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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티베트 천장사(天葬師)의 하루-하

“어린아이 시신 볼 때면 천장사도 가슴 아려”

 

▲이곳에서 라마승들은 밀교수행, 특히 무상요가탄트라의 수행에 의해 재생과정을 완벽히 컨트롤하여 장구한 세월을 한 생으로 압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정식으로 천장사의 길을 가고자 결심했을 때, 스승님이 나를 불러 처음 해주신 말씀은 ‘포정해우’(丁解牛)라는 고사였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중국 위(魏)나라에 포정(丁)이라는 유명한 요리사가 혜왕(惠王) 앞에서 소를 잡는데, 순식간에 완벽하게 뼈와 고기를 분리하였다. 그 모습에 혜왕이 감탄하자, 포정은 자기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소를 보면 소의 외형만 보였는데 3년쯤 지나자 뼈와 근육이 보였으나, 19년이 된 지금은 소를 정신(혼)으로 대하여 눈 감고도 소의 몸에 생긴 틈바구니를 자연의 섭리에 따라 칼질하기에 칼날이 뼈와 부딪히지 않고도 가죽과 고기를 모두 도려낼 수 있었다. 그러하기에 19년 동안 칼을 한 번도 갈지 않았다”고 했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질 않아 스승님께 다시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풀이해주셨다.

 

“부정관으로 집중·인내력 배양”

 

어떤 분야든 최고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최고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아는 것이 많다고 최고가 되지 않는다. 평소에 말씀이 없으신 스승님께서 계속 말씀하신다. 네가 앞으로 시체를 해부하는데 있어서 힘들다면 바로 위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이제 앞으로 전문적으로 시체를 해부해야 하는 수행승이다. 올바른 마음가짐과 자세가 필요하다. 시체를 인간으로 보지 말고 그저 육신의 덩어리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뼈는 사방으로 튀고 해골은 네 마음대로 부서지지 않으며 오히려 너의 손과 몸만 다칠 뿐이다. “천장사는 시신을 눈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방을 나서기 전, ‘부정관(不淨觀)’ 명상을 했다. 부정관은 시체가 썩어서 분해되는 과정을 9단계로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매번 전날의 시체를 생생한 이미지로 떠 올려서 명상한다. 관(觀)이란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어서 그저 현상을 보는 것(看)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도의 집중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명상을 마치고 피보다 더 진한 피 색깔을 하고 있는 보이차(普茶)를 한잔 마시고 일어섰다. 이제 천장터로 출발이다. 천장터는 사원 뒷산에 있는데 천천히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한다. 일찍 도착해서 망자의 식구들과 인사도 해야 하고 천장터 주변도 정리해야 한다. 어제 보니 도끼와 칼이 많이 무뎌져 있음을 느꼈다. 그러면 뼈와 뼈 사이의 육신이 잘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니 미리 갈아놔야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다.


천장터 입구에 다 왔을 무렵 독수리 두 마리와 만났다. 한 마리는 벌써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저 앞에서 버티고 서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언덕에 앉아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천국의 사자여, 오늘도 맛있는 식사 준비하겠습니다.” “맛있게 싹싹 먹어주세요.” 그런 나를 독수리 한 마리는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커다란 날개를 펼쳐 보인다. 알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거의 매일, 이곳에는 시체가 들어온다. 집에서 2~3일 보관하다가 온 시체도 있고 바로 올라온 시체도 있다. 그런데 죽은 시체도 종류가 있다. 예를 들어 불의의 사고로 죽은 사람들(객사)과 자연사(병사)한 사람들이다. 시체들은 일단 이곳에 올라오면 같은 곳에서 보관하지 않는다. 객사와 자연사는 일단 보관하는 장소가 다르다, 전통적으로 티베트에는 천장 이외에도 수장(水葬), 탑장(塔葬), 화장(火葬)의 장례방식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장례의 구분이 거의 없어졌다. 전통적으로 화장과 탑장은 고위 라마승이나 활불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원하면 이 장법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수장도 원래는 어린아이나 전염병이 있는 시체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또한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장법의 구분이 없어진 건 몇 년 전부터 확실해졌다. 한족은 원래 천장을 하지 않았는데 종종 이곳으로 시체를 가지고 오는 이도 있다. 티베트불교를 믿는 신자이다. 처음 한족의 시체가 왔을 때는 하지 않으려고 매몰차게 돌려보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육신의 덩어리에 분별이 어디 있겠는가? 한족이건 티베트인 이건 원하는 자는 분별없이 들어주라는 스승의 조언을 듣고 부터는 분별없이 받아들인다.

 

시체마다 죽은 사연 담겨

 

 

▲죽음은 종결과 이동(移動)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영원한 삶, 영원한 죽음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윤회(輪廻)하는가’ 티베트에서는 ‘의식의 흐름’(citta santana)을 주목한다.

 

 

나는 가끔 오는 어린아이 시체가 불편하다. 눈도 불편하고 마음도 불편하다. 시체를 해부하는 전문 천장사 이전에 나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도 오감(五感)이 있고 육식(六識)이 있는 인간이기에 객사한 어린아이, 특히나 어린 여자아이의 시체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 여리고 조그마한 시체를 끈으로 묶은 모습을 보면 무슨 사연으로 벌써 죽었나? 하는 마음이 먼저 가슴을 파고든다. 그래서 이런 어린시체를 해부할 때에는 일부러 눈을 보지 않는다. 얼마 전 눈을 뜨고 죽은 어린아이 시체를 정면으로 해부하다가 가슴이 일렁이고 토악질이 나서 혼났다. 그래서 이런 시체는 아예 엎어놓고 해부를 하는 것이 낫다.


제자들 중 경험이 제일 많은 숨마추제가 자물쇠로 잠겨 있는 나무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시체를 해부하는 공구와 도구가 정렬돼 있다. 날이 선 도끼와 칼, 가위 등이 나온다. 역시 도끼와 칼은 좀 갈아야 할 것 같다. 이런 상태로는 뼈와 해골을 내리칠 때 자꾸 어긋나기 때문이다. 어긋나면 손과 다리를 다치기 쉽다. 무딘 도끼로 갈비뼈를 쳐 내다가 내 발등을 찍은 경우도 있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사건(?)이기에 방어나 수비를 할 만한 순발력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도끼의 날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가위는 주로 머리카락 자를 때 쓰고, 사각 칼은 시신의 내장을 긁어내거나 자를 때 사용한다. 도끼는 팔, 다리를 해체할 때, 망치는 뼈를 부술 때 유용하다. 제자들은 현장을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고 나는 언덕 쪽으로 올라가서 5분 정도 반대 편 언덕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시체를 보는 순간 이 사람의 전생을 볼 수 있을까? 현생에서 죽기 전까지 무슨 업(業)을 지었는지 알 수 있을까? 이 사람의 삶을 볼 수 있을까? 솔직히 궁금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제 해부를 해야 할 시간이다. 현장에 긴장의 기운이 슬슬 돌기 시작한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제자들을 불러놓고 마지막 주의를 주었다. 해부를 할 때, “피를 두려워하지 마라”, “시체를 인간으로 생각 하지 마라”, “소리 내지 말고 의식하지 마라”, “독수리들이 오지 못하게 해라”, “중간에 마음대로 쉬지 마라”, “뼈를 내리칠 때 조심해라. 얼굴에 튀면 다친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라”, “하다보면 점차 손에 익는다.” 갈고리는 내장을 꺼낼 때 쓰고 작은 도끼와 긴 칼은 시신을 잘게 다질 때 쓴다. 이건 무기가 아니다. 그저 천장의식의 도구 일뿐. 일반인들에게는 흉기나 다름없는 이 도끼나 칼은 우리들에의 손에 쥐어지면 그냥 도구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한명은 해부작업을 하면서 내가 사인을 하기 전까지는 주기적으로 독수리들이 못 오게 관찰하고 혹시 외부인이 사진기를 들이대고 찍고 있으면 가차 없이 빼앗아 박살내버려라. 그리고 쫓아버려도 좋다. 그들은 예의가 없는 사람들이다. 자, 시작할까.

 

심혁주 교수 tibet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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