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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티베트의 천장(天葬)문화-중

기자명 법보신문

척박한 환경 탓에 불교 정착 후에도 천장 선호

 

▲본교가 원시천장에서 인간의 천장으로 승화시키는데 일조 했다면 불교는 인간의 천장 행위 속에서 그 종교적 의미와 내면적 가치를 불어넣는데 공헌 했다. 사진은 사원의 활불로부터 천장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인류의 4대 문명이 태동한 그곳은 의외로 척박했다. 특히나 그리스 문명과 황하 문명의 탄생은 머리를 갸우뚱 할 정도로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에도 지극히 불편하고 난감한 지형적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상상을 불허하는 문명이 형성됐다. 그리고 그 문명의 중심에는 사상(종교·철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왜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생존환경과 자연환경이 유리한 곳에서 멋진 무언가가 탄생하는게 맞지 않을까? 여기에 관하여 영국의 문명사가 토인비는 반전의 견해를 내놓았다. 즉 “오히려 문명은 불합리한 자연환경에 인간의 도전이 성공적으로 응전한 곳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위대함에 ‘도전과 응전’의 원리를 부여한 것이다. 사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과 고백이 극대화 될 때, 소위 ‘문명’이라는 거대한 거인이 태어 날 수 있다.


문명이 태동한 곳에 종교가 있다


티베트 민족의 장례(葬禮)의식 중, 소위 ‘천장문화’는 티베트 민중들에게 매우 보편적이며 인기가 많은 장례방식이다. 그런데 절대다수의 티베트인들이 불교를 신봉하는데 그들은 왜 장례의 주요형식인 화장(火葬)이 아닌 천장을 선호하는 것일까? 여기에 관하여는 두 가지의 큰 이유가 작용한다. 첫 번째는 설산 위의 티베트라는 지형적 자연 환경이고, 두 번째는 종교적인 사회 환경이다. 티베트 지역은 고원지대이며 건조하고 산이 많은 지형적 특성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원지대의 토양성질상 식물의 성장을 원활히 촉진하지 못한다. 그래서 식물의 발육은 지역별로 상당히 제한을 받고 있다. 실질적으로 필자가 답사한 라싸와 동남쪽의 장목(樟木)지역의 임업상황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외국인 탐험가 맥도날드(David Macdonald)는 그의 저서 ‘티베트에서의 20년(Twenty years in Tibet)’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바 있다.


“티베트인들은 겨울에 무덤을 파야하는데 문제에 직면한다.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지면에 불을 지펴서 먼저 땅을 녹여야 하는데, 목재의 수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천장(天葬)’의 보편화에 기여할 것이다.”


이는 화장을 하려면 목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그러지 못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사실이다. 티베트인들은 불교를 숭상하고 화장을 추구하여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목재와 연료 부족이라는 고원의 현실 속에서 화장법은 티베트 사회에서 주류적인 장법(葬法)이 될 수 없었다. 심지어 티베트인들은 부족한 목재를 대체하기 위해서 양이나 야크의 배설물을 겨울의 유용한 연료로 사용 하고 있다. 따라서 제한적인 자연자원의 상황으로 인해 화장법의 실행은 극소수(약 5%)의 경제력을 갖춘 귀족(貴族)계층이나 상층 라마승(활불)의 특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즉, 화장법은 아무나 실행 할 수 없는 특권계층의 전유물인 셈이다.


또 하나, 천장풍습이 티베트 사회에 정착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의 하나는 불교가 토착 종교인 본교를 정치와 문화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어내고 주류 신앙으로 안착했다는 것이다. 티베트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대략 8세기인 송첸 감포(松贊干布, 671- 650) 시대로 공인되고 있다. 그런데 불교가 티베트 사회에 첫 전파를 탔을 무렵 기존의 기득권층인 본교세력의 견제와 압력은 실로 대단했다. 티베트 역사에서 이 신구(新舊)의 종교전쟁은 200년간이나 계속되었으니 그 치열함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결국 불교는 200여 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 끝에 토착 종교인 본교를 중심세력에서 밀어내고 티베트 사회의 주류 신앙으로 안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동안 강력한 장악력으로 티베트 사회를 좌지우지했던 본교는 어떻게 외지에서 들어온 불교에게 밀려났으며 이러한 현상은 티베트 사회의 천장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친 것일까? 역사적으로 토번(吐蕃)왕조 초기 본교의 세력은 매우 공고했다. 경제적으로는 물질(토지와 장원)이 풍부한 귀족[大臣]세력이 스폰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고 민간에서는 무지한 일반 티베트인들의 고집스러운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당시 본교가 추구하는 사유체계(사상)가 대단히 매력적으로 일반인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이었다. 고대 티베트의 무섭고 외로운 생존환경은 인간들을 공포와 두려움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항상 무언지 모를 신비한 힘을 간직한 것 같은 거대한 자연물(해, 달, 바위, 나무)과 그 속에 들어 있을 것 같은 영혼과 초월적인 힘에 대한 숭배와 두려움을 쉽게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숭배하고, 그 내재적 힘과 교감하고, 그 뜻을 헤아리고, 그것에서 영적인 힘을 얻어 내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티베트인들은 구체적으로 숭배할 대상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해, 달, 별, 호수, 설산, 나무 등과 같은 눈에 보이는 자연물 위주였다. 그것들과 교감하고 그것으로부터 보호를 받기를 소망했다. 이러한 본능적인 사고방식과 행위의식은 점진적으로 개인에서 집단으로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인으로 확대되어 갔다. 그리고 당시 대자연의 근원을 탐구하고 그 속에서 위안을 찾던 전문 구도자(라마승들)들의 깨달음에 힘입어 어느덧 제도와 조직이라는 외적인 구조와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것이 초기 본교의 형성과정이다. 본교는 세상을 신과 인간과 귀신의 세계로 삼등분하여 삼자의 상호연결 관계에서 인간의 길흉화복이 이루어진다고 인식하였다. 본교의 이러한 가치관은 점차 확대되어 소위 종교로까지 조직화되고 체계화 되었다.


불교의 따뜻함이 민중들에게 어필


그러나 훗날 본교의 경직된 신앙체계와 각종 의식은 일반 민중들에게 부담과 공포로 다가왔다. 특히나 본교의 상장방식은 매우 살벌했고 피의 향연이었다. 본교는 티베트 사회에서 상장(喪葬)풍속과 제사, 점괘 등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나 상장방식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무사(巫師)의 출현 이후 티베트 사회는 본교의 영향력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본교는 당시 티베트인들의 삶에 있어서 유일의 종교였고 유일한 대안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 8세기에 불교가 처음으로 티베트에 전입됐다. 인도의 저명한 학승들이 초청되기도 했고 중원의 한족 불교 사상이 유입되기도 했다. 불교의 따뜻한 이론과 교의(敎義)가 점진적으로 티베트의 지식층과 일반인들에게 또 하나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결정적으로 그동안 본교를 지지하던 귀족계급과 왕들은 불교를 접한 이후에 차츰 등을 돌리게 되었다. 그 주된 이유는 본교의 교의와 모든 종교의식은 살생(殺生)을 전제로 하는 피의 향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교는 이와는 다르게 살생을 배제하고 타인을 위한 따뜻한 이론체계를 앞세워 피를 부르지 않고도 상장의식을 진행 할 수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제시하였다. 본교는 매년 제사를 위해서 많은 가축을 잡았으며 물질적 요구가 만만치 않았다. 이때 국가의 안정된 통치체제와 재정낭비를 걱정한 티베트의 법왕 송첸 감포는 결국 공식적으로 본교를 금지하고 불교를 장려했다. 물론 당시 송첸 감포 왕이 한족의 문성공주와 결혼을 하면서 불교에 관심을 가진 것도 외면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왕의 외면을 받은 본교는 세력의 중심부에서 변두리로 급속하게 밀려났다. 불교는 토번왕조 말기 랑다마(朗達瑪, 836-842)에 의해서 단 한차례 시련의 시기를 겪지만 결국 극복하고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티베트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살펴보면 본교는 초창기 천장의 형성과 내용면에서 많은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불교가 본교의 역할을 접수한 후 티베트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은 본교보다 더 광범위하고 세밀했다. 불교는 티베트 사회의 장례문화에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불교가 흥성한 이후 티베트 사회에서는 화장(火葬)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목재부족이라는 한계 때문에 아무나 원한다고 화장법을 진행 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일반 티베트인들은 보편적인 천장을 선호했다. 불교는 천장문화의 초기형태에서 더욱 업그레이드된 가치관과 행위의식의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초창기 본교가 원시천장에서 인간의 천장으로 승화시키는데 일조를 하였다면 불교는 인간의 천장 행위 속에서 그 종교적 의미와 내면적 가치를 불어넣는데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불교에서는 사후에 생전의 행위에 따라 내세에서 천계(天界)에 들어가게 될지 지옥에 들어가게 될지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티베트 사람은 삶에 있어서 선근의 축적을 중요시하며 죽음에 임해서는 환생을 희망한다. 이때 천장이라는 장례의식은 망자가 다음생애 인간으로 환생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우 실천적인 방법인 것이다. 


심혁주 교수 tibet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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