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천 승가원 자비복지타운 24시

“마음으로 바라보면 장애도 개성입니다”

 

▲불교계 최대 장애인시설 승가원 자비복지타운 가족들의 해맑은 미소에서 장애에 대한 편견은 눈 녹듯 사라진다.

 

 

5월10일 새벽 6시.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불교계 최대의 장애인시설 승가원 자비복지타운(원장 묘전 스님)에 살고 있는 180여명의 가족들이 하나둘씩 잠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각자 맡은 임무에 따라 이불을 정리하고 청소도 하며 아직 일어나지 못한 가족들을 깨우는 등 한바탕 소동으로 승가원 자비복지타운은 어느새 활기를 찾기 시작한다.
특히 체험홈 ‘즐거운 나의 집’ 가족들에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열리는 연등만들기 대회에 출전하기 때문이다. 체험홈 ‘즐거운 나의 집’은 2011년 4월 개소했으며 지역사회 시설 이용, 사회생활 기술 훈련, 견학과 체험 등 사회적응력을 높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 연등만들기 대회 역시 장애가족들에게 자립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봉축 기념 연등만들기 대회 개최


오전 8시30분. 아침식사를 마친 사회복지사와 장애인가족 등 50여명의 사람들이 강당으로 향했다. 강당에는 연등을 만들기 위한 재료가 빼곡히 쌓여있었다. 조별로 둥글게 모여 앉은 사람들은 연등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올해는 열심히 만든 참가자를 위한 상금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상금에 욕심을 부리면 등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게 됩니다. 마음을 비우고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을 새기며 연등을 만들기 바랍니다.”

 

 

▲장보기는 생활재활프로그램 중 하나.

 


승가원자비복지타운 원장 묘전 스님의 인사말과 함께 대회가 시작됐다. 가족들은 컵에 구멍을 뚫어 철사를 연결하고 연잎을 하나하나 붙여나갔다. 느리고 서툴렀지만 정성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완성돼가는 연등을 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체험홈 가족들과 함께 연등을 만들던 김인남(50, 공덕심) 사회복지사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하다.


“체험홈은 장애가족들이 혼자 생활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처음에는 혼자서 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못해 모두들 힘들어했지만 점점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대회에서도 우리 가족들이 처음으로 연등을 만들고 있는데 모양이 매끄럽지 못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다려주는 것만 해도 이미 절반은 성공’이라는 묘전 스님의 말씀을 언제나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약 두 시간이 흘러 완성된 연등들이 강당 앞 탁자로 옮겨졌다. 연등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눈빛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묘전 스님이 심사에 나섰다. 50여개의 연등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는 탁자로 강당의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스님이 천천히 자리를 옮겨가며 연등들을 살폈다. 자신이 만든 연등 앞을 스님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 입에서 기대의 함성과 안타까움의 탄식이 교차했다.


몇 개의 연등을 추려낸 스님이 심사결과를 발표했다. 1등은 손경수(42, 우담) 사회복지사가 차지했다. 연등을 만든 것은 처음이라는 손 사회복지사는 “잘 만들겠다는 마음보다 열심히 만들겠다는 마음을 가지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에 이어 내년에 있을 대회를 기약하는 힘찬 박수와 함께 ‘승가원 자비복지타운 연등만들기 대회’가 마무리됐다.

 

 

▲연등만들기 대회에 참석한 가족이 환하게 웃고 있다.

 


대회를 마친 가족들은 점심식사 후 오후일과를 시작했다. 승가원 자비복지타운은 각 방단위로 사회재활, 직업재활, 의료재활, 생활재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사회재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승가원 사물놀이단은 2010년 제7회 전국 장애인 예술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공연요청이 들어오는 등 명성을 얻고 있다. 이날 7명의 단원들은 재활치료센터 음악실에서 임상희(46, 광명화) 교사의 지도하에 2시간에 걸친 강도 높은 연습을 소화해냈다.


“2008년, 곰팡이 핀 골방에서 연습을 시작했을 때는 여기까지 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단원들도 마찬가지였죠. 악기를 다룬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다들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대회에서 수상했던 것이 가족들에게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습니다. 모두들 표정이 밝아지고 표현력도 좋아졌습니다. 지금은 너나할 것 없이 열심히 연습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음악실의 열기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던 임상희씨는 “올해 일반대회에 참가해 일반인들과 실력을 겨룰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음악실 옆 햇비카페에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방문한 장애인가족들이 가득하다. 햇비카페는 승가원 자비복지타운이 직접 운영하는 커피와 차 전문점이다. 장애가족이 카페 이용과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이용자에게는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운영자에게는 메뉴만들기, 주문받기 등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혀 스스로 카페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있다. 이날도 단정한 유니폼에 나비넥타이를 맨 허광현, 길은엽, 차승일, 김민선, 설동혁 가족은 카페를 찾은 손님들을 맞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생활재활프로그램에는 시장보기도 포함된다. 체험홈에서 생활하는 가족들은 아침과 저녁, 직접 밥과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 버스를 이용해 마트를 찾아가 찬거리를 구매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은 그대로 자립을 위한 훈련이 된다. 이날 유정자(21) 가족과 권선화(36) 가족은 고영미 사회복지사의 인솔로 찬거리를 사기 위해 장호원 시내로 나갔다. 가족들은 이에 앞서 장호원 시내의 도서관에 들러 빌린 책을 반납하고 새로운 책을 대여했다. 그리고 마트를 방문해 각종 채소와 과일, 어묵 등 반찬재료를 구매했다. 모든 과정은 오직 가족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졌다.


다양한 자립 유도 프로그램 진행

 

 

▲법당에서는 매일 저녁 108배 정진이 진행된다.

 


“도서관에서는 빌릴 책을 지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혼자 고를 수 있도록 설명해줍니다. 마찬가지로 마트에서 찬거리의 유통기간과 가격, 신선도 등을 함께 체크하지만 선택은 가족들에게 맡깁니다. 무엇보다 가족들이 직접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승가원 자비복지타운으로 돌아온 유정자, 권선화 가족이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그 사이 연화방의 곽별림, 박정민, 정지영 등 나머지 가족은 청소기를 돌리고 널어놓은 빨래를 정리하며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장애인가족과 사회복지사 30여명이 법당으로 향했다. 법당에 가지런히 앉아 입정으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던 가족들은 오후 6시, 108배 정진을 시작했다. 한배한배 절이 이어지자 펼쳐놓은 좌복 위로 땀이 흘러내렸다. 뜨거운 열기가 이내 법당을 가득 메웠다. 누구 하나 자리를 비우지 않았으며 정진은 계속됐다. 스스로의 허물을 참회하고 부처님께 감사하며 모든 생명의 행복을 발원하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일반인과 장애인의 경계는 부질없는 망상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108배를 마칠 때쯤 해는 서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법당에서 나와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오늘 있었던 일들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가족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 무렵 운동장에는 축구단 ‘FC 승가원’ 선수들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FC 승가원은 장홍기 사회복지사의 지도로 한국스페셜올림픽대회 5인제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경기도장애인풋살대회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우승이 목표라는 단원들은 108배 정진 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운동장에서 진한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2012년 5월10일, 승가원 자비복지타운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천=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