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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조장터 독수리와 어느 인류학자의 죽음

티베트 원시종교와 결합하며 환생 매개로 확립

 

▲ 조장 터 산언덕에 앉아서 육신의 보시를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들. 천국의 사자인 독수리들은 티베트인들에게 매우 신성시되는 동물이다.

 

 

1989년 달라이라마가 노벨평화상을 획득한 이후 서방세계 특히나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은 티베트 살리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개인적 여행 혹은 학술적 종교적 성격으로 티베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서방인도 적지는 않았지만 1989년 이후 시작된 달라이라마의 국제적 종교법회를 계기로 전 세계는 확실히 티베트를 주목하고 동정하고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오늘날 서방세계에 점진적으로 번지고 있는 티베트 명상센터나 티베트불교에 대한 이해는 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속인으로서 티베트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문명세계의 인간은 누구일까? 필자는 과거 유학시절 뒷골목 허름한 중고서점에서 우연치 않게 ‘서방인의 티베트(西藏) 진입’이라는 책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 책속에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헝가리 등의 기자, 여행자, 사진작가, 구도자, 인류학자 등의 신분을 가지고 티베트 진입에 성공한 사례와 스토리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내용은 미국의 사진작가 겸 인류학자인 마이클(가명)이 티베트의 장례의식 중 조장(鳥葬)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 근원지를 찾아가는 내용이었다. 매우 흥미로웠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몇 십 년 전, 미국의 인류학자 ‘마이클’이라는 인간이 이곳을 찾아왔다. 눈은 보이지도 않는 시커먼 안경을 쓰고 목에는 기다란 카메라를 자랑하듯이 메고서 말이다. 그는 여행 중에 그저 잠시 들렀다며 통하지도 않은 언어를 구사하며 독수리를 신성시하는 티베트인들에게 접근했다. 티베트인들은 그가 외부인임을 알았지만 예민하게 경계하지 않았다. 자비를 베풀어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했다. 어색했지만 마이클이 원하는 대로 사진도 같이 찍었다.


오만했던 이방인의 최후


정착이 되고 마을 사람들이 안심을 하자 마이클은 본격적으로 독수리를 찾아 다녔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많은 날을 헤매고 돌아다녀도 독수리를 발견하지 못하자 마이클은 잔꾀를 냈다. 바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흘려 독수리를 유인하자는 것이었다. 독수리가 사람의 피를 좋아한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날이 밝자마자 독수리가 자주 출몰한다는 지역으로 이동한 마이클은 과감하게 자신의 배에다 칼을 대고 싸악~ 싸악~ 두 번 그었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났건만 피의 양이 적었는지(?) 독수리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마이클은 더욱더 크게 자기의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리며 아예 벌판에 누워버렸다. 그래도 독수리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이클은 기다리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떠보니 하늘에는 수백 마리의 독수리가 나타났다. 독수리들은 떼를 지어 그러나 규칙적으로 창공을 빙글 빙글 돌고 있었다. 마이클은 순간 움찔했다. 저것들이 인간의 육신을 낼름 먹어치운다는 신의 독수리들이란 말인가?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고 가방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레 꺼냈다. 견고해 보이는 동아줄과 날카롭고 기다란 갈고리다. 그리고 눈을 감고 기다렸다. 독수리야 어서 내려와라.


이윽고, 한 마리의 커다란 독수리가 빙글빙글 돌며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이클에게 접근했다. 마이클은 침을 꿀꺽 삼키고 그 독수리가 자신에게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독수리가 자신의 배에 부리를 갖다 대는 순간, 털 난 손으로 독수리의 다리를 재빨리 매섭게 붙잡았다. 독수리는 아차 싶었는지 반사적으로 날개를 힘차게 푸드덕 거리며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피까지 흘려가며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은 그 서양 놈이 놓아 줄 리 없었다. 독수리는 잡혔다. 천국의 사자인 독수리가 동아줄에 꼭꼭 묶인 것이다.


마이클은 동아줄로 독수리를 꽁꽁 묶어서 동네 주민들이 모르게 숲속의 동굴로 들어갔다. 입을 씰룩거리며 씩씩하게 기세등등하게 말이다. 그리고 잡아놓은 독수리를 묶어놓고 매일 매일 관찰했다. 이게 천국의 사자라고? 환생의 전달자라고? 등을 혼자 중얼거리며 독수리의 모습을 세세히 스케치 했다.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독수리를 잡아두고 관찰해오던 마이클은 이제 떠날 준비를 하기로 했다. 독수리가 며칠을 굶어서 그런지 바닥에 주저 않아 움직이질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자신이 정리한 그림과 글을 문명세계에 빨리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동굴로 쳐 들어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다. 그들은 힘없이 주저 않아 날개를 퍼덕이고 있는 독수리를 보자마자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독수리에 앞에서 절을 하면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비해온 방망이와 큰 돌로 마이클의 머리를 쳐서 죽여 버렸다. 죽음을 확인하고도 티베트인들은 분이 덜 풀렸는지 마이클의 사지를 갈라버렸다.


티베트의 장례의식 중에 일반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조장(鳥葬)의식이다. 그런데 조장의식 중에서 ‘천응’(天鷹) 즉, 독수리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천응은 고대로부터 티베트인들이 숭상하는 동물중의 하나였다. 그 흔적은 천응에 관련된 고사나 천응의 상징적 문양이 새겨진 종교문양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지금도 티베트의 산 입구 주변에 정돈된 ‘마니석’(瑪石)이나 산 정상에서 펄럭이는 ‘풍마기’(風馬旗) 그리고 사원이나 궁전벽화에 새겨진 벽화 속에서 천응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티베트인들에게 독수리는 천국의 대리인이요, 신령스러운 상징물이다. 이 천국의 대리인은 그 무엇과도 대적할 수 없는 신령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평화와 환생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 티베트의 독수리는 조장 터에서 상주하고 날아다닌다.

 


인계·천계로의 환생 책임자


문헌에 표시된 천응의 명칭은 다양하다. 티베트어로 ‘Tgod’라 칭하며 음역하자면 ‘고’(古)이다. 한족(漢族)인들은 ‘조’(雕)라 명명하며 중국 서북지역에서는 특별히 ‘고사’(古査)라고 불리 운다. 천응은 두 종류로 구분된다. 백색과 흑색의 독수리이다. 일반적인 흑색의 독수리는 ‘thaug-nag’라 불리며 백색의 독수리는 ‘thaug-dgar’라 칭한다. 티베트에서는 일반적으로 흑색의 독수리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만약 조장의 의식 중에 백색의 독수리가 출현한다면 그것은 길조이다. 망자의 가족들은 물론 의식을 주관하는 조장사와 주술사도 매우 기뻐한다. 백색의 독수리는 쉽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독수리는 고원이며 한랭 건조한 기후에서만 무리군(君)을 형성하며 주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티베트의 원시종교인 본교(敎)에서도 독수리들은 천신(天神)으로 인식되었다. 인간이 죽으면 영혼을 천국으로 안전하게 이송해주는 신성한 새(鳥)라고 믿은 것이다. 불교는 8세기 이후 티베트사회에서 주도적인 종교 세력으로 성장하고 발전했다. 당시의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은 영적 지도자와 통치자들은 조장터 주변의 독수리들을 불교고사(舍身飼虎)에 나오는 공행모(空行母)의 화신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공행모’의 화신은 망자의 영혼을 바람직한 곳으로 전송하여 다음생의 환생을 책임진다고 티베트인들은 믿었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육도윤회(六道輪廻)의 가장 이상적인 경계인 ‘인계’(人界)나 ‘천계’(天界)로 다시 환생한다는 믿음이다.


필자가 조장의 현장에서 인터뷰한 조장사(돕덴)의 설명을 들어보면, 독수리들은 죽음에 다다르면, 그들은 직감적으로 하늘의 태양 속으로 전 속력으로 뛰어든다고 한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것이다. 태양은 독수리를 집어 삼키고 용해시킨다. 그리고 독수리는 천국으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수리는 천국의 사자인 것이다. 육신보다는 영혼을 사랑하는 티베트인들의 눈에는 독수리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통행증과도 같은 것이다. 조장터 주변에는 독수리와 함께 까마귀 떼들도 발견된다. 까마귀는 독수리가 날아들기 전 조장의 현장에 먼저 찾아드는 습관이 있다. 이는 까마귀가 시체의 냄새를 먼저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해부된 인간의 시체를 독수리가 먼저 먹고 날아가 버리면 나머지 찌꺼기를 까마귀들이 깔끔이 먹어 치우곤 한다.


조장의식의 특징은 영혼(靈)을 중시하고 인간의 영혼을 다른 생명체에 ‘전송’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티베트인들은 망자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전통의식에 상대적으로 집중한다. 그리고 시신은 최대한 잘게 부수어 천국의 사자인 독수리라는 매개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때문에 티베트인들에게 독수리는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지켜야하는 수호신이다. 어찌 보면 마이클의 죽음은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심혁주 교수 tibet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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