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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송과 경국사

기자명 전무송

젊은 시절엔 마음의 고향

연극과 문학, 인생을 논하던 곳

세상 번뇌 씻고자 아직도 발길






내가 경국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시인 황청원 님과의 인연에서 비롯된다. 아직 무명이었던 지난 70년대 말 국립극단 시절. 내가 출연하는 연극마다 님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나중에는 차를 마시며 연극얘기를 나누는 막역한 사이로 발전했다. 연극에 대한 그의 박식함으로 인해 처음 나는 님이 연극광이고 그리하여 내 팬일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미술, 사진, 도예 등 문화예술 전반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음에 놀랐고, 수많은 문화예술계의 지인들이 있음에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님과의 인연으로 당시 님이 머물러 있던 경국사를 찾기 시작했고 나를 비롯한 문화계의 아웃사이더들은 객승이 거쳐가는 방에서 차 한잔을 놓고 연극과 문학과 사회와 그리고 인생을 밤새워 토론하고는 했다. 이때 만난 법우들의 상당수가 지금은 작가, 화가, 사업가, 굿쟁이, 아나운서, 판검사, 교수, 의사 등등 후일 유명인사(?) 대열에 들어섰지만 그때만 해도 아직 새파란 풋내기들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찾게 된 경국사에서 만난 또 하나의 행운은 지관 큰스님을 뵙게 된 것이다. 스님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학승으로 해인사 강원에서 학인들을 지도하고 후에 동국대 총장까지 역임하신 분이다. 큰스님은 우리가 모일 때면 간혹 찾아와 불교의 이치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해주셨고, 특히 정초에 세배 드리러 가서 듣는 법문은 일년을 청정한 마음으로 지내도록 하는 감로수와 같았다. 당시 스님은 내가 출연한 영화 '만다라'를 보시곤 "우리 절에 있는 스님들보다 전무송 씨가 더 중 같아…" 하시며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시기도 하고 TV 드라마 '원효대사'를 보시곤 "어허 우리 절에 원효대사님이 오셨네"라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영산회원 모두는 이렇게 격 없이 대해주시는 큰스님을 무척이나 따랐다. 80년대 초였을까. 한번은 우리에게 법명을 주신 적이 있었다. 각각의 직업이나 성격에 어찌나 잘 맞던지 모두들 마음에 쏙 든다며 법명이 적힌 종이를 품속에 고이 간직한 채 돌아갔다. 그러나 이를 어이하랴. 그토록 좋아했던 법명이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것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계첩마저 없어져 버렸다. 얼마 후 용기를 내 이질직고를 했다. 그런데 큰스님은 뜻밖에 "하하하, 그게 바로 불교인지도 모르지. 부처님 말씀을 따랐으니 무송 씨가 제일이야." 그 후 신입회원들과 함께 수계를 다시 받았고, 그 때 받은 법명이 바로 '다정(茶亭)'이다. 다정! 나는 이 법명이 너무 좋다. 너무 좋아해 버릴 수도 잊을 수도 없는 마음의 이름이다.

우리 영산회원들은 아직도 경국사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아 무정사에 계신 큰스님을 뵈러 가곤 한다. 그곳에는 좋아하는 산이 있고, 좋아하는 절이 있고, 좋아하는 스님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번뇌에 시달리고 있다면 한번쯤 훌훌 털어 버리고 절을 찾아봄은 어떨까.



방송, 연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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