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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인도 최대 탑원굴 카를리 석굴을 찾아서

기자명 법보신문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한 예배 법당

인도서 가장 큰 예배 석굴
중앙 제일끝 스투파 조성
적나라한 조각도 새겨져

 

 

▲1. 카를리 석굴 유적에 붙여 지은 힌두 사원. 예배 행렬.

 

 

카를리 석굴은 지난번 본 바자 석굴의 마을 건너편 산 중턱에 있다. 오토릭샤에서 내려 계단을 한참 땀 흘리며 올라갔다. 석굴들이 속세와 떨어지려고 전부 산 중턱에 있다. 우리 석굴암도 지금은 승용차로 코앞까지 가지만 40여년전 고교 수학여행 때 불국사에서부터 가파른 산길을 한참을 힘들게 걸어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드디어 산 중턱에 넓은 평지가 나오는데 먼발치 석굴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마치 돗데기 시장처럼 난리 법석이다. 무슨 일인가 다가 가보니 카를리 석굴 코앞에 가건물식 힌두사원이 있는데 사람들이 예배보려고 길게 줄을 늘어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그림1). 힌두 사원이 절반을 막고 있어서 온전한 석굴 전면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그림2). 하필이면 불교 성지 석굴 바로 앞에 힌두 사원을 지었을까 했더니 신이 점지해 준 신령한 곳이 사원 터가 되고, 과거에는 불교 유적 장소이지만 그대로 현재에는 힌두의 두르가 사원이 된 것이다.

 

 

▲2. 카를리 석굴 차이탸 전면. 오른쪽이 바로 붙여지은 힌두 사원.

 


굴 입구 왼쪽에 아소카 왕 석주와 유사한 우람한 독립 기둥이 인상적으로 서있다. 주두에 종 모양 연꽃, 그 위에 상자 속의 톱니처럼 생긴 약용 열매 아말라카, 층단 역피라미드, 그 위 꼭대기에 네 마리 사자상이 있다. 이러한 기둥은 그대로 불교 석굴 안으로 들어와 기둥의 기본 양식으로 다양하게 변화하고 나중에 힌두 신전의 기둥으로도 변형된다. 좌우대칭 쌍기둥의 오른쪽 기둥과 전실 오른쪽 벽은 힌두 사원을 짓느라고 파괴해버린 것 같다.

 

 

▲3. 최대 석굴 카를리 차이탸 평면. 전실과 본당과 양 회랑으로 이뤄지고 제일 깊은 곳에 스투파가 모셔져 있다.

 


카를리 석굴은 인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차이탸 석굴이다. 깊이 37.8m 폭 14.2m 높이 13.7m로서 앞서 본 바자 석굴의 근 2배 크기의 우람한 말굽형 예배당이다(그림3). A.D. 1~2세기에 판 것으로 추정한다. 전실에서 3개 입구 중 큰 중앙 입구로 들어가면 넓은 본당이 나온다(그림4). 본당 정 중앙 제일 끝에 큰 스투파가 당당히 모셔져 있다. 어두운 굴속에서 입구 아취 채광창으로부터 떨어지는 은은한 빛으로 비춰지는 스투파는 저절로 신비하고 경건한 마음이 든다. 비교적 단순한 2중 원통 위에 반구형 모양이다. 꼭대기에 신성함의 양산이 하나 씌워져 있다.

 

 

▲4. 카를리 차이탸 내부.

 


굴 좌우 양 끝에는 작은 입구가 별도로 있어서 밖에서 본당 좌우 기둥 뒤 좁은 회랑으로 들어오게 되어있다. 스투파의 탑돌이 경배와 마찬가지로 신도들이 회랑을 따라 왼쪽으로 죽 들어가 스투파를 돌면서 오른쪽 입구로 나왔을 것이다.


불교 석굴은 본당과 양 기둥열 뒤 회랑으로 이루어진 바실리카식이라 일컫는 서양 중세 성당과 거의 같은 모양이다. 제일 속 지성소에 숭배 핵심인 스투파가 모셔져 있다. 서양의 기독교 성당과 인도 불교 석굴은 형태가 사촌간인데, 인류 문명 발달상 우연히 따로따로 발생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대로 기독교가 서양종교가 아니라 바로 동양 태생이라는 점이다. 필자가 확신하건대 과거 서양 성당은 유대 주변의 중동 메소포타미아, 페르샤, 인도의 영향을 받아서 오늘날의 형태로 진화된 것이다.

 

 

▲5. 조각으로 가득채운 웅장한 전실. 코끼리 바닥에 5층 정도 건물 아치를 조각. 오른쪽에 부러진 기둥 일부 그 앞에 바로 힌두 신전을 지음.

 


카를리 석굴의 특징은 단연 화려한 조각상이다. 전실의 전면 벽도 조각이 빽빽하지만 높다란 측면 벽은 제일 아래에 커다란 코끼리 세 마리가 5층으로 구획된 정교한 말굽아치 창과 난간의 건물 부조를 떠받치고 있다(그림5).
본당 내부는 양쪽에 죽 늘어선 기둥들로 인상적인 공간이 된다. 바깥 아소카식 왕기둥과도 닮은 화려한 조각의 기둥 하나하나를 보면 하부 주추 항아리에 심은 8각 기둥 위, 늘어뜨린 연꽃 종모양 주두 위에 앉은 두 마리의 코끼리를 탄 두 쌍의 요염한 인물상이 올라앉아 있다(그림6). 천정은 바자 석굴과 마찬가지로 갈비뼈대 나무판재가 죽 이어져 높은 아치형으로 완성된다. 아치 뼈대와 뼈대 사이 암석천정에 우리의 우물천정처럼 바둑판 모양의 채색 흔적이 죽 남아있다.

 

 

▲6. 내부 기둥 주두 위 코끼리와 남녀 인물상.                              7. 입구 벽면 남녀 조각상.

 


세 개의 출입구 벽면에는 남녀 인물상이 가득 조각되어있다. 거의 벌거벗다시피 띠옷만 입었다. 인도 전역을 다녀보면 불교든 힌두교든 ‘미투나’라 부르는 관능적 남녀 쌍의 조각을 흔히 보게 된다(그림7). 특히 여인상은 중력 무게에도 전혀 쳐지지 않게 탱탱한 G컵 반구 젖가슴에 한쪽 다리를 약간 굽히고 선 강조된 엉덩이에다가 어떤 때는 산치 탑의 약시 상처럼 아랫도리 갈라진 틈까지도 다 보여준다. 더 심하면 다양한 체위의 생산적 활동 장면 까지도 신전 벽면에 조각해 놓는다. 동방예의지국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인물상들은 글자그대로 숨기지 않고 발가벗는 적나라(赤裸裸)함의 인도식 예술적 표현이리라.


근엄하던 초기 불교 석굴은 카를리에서 화려한 조각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이윽고 다음에 올 대승불교의 불상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차이탸 굴 좌우로 규모가 크지 않은 승원굴 비하라 굴이 몇 개 있다. 어떤 벽면에는 협시를 대동한 부처님 무릎앉아 자세의 설법상도 있다. 후일 대승불교 시절에 덧붙인 조각일 것이다.


▲이희봉 교수
다음 호에는 석굴이 소박한 군투팔리 석굴에서부터 발전하여 마지막 카를리 대형 석굴로 발전해나가 완성되는 단계를 보도록 한다. 무엇보다 스투파 예배 의례의 발전과 변화를 통해 스투파 원형 석굴이 말굽형 평면으로 바뀌고 스투파를 둘러싼 기둥들이 발생해 나가는 과정을 하나하나씩 보도록 한다.
 

이희봉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hblee@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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