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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양 첫 비구니 아야케마 스님 출가

1979년 7월 스리랑카서 수계
나치 탄압 피해 난민으로 생활
불법 만나 출가수행자 삶 발원
샤카디타 창립…여성권익 앞장

 

▲아야 케마 스님

1979년 7월 어느 날,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한 작은 마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날은 유럽 출신 한 여성의 출가의식이 있는 날이었다. 이미 오래전 비구니 승단의 맥이 끊긴 남방불교권에서 여성출가자 수계의식은 진귀한 일이었다. 계사인 나라다 스님은 삭발염의한 파란 눈의 여행자에게 출가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사미니 10계를 설했고, 그는 묵묵히 계를 지킬 것을 다짐했다. 서양인 최초의 비구니이자 여성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했던 아야 케마(Ayya Khema) 스님의 출가수행자로서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1923년 독일의 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스님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1939년 나치가 유태인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면서 시련이 찾아왔다. 유태인에 대한 대학살이 시작되자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스님은 나치의 눈을 피해 15살의 나이로 영국으로 피난했다. 2년 후인 1940년 스님은 중국 상해에서 그곳에 피신해 있던 부모와 만나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불과 1년 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스님의 가족은 다시 일본군에 잡혀 수용소에 갇히게 됐고, 그 안에서 아버지가 사망했다. 다행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수용소에서 풀려난 스님의 가족은 미국행을 택했다. 그곳에서 17년 연상인 유태인과 결혼해 1남1녀를 두는 등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허나 그는 어느 순간부터 마음 한편에서 끝없이 솟아오르는 삶에 대한 궁극적 물음에 대한 답을 갈구했다. 특히 일본 수용소에서 포탄에 맞아 육체가 산산조각 난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뒤로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가 그를 온통 사로잡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만이 파랑에 쓸리는 쪽배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남편은 멀어져 갔고, 결국 이혼으로 이어졌다.


이후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겔드를 만나 재혼한 스님은 가족과 함께 히말라야를 포함한 아시아 각국을 돌아다녔다. 특히 인도 여행을 통해 처음으로 명상을 접하고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신비한 체험을 했다.


1973년 호주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스님은 우연히 영국 출신의 프라 칸티발로 스님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불교에 눈을 떴고, 마침내 자신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깨달음의 길을 발견했다. 지난했던 50년의 삶 끝에 만난 불교의 가르침과 수행은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 같았다. 하루하루 변화되는 자신의 내면을 관찰할 때면 희열에 젖었다. 스님은 미얀마와 스리랑카 등 남방불교의 이름난 수행처를 찾아다니며 내면의 깊은 세계로 향했다. 또 프라 칸티발로 스님과 함께 호주에 명상센터를 세워 수행을 직접 지도하기도 했다.


1979년 그는 마침내 출가를 결심했다. “그동안의 삶은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세상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진정한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겠다는 결연한 선언이었던 셈이다.
출가 이후 스님은 불교를 서양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1983년 스리랑카에 세운 여성수행자의 전문 수행도량인 ‘비구니섬’과 1987년 독일에 붓다하우스를 세운 것도 이런 원력에서 비롯됐다.


스님은 많은 비구니 제자를 양성했고, 여성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남방불교에서 비구니 승단이 사라지고, 대승불교권에서도 비구니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깊이 탄식한 스님은 여성 불자들의 결집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1987년 세계 최초의 비구니 국제대회인 ‘샤카디타’를 조직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스님은 또 같은 해 5월 비구니로서는 최초로 유엔에 초청돼 불교와 세계평화, 남녀평등을 주제로 연설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런가하면 스님은 독일에 남방불교의 전통을 살린 ‘숲속 사원’을 건립해 유럽인들에게 명상수행법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기도 했다.


유태인 난민에서 탐험가로 다시 출가수행자의 삶을 살았던 아야 케마 스님. 자신이 불법에서 얻은 평화와 행복을 나누기 위해 삶의 마지막까지 헌신했던 스님의 자비와 원력은 서양인들의 가슴에 불교라는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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