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고정된 법문 틀을 벗어 던지다”
“동서양의 고정된 법문 틀을 벗어 던지다”
  • 법보신문
  • 승인 2012.04.0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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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로만 구성된 서구 불교계에 ‘다양성’ 자극

영성에 집중하기 위한 신명나는 법문에 감명받아

 

 

▲흑인 비구니인 빤야와띠 스님의 신명나는 법문 모습.

 

 

때때로 나는 명상 중에 ‘스탠드업 코미디’(standup comedy 한 사람이 대중 앞에 서서 단독으로 빠른 속도로 유머를 이어가는 코미디, 역자 주) 대사를 상상하면서 재미있어 하곤 했다. 개연성이 높다고 생각했던 대사는 성령의 힘을 최상의 가치로 받드는 ‘펜테코스트파’(派) 처럼 카리스마를 가진 불교 법사의 독백이었다. 군중 앞에 서서 눈동자는 믿음으로 빛나고 얼굴은 타오르고 있으며, 한 손에는 불교경전을 든 채 두 팔을 펼치면서 하늘을 향해 주시하고 있으며 이윽고 외친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거룩한 삼장(三藏)을! 자비를 베푸소서, 부처님을 찬양하라.”


그러면서 “전율이 느껴지지 않는가”라고 홀로 생각하곤 한다.


바로 얼마 전 나는 그런 유형을 현실에서 겪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코미디 대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지난 25년간 들어왔던 법문 중 가장 참신한 불법의 표현 중 하나였다. 빤냐와띠 스님(Ven Pannavati)은 62세의 여성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고 침례교 신자였으며 목사이기도 했다. 지금은 금강불교와 선불교 그리고, 남방불교의 교단에서 모두 세 차례 계를 받은 비구니 스님이다. 지난 해 6월 뉴욕에서 개최되었던 서구불교법사회의에서 나는 잠깐 스님을 뵈었다. 그런데 그 비구니 스님은 그곳에서는 단지 세 명의 흑인 수행자 중 한 사람일 뿐이고 몇 되지 않는 흑인 불자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이미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 서구 불교계의 다양성 부족이라는 주제, 주로 백인으로 구성된 불교계에서 인종 차별과 편견이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가 등에 관한 의제들이 주로 그 회의에서 모색되었다. 비록 대다수 백인 불자들은 다양한 서구인들을 포용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매우 진보적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그 회의에서의 심도 깊은 대화를 바탕으로 내가 법사로 있는 ‘듀크대학교’의 학생 그룹이 지니고 있는 ‘다양성에 관한 이슈’를 다뤄보기로 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빤냐와띠 스님은 여기 노스캐롤라이나 듀크대학교에서 서쪽으로 불과 4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는 스님께 법문을 요청했다. 듀크대학교의 불교 단체는 실상 매우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때로는 백인들이 소수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선배 법사와 나는 백인이거나 아시아계였고 그래서 이번에 흑인 불자를 만나게 됨으로써 백인이나 아시아계가 아닌 공동체 구성원들 전체가 감명을 받고 하나의 롤 모델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됐다.


비구니 스님의 법문이 있기 몇 달 전 ‘라마 수리야 다스’(Lama Surya Das)라는 유명한 유태계 미국인 스님이 나와 몇몇 젊고 유망한 불교 법사들에게 도발적이면서도 광범위한 질문을 담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메일의 내용은 이러했다.


“오늘날 문화적, 지역적 영향을 벗어난 도(道, the Way)는 무엇일 수 있겠는가? 최선의 존재 상태를 이룬 뒤 절대적인 존재와 궁극적인 현재에서 살아가는 그 깨달음의 위대한 길 말입니다.”


또 다른 이메일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1500년 전 중국에서 일어난 선(禪) 불교 혁명은 인도에서 태동해서 성장한 불교의 원형을 까발렸다. 힌두 전통에 근거한 인도인의 세계관, 복잡한 철학 체계 그리고, 정교하고 복잡한 종교의식 등을 거의 모두 걷어내 버렸다. 그런 뒤 단순하고 명료하고 강력한 마음의 본성을 곧장 가리키는 경전 밖 깨달음의 길을 제시했다. 선불교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스스로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를 매료시킨 자유와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맑고 살아있는 법(Dharma)의 진수(眞髓)와 함께 낯설은 동양의 관습과 신학(神學) 마저 부득이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는 그 당시 서구인들은 이미 불교의 아시아적 방식을 미국적 맥락으로 꽤 많이 적응시켜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라마의 질문에 답하지는 않았다. 그러한 시기에 듀크대학교의 불교계는 빤냐와띠 스님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내가 두 명의 흑인 여자와 인사를 나누자 스님은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씩 큰 포옹으로서 꼭 껴안아 주었다.
빤냐와띠 스님의 법문 방식이 너무도 가슴에 와 닿아 상당 부분의 법회시간 동안 내 얼굴에선 밝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스님은 뉴스 방송에서 쓰이는 소위 ‘백인 영어’ 방식을 택하는 대신 흑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투를 선택했다. 예를 든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말하는 방식으로 법문을 들을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이 평상 시 그녀가 말하는 말투였다. 주변 환경과 청중에 따라서 말하는 스타일을 바꾸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문장들은 방송 영어보다는 더 다양한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두운법(頭韻法)에 맞춘 문장과 시어들을 사용하면서 그녀는 언어로 음악을 연주했다. 그녀는 자연스럽고, 살아있는 그리고 개인 특유의 방식으로 말했다. 그녀의 얼굴 표정은 풍부했고 손과 팔을 자유자재로 활용했다. 청중들 대부분이 이해하고 있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와 청중 사이에는 활기가 있어 보였다. 흑인 교회나 다른 환경에서 듣게 되는 것과 똑 같은 방식으로 청중 속의 일부 흑인들은 그들의 수용과 승낙을 소리로써 표현했다. 나는 정말로 이처럼 오고 가는 방식을 좋아 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빤냐와띠 스님은 스스로를 경청하게 되었고 자신의 말이 청중과 화자가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흑인 스님의 법문 방식을 경청하면서 나는 아시아계 스승들의 설법 방식과 문화를 초기의 서구불교법사들이 어떻게 도입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예를 들어 서구의 위빠사나 센터에서 법문을 하는 경우 서구 법사는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한다. 몸짓이 있긴 하지만 많지는 않다. 문장은 1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도록 구조화되었고 관찰자적 방식으로 사물들을 서술하게 된다. 법사들은 “나는 화가 났다”고 하는 대신에 “화가 일어남”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말을 하는 것은 우리가 명상수행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그것과 상당히 조화를 이룬다. 즉 객관화된 관찰력 양성하기, 법사들의 느리고 평화로운 화법은 마음이 매우 고요해지는 안거수행 형식에 부합한다. 비록 법사들이 개인적인 일화나 유머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법문은 엄격한 격식을 따르게 되고 청중은 조용히 그리고, 공손히 앉아있게 된다.


‘라마 수리야 다스’의 질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은 빤냐와띠 스님을 보면서였다. 일종의 서구 미국식으로 충분히 체화된 표현 방식으로 불법을 제시하는 스승을 보게 되자 나는 이전에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방법으로 가르침과 그 맥이 통하게 되었다. 그런 방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비구니 스님이 주는 가르침은 불법에 부합했던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서구 불교계에서 가장 소외된 집단의 한 사람인 흑인 여자가 가장 믿을만하고 생명력이 있는 가르침에 관한 방식을 구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녀가 그 조직 체계로부터 너무도 벗어나 있었던 나머지 그녀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흑인 비구니 스님에게 ‘뒤집고 순종하라’는 아시아계 스승들의 압력과 우리 서구 백인들의 미묘한 압력이 엄청나게 가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스님의 법문 속에서 나는 엿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비구니 스님은 스스로에게 충실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내가 보아온 것 중 가장 활력 있는 법문 방식 중 하나를 경청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수미런던 듀크 불교공동체 지도법사 simplysumi@gmail.com
번역=백영일 번역편집위원 yipaik@wooribank.com

 


다음은 영어원고 전문.

 

What I Learned from a Black Buddhist Nun

 

Sometimes I’ve had a little fun during meditation by imagining standup comedy routines. One monologue that I always thought had promise was that of a Pentacostal, charismatic Buddhist preacher. He or she would be standing before a crowd, eyes shining with faith, face glowing, looking heavenward with arms outstretched and a Buddhist Bible in one hand, saying, “I believe, I believe, in the HOLY Tripitika! Yes. Have mercy. Praise the Buddha.” Wouldn’t that be a kick? I’d think to myself.


Just recently, I got to see something of that in reality, but it was no comedy routine. It was one of the most refreshing presentations of the dharma that I have ever heard in my 25 years of dharma-listening.


Venerable Pannavati is 62 years old, a woman, an African-American, formerly a Baptist Christian, and formerly a pastor. She is now a Buddhist nun ordained in three traditions: Vajrayana, Chan, and Theravada, her last ordination. I met her briefly at the Western Buddhist Teachers Conference in New York in June of last year, where she was just one of three black monastics and of a handful of black Buddhists overall. Much of the conference explored the laden issue of the lack of diversity in Western Buddhist communities, and how racism and prejudice express themselves in our communities of primarily white people, even though white Buddhists as a whole are very progressive, embracing kinds of Westerners.


Through these rich conversations, I decided to address the issue of diversity in the student group at Duke University, where I am a chaplain. Most fortunately, it turned out that Venerable Pannavati lived just four hours west of Duke here in North Carolina, and I invited her to come speak. The Buddhist community at Duke is actually quite diverse, with white at times being in the minority. Yet, all of our senior dharma speakers and I myself are white or Asian, and I wondered whether seeing a black Buddhist would provide inspiration and modeling for non-white and non-Asians in the community.


In the months prior to this nun’s talk, a prominent Buddhist teacher named Lama Surya Das, a Western American of Jewish heritage, had been sending me and a handful of younger, up-and-coming Buddhist teachers emails asking provocative and broad questions. One email asked:


What would and could the Way be today, free of cultural and hemispheric influences? I mean the great way of awakening, achieving optimal presence and living in the absolute presence and ultimate present?
And in another email:


Fifteen hundred years ago, the Zen revolution in China stripped India-born and bred Buddhism to its bare essence—leaving behind almost all of the traditional Hindu-based Indian cosmologies, complex philosophy and elaborate rituals – and set forth a simple, clear and potent way of awakening “outside the scriptures, pointing directly to the nature of the heart-mind.” Zen tradition still describes itself thus to this day. Are we to import of necessity exotic Oriental customs and theologies along with the vital essence of that pure and living Dharma conducive to freedom and enlightenment that we are drawn to?


I didn’t write back to the lama’s questions because at the time I thought that Westerners had already adapted quite a bit of the Asian style of Buddhism to the American context. Then, the Buddhist Community at Duke hosted Venerable Pannavati. When two black women and I greeted her, she gave each one of us a big, full hug. Yes, I later reflected, this is how Western Buddhists normally greet each other, and how nice that this nun has chosen to connect with us as we are accustomed to, and as she is, as well.


Ven. Pannavati’s style of giving a dharma talk was so inspirational that I had a huge smile on my face for much of it. She did not choose to speak in what you might call a “white” way, the way English is spoken in newscasts, but instead used the style that black people tend to use. You can hear it in the way President Obama speaks, for example. In short, it was the way she naturally speaks: she did not adapt her style to the setting or audience. As a result, her sentences had a more varied cadence than broadcast English. She played with the language, using phrases with alliteration and poetry. She spoke in a way that was natural, animated, and personal. Her face was expressive and she moved her hands and arms. She made references to the Bible, which many of us understood. There was also energy between her and the audience. Some of the black people in the audience vocalized their approval, in the same way that you hear in black churches or other settings. I really liked this give and take, because it let Ven. Pannavati know she was heard and that what she was saying resonated. If I felt I had permission, I too would have given out a “uh HUH” and a “yes” every once in a while at dharma talks, but instead I just nod my head vigorously but silently.


Witnessing her manner brought to mind how the earlier generation of Western Buddhist teachers have carried forward some of the style and culture of their Asian teachers. In Western vipassana centers, for example, when a Western teacher gives a dharma talk, he or she speaks in a low, calm voice and slowly. There’s some body movement, but not much. The sentences are structured so as to eliminate using the I-pronoun, and things are stated in observational modes. That is, instead of saying “I felt angry,” teachers say, “the arising of anger.” Of course, this way of speaking is very much in line with the what we are trying to do in meditation: cultivate a way of observing that is depersonalized. And the slow, peaceful manner in which teachers speak is appropriate to the retreat format in which the mind has become quite still. Although teachers do use personal stories and humor, for the most part the talks are fairly formal and the audience sits quietly and respectfully.
It was in seeing Ven. Pannavati that I revisited Lama Surya Das’ question. Seeing a teacher present the dharma in a fully embodied expression of a kind of Western American style helped me connect with the teachings in a way that I don’t think I’ve experienced before. And yet everything the nun said was clearly Buddhist – no Asian Buddhist would find what she said objectionable or untrue.


Why is it that one of the most marginalized persons—a black woman--not only in the States but also in Western Buddhism has one of the most authentic and alive ways of teaching? Perhaps because she is so outside the system she is free to be herself. But I know from some of her comments that there has been tremendous pressure on her to conform, obvert pressure from her Asian teachers and subtle pressure from us white Westerners. But she has had the courage to be herself, and as a result, brought one of the most energizing ways of teaching the dharma to the floor that I have ever seen. Although I am not suggesting that Western Buddhists abandon all the forms from Asian Buddhist culture we have learned, I think its time reflect thoughtfully on what forms are not serving a purpose in certain contexts. Although I had invited this black Buddhist nun to speak to the non-white students at Duke, as it turned out, she provided inspiration for us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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