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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통합종단 50년이 이룬 성과

  • 교계
  • 입력 2012.04.1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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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치하 왜색 불교 청산 종단 자주화·전통성 계승

통합종단 출범 50주년 성과와 과제


2001년 한글대장경 318권 완간
기본교육의무화…교육과정 정비
복지·NGO 등 대사회 참여 강화

 

 

▲통합종단은 도제양성과 포교, 역경 사업에 주력하면서 한국불교의 현대화를 이끌었다. 특히 1994년 종단 개혁 이후 포교원을 별원(사진 위)으로 설립, 포교를 전담하도록 했으며 행자교육원(사진 아래)을 별도로 운영, 승려 자질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비구·대처승간의 오랜 갈등을 해소하고 1962년 출범한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은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왜색불교의 잔재 청산과 종단 자주화, 한국불교 전통성 계승을 위한 토대를 다졌다. 특히 통합종단이 출범과 함께 내세운 도제양성과 포교, 역경이라는 3대 목표는 이후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 각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면서 전근대적인 모습에 머물러 있던 한국불교가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통합종단이 내세운 3대 목표 가운데 가장 역점을 둔 분야는 역경 불사였다. 역경은 부처님 가르침을 그 시대에 맞는 보편적 언어로 바꾸는 것으로, 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신행을 위해서는 반드시 진행돼야 할 시급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통합종단은 1963년 2월 역경위원회령을 공포하고, 이듬해 동국대에 동국역경원을 출범시켰다.
초대 원장 운허 스님을 중심으로 난해한 한문으로 된 수많은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대작불사를 시작한 동국역경원은 1965년 6월 ‘잡아함경’을 처음 발간한 데 이어 팔리어로 된 경전과 고승들의 언행록을 차례로 출판했다. 또 동국역경원은 1975년 8만여 장에 이르는 ‘고려대장경’에 수록된 경전들을 모두 한글화하기로 하고 동국대에 ‘고려대장경영인본완간추진위원회’를 구성, 한글대장경 발간을 추진했다. 그리곤 2001년 4월 동국역경원은 출범 37년 만에 총 318권에 달하는 한글대장경을 완간했다. 이는 현존하는 부처님 가르침을 모두 살아 있는 우리의 글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으로 인류문화사 측면에서도 놀라운 성과로 평가됐다.


통합종단은 또 체계적인 교육제도 마련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현대적 교육제도를 도입,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시대가 요구하는 도제를 양성한다는 취지였지만, 그 내면에는비구·대처승간의 갈등 과정에서 대규모로 양성된 스님들에 대한 재교육 문제가 당면과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실제 1954년 정화운동이 본격화 될 당시 500~600여명에 불과하던 비구승들이 1962년 통합종단 출범 당시 10배 이상 늘었고, 이들의 대부분은 스님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종단의 구성원으로 포함됐다. 이로 인해 종단 안팎에서 승풍 실추 사건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종단 구성원에 대한 자질 향상과 정체성 함양을 위한 교육 사업이 절실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통합종단은 1962년 12월 처음으로 교육법을 제정, 종단 교육제도에 대한 기틀을 다졌고, 1964년 기존 강원은 존치하되 동국대에 종비생 제도를 도입해 전통과 현대식 교육의 이원화를 추진했다. 또 1967년 총림법을 제정, 해인총림과 조계총림이 개설한 데 이어 각 교구본사를 중심으로 전통강원들이 속속 복원되면서 승가교육이 활성화됐다. 그러나 당시 복원된 전통강원의 대부분은 학제가 산발적이고 무계획하게 편성되는가 하면 강원보다는 선원을 선호하는 풍토 탓에 전통강원 교육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까닭에 종단 안팎에서는 단일화된 교육목표와 체계 속에서 종단 목적에 부합하는 인재 양성을 담당할 통합교육기관 설립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조성됐고, 그 결과 1989년 학교법인 승가학원을 설립, 1990년 교육부로부터 인가 받은 4년제 대학인 중앙승가대학교를 탄생시켰다.


조계종 교육제도의 대대적인 혁신은 1994년 이른바 개혁종단이 출범하면서부터다. 1995년 1월 교육원을 별원으로 설립한 조계종은 이후 교육법을 정비, 기본교육을 의무화했을 뿐 아니라 기초(행자교육)-기본(강원 혹은 동국대, 중앙승가대 교육)-전문(학림 등 대학원) 과정 등 종단의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비해 현대적 교육시스템 구축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도제양성과 역경이 종단 차원에서 진행된 불사였다면 통합종단이 내세운 포교 사업은 몇몇 원력 있는 스님들과 전국신도회를 비롯해 대불련, 대불청 등 신도단체들이 중심이 된 활동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예산에다 포교에 대한 기본적인 로드맵조차 갖추지 못한 탓에 통합종단 초기의 포교 사업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1994년 개혁종단 출범과 함께 1995년 1월 별원으로 승격된 포교원은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포교 청사진’을 수립, 1996년 ‘불교청소년의 해’를 시작으로 1997년 ‘전법의 해’, 1998년 ‘신도교육의 해’ 등으로 지정, 활발한 포교 사업을 전개했다. 또 1995년 포교사 고시를 시행, 포교사 육성에 나섰으며 청소년 포교를 전담할 ‘파라미타’를 조직, 계층별 포교전략을 수립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1995년 이후부터 2000년까지 총 18억 원의 예산을 책정해 군법당 건립에 나서면서 군포교의 활성화를 위한 밑거름이 됐다.


통합종단은 불교 자주화와 교단의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94년 출재가가 중심이 돼 진행한 종단 개혁은 그 동안 정권에 예속된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고 종단의 자주성을 회복하는 초석이 됐다. 또 총무원장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도록 겸직금지 조항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총무원장과 교구본사 주지, 중앙종회의원 등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도록 함에 따라 교단의 민주화를 실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94년 종단 개혁 이후 기독교계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복지사업에도 뛰어들었고, 교계 NGO 단체 육성에도 앞장서는 등 대사회적 참여에도 남다른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통합종단 50년사는 종권을 둘러싼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의 역사였고, 종단 개혁 이후 도입된 선거제도로 인해 승가의 위계질서가 훼손되고, 이로 인한 부작용이 여전히 잠재돼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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