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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본래 공한 것이지요’

서옹 큰스님과 마주앉아 담소하고 있는데 한 거사가 찾아왔다. 큰스님이 서울에 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인사차 찾아온 분이었다. 수인사가 끝난 후 그 거사는 오늘 요긴한 일로 스님의 가르침을 받잡기 위해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겠다고 한다. 큰스님이 주저 말고 말하라고 하자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 거사에겐 아들이 둘이 있는데 그 중에도 둘째 때문에 늘 마음속에 걱정을 떨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아들이 학교공부는 잘하면서도 대학입시에선 계속 실패를 거듭했던 일도 그렇거니와 일본유학을 끝내고 취직을 하려해도 잘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엇인가 그 아들에게 문제가 있고 그런 자식을 낳아 기른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노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무엇인가 자신에게 있는 무거운 업장을 풀기 위해 불교공부도 많이 하고 불공도 드렸으며 3천배를 거듭하며 참회도 많이 했다는 고백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 이번에 결심을 하고 큰스님을 뵙는 기회에 방편을 얻어 자신들의 문제를 해소해보고 싶다는 호소다. 그러면서 거사는 자신이 30여년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때 그의 아내는 만삭이었으나 몸이 몹시 허약했기 때문에 이웃사람들이 순산조차 어렵겠다고 걱정하는 바람에 아내를 보호할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이웃의 한 노인이 염소를 고아서 먹이면 좋다는 권유에 마음이 동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내는 그게 살생인데 어떻게 먹겠느냐고 싫다고 했지만 자신은 기왕 마련한 것이니 먹으라고 강권했기 때문에 아내도 마지못해 그 고기를 조금 먹고 일부는 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지금의 둘째인데 집에서 태어난 아이를 보니 이마에 피가 묻었고 눈의 흰자위가 많아 은근히 걱정스러웠다는 것이다.

크면서 보니 아이는 영특했지만 가만히 진정을 못하고 덜렁대는 성격과 온몸에 털이 많은 것이 마음에 걸리더라는 것이다. 고교성적도 전교 15등 정도로 우수하면서도 그 또래의 친구들은 합격하는 세칭 일류대에 계속 실패하더란 것이다. 그 때문에 거사는 자신이 죄를 지어 자식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며 심하게 자책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서옹 노스님은 이렇게 거사를 위로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죄라는 것은 없다고 하지요. 죄라는 생각이 본래 공한 것이지요. 사람이 스스로 어떤 일을 죄라고 하고 거기에 끄달리게 되면 정말 사람이 죄에 떨어지는 것이지요. 참회하고 공덕을 쌓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계속 죄를 지었다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것은 불행일 뿐이지요.”

옛날에 한 선사가 마음의 번뇌를 호소하는 제자에게 그 마음을 꺼내보라고 하였다더니 과연 서옹 큰스님은 ‘죄는 본래 공하다’라면서 스스로 죄라는 생각에 빠지지 말고 자유자재로 생활하기를 가르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설명에 그 거사가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거사는 아직도 못 믿어워하는 모습이다. 거사는 자신이 참회와 불공을 많이 올렸는데 그게 별로 소득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다. 스님은 그때 “참회를 많이 하고 불공과 보시를 많이 하면 과거의 악업이 녹아 없어진다는 것이 불경의 가르침인데 부디 거사님은 널리 무주상 보시로써 덕을 베풀고 선업을 닦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거사는 자신은 그럴 생각이지만 당자인 아이도 참회하고 불공을 드려야하느냐고 되묻는다. 큰스님은 “모든 과보는 본인이 짓는 것”이라면서 아들도 부모와 함께 좋은 업을 쌓아야한다고 덧붙이신다. 90이나 되신 큰스님이 불법의 근본을 잃지 않고 중생을 제접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깊은 감동에 젖었다.



공종원(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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