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 지리산 실상사

기자명 법보신문

사람이 절이고, 절이 사람인 세상을 향한다

지리산 실상사는
신라 구산선문 최초의 가람
禪風 발상지나 수 차례 全燒
도법 스님 ‘마음 탁발’ 계기 
생명평화 운동 중심 도량으로

 

 

 

 

“우리 절은 남녘에서 가장 크고 깊은 지리산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수 만평의 논 한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이 너른 들판이 여름이면 새록새록 자라는 볏 잎으로 초록바다가 되고 실상사는 그 속에 마치 섬처럼 있습니다. 가을이면 벼가 익어 황금물결 일렁이는 그 속에 보물선 마냥 흔들리며 있습니다. 겨울이면 벼 베인 휑한 들판에 무상(無常) 모습으로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봄이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너른 들판 한 가운데 마치 신기루처럼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보시면 너른 들판 가운데 멋 하나 없이 밋밋하게 있는 그런 절이 아닐 겁니다. 불교최초 절인 ‘죽림정사’ 역시도 마을 옆 들판에 자리하였습니다.”


주지 해강 스님의 지리산 실상사에 대한 설명이다.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있는 천년 고찰 실상사. 인월에서 뱀사골 방면으로 가다보면 나타나는 삼거리 쯤에 자리잡고 있다. 실상사 표지를 따라 가면 이내 만수천이다. 지리산 계곡을 빠져나온 물길이 제법 소리를 지른다. 그 위에 걸쳐 있는 해탈교를 지나면 들길이 나타난다. 잠시 걷다보면 천왕문이 서 있다.


확실히 실상사는 여느 사찰과는 다르다. 마을과 이웃하고, 앞에는 들판이 펼쳐져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문득 고요하다. 육중한 대웅전과 화사한 단청을 연상했던 사람들은 경내의 빈 공간이 당황스럽다. 그러나 이내 정겹다. 1200년 동안 그 자리에 서있는 석탑에는 시간이 고여 있는 듯했다. 사람이 들어서야 비로소 절집이 되는 고찰, 실상사. 약사전에 모셔놓은 약사여래불의 눈길을 따라가면 멀리 지리산 천왕봉의 이마가 보인다. 경내를 돌아보니 곳곳에 붉은 감이 떨어져 있었다. 감나무 꼭대기에는 가을이 살랑거리고 있었지만 경내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여름이 쪼그리고 있었다.


천년사찰 실상사는 구산선문 최초의 가람으로 선풍의 발상지였다. 신라 흥덕왕(828년) 증각대사 홍척이 창건했다. 선풍을 일으키며 번창했던 실상사는 조선 세조(1468) 때 불에 타 전소됐다. 그 후 숙종, 순조, 고종 때 중건했다. 1883년 유생들이 불을 질러 모든 전각이 타버렸고, 이듬해 보광전 등 10여 채만을 중건했다. 그래도 전남 도내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보물이 있다. 백장암 삼층석탑, 수철화상능가보월탑,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 석등, 부도, 삼층쌍탑, 증각대사응료탑, 증각대사응료탑비, 백장암석등, 철제여래좌상……. 헤아리기가 숨이 찰 정도이다.


실상사에는 화려한 경관은 없다. 그러나 그 속에는 생명평화가 깃들어 있다. 인드라망의 세계관이 스며 있다. 실상사는 이름대로 실상(實相)을 보는 사찰이다. 낙동강 1300리 도보순례, 지리산 850리 도보순례를 결의했던 곳도 실상사였다. 5년 동안 진행된 생명평화탁발순례의 모태도 실상사였다. 자연 실상사는 생명평화운동의 실천현장이다. 그곳에는 도법스님(실상사 회주)이 있다. 화엄사상으로 세상을 비춰보는, 우리 시대의 실천승이다. 물질만능주의, 힘의 논리, 생명 경시의 천박한 자본주의 풍토를 거부하고 생명평화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스님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생명평화 탁발순례중에 일정을 설명하고 있는 수지행(사진 가운데). 그녀는 순례단보다 먼저 마을에 들러 주민들의 마음을 탁발하곤 했다.

 


요즘은 ‘생명평화’란 말을 곧잘 입에 올린다. 사람들은 ‘생명이 곧 평화이고, 평화가 곧 생명’이라는, 그래서 생명평화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생명평화순례를 통해 마음을 탁발한 결과이다. 도법스님을 비롯한 순례단은 길에서 길을 찾았다. 그것은 ‘생명과 평화’에서 ‘과’자(字)를 빼내는 거대한 울력이었다.


1998년 5월 실상사 경내는 꽃향기가 그윽했다. 한밤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주지 도법 스님을 찾았다. 수지행이었다.

 

“스님 저 아파요.”


스님은 말이 없었다. 한 참 있다가 가만히 말했다. “내려오시게.”


그렇게 수지행은 실상사에 들었다. 화엄학림 귀퉁이 방에서 절을 했다, 스님 앞에 엎드렸는데 울음이 터졌다. 다시 일어날 수 없었다.


절을 떠나 살던 10여년의 세월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불교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늦게 철학과에 입학했던 그녀는 ‘전태일 평전’을 접하고 대학생활이 바뀌었다. 처음으로 중생의 삶과 보살의 삶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사회운동으로 마음이 옮겨갔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보살도의 실천이었다. 10여년을 그렇게 살았다. 자신을 다 바쳤고, 그 안에서 충만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공허함이 밀려들었다. 때로는 분노가 가득 차올라 터져버릴 것 같았다.


“지금 왜 여기에 서있지?”


불자로서 의미 있는 삶이라고 선택한 길이었는데, 어느 날 둘러보니 정작 자신은 길을 잃고 있었다. 문득 도법스님이 떠올랐다. 도법스님이 금산사 화엄학림에 있을 때 알았지만 특별한 인연은 아니었다. 단지 당시 스님이 어느 잡지에 기고하고 있던 화엄경 선재동자 구도기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뿐이었다. 그런데 왜 스님이 생각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스님은 또 말이 없었다. 끝내 절을 마치지 못했다. 그런 수지행에게 스님은 100일기도를 권했다. 수지행은 100일 기도를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살았는데 이 자리에 있지? 지난 세월은 무엇이란 말인가.”


처음에는 ‘기도해야 하는 상황’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이 나타났다. 헌신 뒤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이 보였고, 완고한 자아로 무장된 모습도 보였다. 당위의 가치로 열심히 일했지만 수행은 잃어버린 삶이었다. 삼법인의 가르침을 놓치고 살아왔음이었다.

 

수지행 종무실장은
‘보살도 실천’ 여기며 사회운동
문득 몰려드는 공허감·분노는
수행·삼법인 떠난 삶에서 기인
‘화엄=실천=수행’서 희망 발견

 

 

▲실상사 발굴조사 중에 나온 기와들을 쌓아놓은 기와탑. 천년 세월을 모아놓은 셈이다.

 


기도를 마친 후 다시 도법 스님을 뵈었다. 그리고 스님이 실상사를 중심으로 펼치고 있는 일들을 살펴보았다. 스님은 화엄사상 속에 갇혀 있지 않았다. 스스로 화엄의 광장으로 나와 이를 구현하고 있었다. 지극정성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품었다. 많은 사람이 입으로 연기관을 얘기하지만 스님은 이를 실천하고 있었다. 화엄의 가르침은 분명 사회적 실천이었고, 생명운동이었고, 평화운동이었다. 동시에 자신을 찾아가는 수행이 있었다. 수지행은 이때부터 생명평화에 눈을 뜨고 생명운동에 뛰어들었다. 그것은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행이었다.


서울에 올라가 인드라망생명공동체에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리산에 댐을 세우겠다는 발표를 들었다. 이때부터 뇌리에서 지리산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도 제대로 몰랐던 지리산의 가치, 생태적 지역공동체 운동에 더욱 눈뜨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2년 지역공동체 운동에 뜻을 두고 지리산으로 내려왔고, 한생명 사무국장으로 마을활동을 했다.


그러던 2003년 말, 지리산 평화결사 결성 현장에 앉아있게 되었다. 실상사에 모인 도법, 수경 스님과 이선종, 이병철, 박성준 등 우리 사회의 생명운동에 뜻을 모은 사람들이었다. 결사대원들은 탁발순례를 결의했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마침내 2004년 3월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실상사를 떠났다. 그 맨 앞에, 그리고 맨 뒤에 수지행이 있었다. 순례단의 발길이 닿기 전에 마을에 들렸다. 주민들을 만나 먼저 마음을 탁발해야했다. 그러나 마음을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어떤 이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생명평화냐고 대놓고 비웃기도 하고, 스님이 조용히 순례하면 됐지 뭐 이렇게 시끄럽게 다니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나 경청하고 대화하다보니 그 말들의 본뜻이 몸속으로 들어왔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차츰 그들의 조건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반대자의 덕목도 알게 되었다. 삶과 수행의 통일, 운동과 수행의 통일이 왜 생명평화운동의 기본이어야 하는지도 깊게 알게 되었다.


수지행은 나름대로 홀로 순례를 한 셈이다. 순례단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길을 누볐다.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자세로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알게 됐다. 먼저 다름을 인정하고 순례단의 진정성을 얘기했다. 그것은 자신 안에 숨어있던 또 다른 나에게 얘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탁발순례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내 안의 아집을 다스릴 수 있었다. 놀라운 ‘치유의 은혜’였다. 막연했던 것들이 분명해졌다. 나라는 생각, 내것이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은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순례를 마칠 때는 거기에 ‘당신이 길입니다. 당신이 내 목숨입니다’라는 슬로건이 하나 더해졌다. 그것은 그녀가 순례 중에 얻게 된 인식의 확장이었다. 순례를 마치고 도법스님께 감히 아뢰었다.


“저를 위해 순례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지행은 지금 실상사 종무실장을 맡고 있다. 다시 추진되고 있는 지리산댐 건설을 백지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또 생명평화사상의 산실 실상사가 벌이는 중창불사의 한 가운데 서 있다. 비가 오면 법당 밖에 천막을 치고 법회를 봐야했으니 사부대중의 “우리는 흥부 가족”이라는 푸념이 나올만했다. 부처님도 이를 딱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불사의 조건은 까다롭기만 했다.

 

 

▲실상사 입구에 ‘지리산댐 절대 반대’라는 펼침막이 걸려있다. 생명평화 사찰의 결기가 느껴진다.

 


“산절·들절·마을절이라는 지역적 특장을 살려라” “생명평화운동의 산실이 되도록 해야한다.” “경내의 빈 터는 그냥 두도록하라” “스님의 정갈한 빗자루질 자국이 남도록 흙마당을 남겨라” “사람, 땅, 역사, 시간을 아로새겨야 한다.”


천년 사찰의 존재 이유를 찾고, 생명평화운동의 산실이 돼야 한다는 것은 지난한 작업이었다. 그래도 실상사는 이를 수렴하여 불사10조를 발표했다. 연기적 세계관의 불사, 생명살림의 불사, 공동체를 살리는 불사, 절제의 아름다움이 있는 불사, 대중적 협동의 불사, 자연과 풍경을 배려하는 불사,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불사, 고전의 정신을 계승하는 불사,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불사, 지속가능한 생태적 불사가 그것이다. 불사10조를 지키면 숲이 절이고 절이 숲인, 사람이 절이고 절이 사람인, 마을이 절이고 절이 마을인 실상사가 태어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7일 중창불사 기공식을 가졌다. 주지 해강스님은 ‘실상사 중창불사 기공식 고불문’을 읽었다.


“세상 모든 것,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와 가치를 갖지 않은 존재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 존귀하지 않은 것 없으니, 세상 모두가 본래 부처입니다. 부처가 계신 곳, 그곳 그대로 법당이요 성스러운 도량입니다. 새삼 다시 불사를 일으켜 도량을 세울 필요가 있으리오만, 소 타고서 소를 찾는 중생인지라 이미 부처 자리인 이곳에 새로운 탑을 세우고자 합니다. 사부대중이 함께 모여 21세기 한국불교의 새 장을 열어갈 수행도량을 가꾸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꿈의 불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수지행은 “장담 못해요. 해야 될 일이니 해보는 거죠”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깨어있음이다. 아무리 고상한 말로 시작해도 깨어있지 못하면 실상사 불사도 ‘윤회의 회전문을 들락거리는’일이 될 테니,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라고 했다. 당위적이고 의미 있는 일일수록 내밀한 곳까지 더욱 깊은 경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녀는 요즘 아프지 않다. 바쁠 뿐이다. 실상사에는 생명평화를 퍼 나르는 일꾼 수지행이 있다.


김택근 wtk222@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