보고 싶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벽면에 다가가 손톱으로 꾹 눌러본다. 손톱만 아프다.

이것이 과연 석조물인가

아름다운 꽃은 길가에 오래 피어있지 못한다고 했던가. 반띠아이 쓰레이 역시 훼손이 심하다. 깨어서 떼어갈 수 있는 것이라면 성한 것이 드물다.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지극한 유럽인들의 소행이었다고.

이 사원은 1914년 프랑스가 발견했다. 1924년까지 밀림이 울창하여 접근이 어려웠다. 이전 해에 이미 용감한 도굴꾼이 훑고 갔다. 도굴범들 중 일부가 붙잡혀 투옥되고 도난품 일부는 찾았다. 사랑도 병적이면 해가 되나니. 일부를 찾아 복원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상처가 심하다.

반띠아이 쓰레이는 '여자의 성(城)'이란 뜻이다. 사원 전체의 건축물을 붉은 색 사암(장미석 pink sandstone)으로 장식했다. 거기에 세필(細筆)로 그림을 그리듯 조각했다. 자단목에 목각을 하듯 정교함을 뽐내고 있다. 뭉퉁한 정으로 무성의하게 툭툭 새긴 것이 아니다. 양각의 깊이도 가장 깊어서 부조라기보다 소조에 가깝다. 지붕은 모두 날아가 버려 하늘이 훤하게 보이지만 기둥과 벽은 네온사인처럼 빛난다. 풍상의 위력도 차마 이곳은 범접치 못해 현란하게 치장한 여인이 홍조를 띤 자태이다.

규모는 작게 미감은 최대로

규모는 작은 편이나 그 단아함과 정교함에 입이 벌어져 숨고르기를 몇 번 해야한다. 이 사원을 축조한 이의 신분과 심성에 관련이 있는 듯하다. 하르샤바르만 2세의 손자이며 바라문교 승려였던 '야즈나바라'가 건축하였다. 왕의 신분이 아닌 이가 축조한 것이다. 황제의 눈치를 보면서 규모는 작게 그러나 미감(美感)은 극대화한 것이다.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에게도 호령을 하며 윽박지른 것이 아니라 후하게 새참을 제공하며 정성을 다할 것을 당부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건설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호인 '혼을 실은 시공'이 가능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의 건축물에서는 그 구호에 걸맞는 혼이 보이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무너지지나 않았으면 고맙겠다.

쳐다보고 둘러보아도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침투하기에는 버겁다. 눈이 아리고 얼얼하다. 그러나 균형감각을 갖추자면 정강이까지 걷어올린 무명 핫바지도 입을 줄 알고 비단 두루마기도 입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비웃지 않으며 멋부림의 극치를 볼 수 있는 눈을 갖추고 싶다. 중앙사원 벽면에 새긴 여성의 신상은 사치의 극이다. 쫑쫑하게 머리를 땋아 늘어뜨리고 귓볼이 늘어지도록 큰 귀걸이를 하고 있다. 진주를 꽃다발처럼 엮어 허리에 두르고 있다. 양 손목 발목에 팔찌, 발찌는 물론이고. 발 아래에는 백조 세 마리가 노닐고 있다. 백조는 청정한 영혼의 재생을 상징한다.

정교한 조각에 눈이 아릴 듯

중앙사원의 입구 상인방(출입문 상단 장식)은 참으로 걸작이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보면 영락없는 목조 건축물이다. 인간 문화재급의 대목장과 소목장이 경연하듯 어우러져 만든 것 같다. 천 년이 지난 지금의 안목으로 보아도 명장의 작품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무로 만든 건축물이 아니다. 돌이다. 단단한 돌이 나무를 희롱하고 있다. 목수는 울고 석공은 웃어야 할까. 울고 웃을 일이 아니다. 순례자마저 겸허해진다. 위대한 문화유산은 초읽기에 놀아나는 요즘의 세태를 보기 좋게 무시하는 위력이 있다.

로댕(1840 - 1917)은 19∼20세기 사람이다. 예술이 지향하는 바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로댕에게 바쳐진 헌사를 반띠아이 쓰레이의 벽면에 거미처럼 달라붙어 후벼파듯 정질을 한 이름을 남기지 않은 석공들에게 바치고 싶다.



글·사진=이우상 소설가·대진대 문창과 겸임교수 asdfsang@hanmail.net



크메르루즈군 근거지의 흔적

발목만 남은 석상과 손목 잃은 후손



상인방 기둥 아래에 바지만 걸친 맨발의 청년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오른쪽 팔목이 없다. 쏟아 붓듯이 매설해둔 지뢰를 건드렸던 모양이다.

사진을 찍겠다고 양해를 구하니 거절하지 않는다. 송구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몇 장 찍었다. 1달러를 그의 발치에 놓았다. 크메르루즈 최후의 병사인가. 눈빛만은 매섭다. 영문도 모른 채 광포한 소용돌이에 놀아났던 기억일랑 깨끗이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길 기원하며 그에게 합장을 했다.

반띠아이 쓰레이는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거는 패기가 있어야 볼 수 있었다. 크메르루즈군의 활동 근거지였기 때문이다. 서양 관광객이 살해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진저리쳐지는 이데올로기의 역사가 진행중인 우리로서는 이곳의 아름다움에만 취해 있을 수 없었다. 청년의 건너편에는 몸통 전체가 사라져버리고 발목만 남은 석상이 있다. 발등에는 쇠말뚝이 꽂혀 있다. 차라리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추상 예술품이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은 이 나라의 아픈 역사를 증명하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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