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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종정 만암 스님의 대노

1954년 12월4일 비구측
종헌개정에 강하게 반발
“보조 종조 내세우는 건
환부역조”…종정직 사퇴

 

▲만암 스님

비구·대처승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던 1954년 12월4일. 백양사에 주석하던 조계종 초대종정 만암 스님은 대노했다. 비구측이 승려대회를 열어 종조를 바꾸는 종헌개정을 결의하고, 경무대를 방문해 불교정화를 촉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암 스님은 즉각 “비구 승려대회는 불법”이라고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지만 이미 강경론을 내세운 비구측의 발길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만암 스님은 깊은 탄식을 쏟아냈다. 이미 먹구름이 짙게 깔리고 있는 한국불교의 현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한탄했다.


만암 스님은 정화의 필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강조해 온 고승이었다.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계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스님이 결혼을 하고 고기를 먹는 일은 한국불교 승단에서 추방해야 할 우선 과제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스님은 급진적인 정화보다는 점진적인 개혁을 택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것이 가장 불교적인 개혁이라고 믿었다.


이런 까닭에 만암 스님이 강조했던 점진적 개혁을 통해 정화불사가 진행됐더라면 폭력과 법정공방으로 얼룩졌던 한국불교의 정화사는 새롭게 기록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오늘날 만암 스님이 새롭게 조명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만암 스님은 1875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님과 사별하고 10세 되던 해 백양사에서 취운 도진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스님은 16세 되던 해 당시 대강백으로 추앙 받던 환응, 한영, 경운 스님으로부터 사사를 받고 환응 스님의 강맥을 이어 강사로 활동했다. 그런가하면 스님은 일제강점기 한국불교의 정통성 회복을 위한 일에도 앞장섰다.


스님은 이후 일곱 번에 걸쳐 백양사 주지를 맡으면서 화재로 피폐해진 사찰을 중창했을 뿐 아니라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 정신을 이어 선농일치를 실천했다. 또 백양사 말사인 청류암에 내외전을 가르치는 ‘광성의숙’을 설립했을 뿐 아니라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의 초대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광주에 정광중고등학교를 설립해 8년간 교장직을 맡는 등 후학 양성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1951년 한암 스님의 입적으로 조선불교 중앙총무원 교정에 추대된 만암 스님은 이때부터 한국불교의 개혁을 위해 조용한(?) 정화불사를 추진했다.


해방 이후 한국불교계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왜색불교의 척결이었다. 그러나 해방 당시 전체 7000여명의 스님 가운데 비구승이 300~600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 당장 대처승을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스님이 선택한 교단정화는 승가를 교화승(대처)과 수행승(비구)으로 나눠 비구들은 승단과 사찰관리를 담당하고, 대처승들은 교육과 포교에 종사하게 하는 것이었다. 대신 교화승들에게는 더 이상 상좌를 두지 못하도록 해 자연스럽게 대처승들의 수를 줄여가는 것이었다. 이는 스님이 1947년 백양사에 고불총림을 결성하면서 이미 적용했던 정화 방안이었다. 이로 인해 백양사는 비구·대처승들 간의 갈등 속에서도 큰 분쟁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만암 스님이 추진했던 이 정화방안은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느닷없이 유시를 발표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던 일부 비구승들은 대통령의 유시를 계기로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절에서 대처승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전국의 사찰은 폭력으로 얼룩졌다. 이런 상황에서 비구승들은 승려대회를 열어 태고종조설을 부정하고 보조 지눌 스님을 새 종조로 내세웠다. 대처승들과의 차별화를 내세운 비구측의 전략이었다. 그러자 만암 스님은 “보조국사 종조설을 지지하는 것은 환부역조”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정화의 원칙은 찬동하나 그 방법은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종정직을 버리고 백양사로 돌아갔다.


폭력을 동원한 급진적 개혁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불교적인 방법으로 종단을 변화시키려 했던 만암 스님. 스님들의 비위 사건들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교육과 제도를 통해 점차적으로 청정 승단을 구현하려했던 스님의 안목이 그립기만 하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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