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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구향용담(久響龍潭)

기자명 법보신문

불립문자는 잃어버린 자신의 목소리 되찾으라는 의미

선사들이 부정했던 문자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문자


등불은 밝음과 어둠을 구분
꺼지는 순간 구분 사라져


경전도 등불처럼 한계 명확
자신마음 의지해 홀로 가야

 

덕산(德山)이 가르침을 청하러 왔을 때 마침 밤이 되자 용담(龍潭) 스님은 말했다. “밤이 깊었으니 그대는 그만 물러가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래서 덕산은 인사를 하고 발을 걷고 밖으로 나갔다. 바깥이 너무 어두워서 되돌아와서 말했다. “바깥이 깜깜합니다.” 그러나 용담 스님은 종이 등불에 불을 붙여 건네주었다. 덕산이 그것을 받으려고 할 때, 용담 스님은 등불을 불어 꺼버렸다. 바로 여기서 덕산은 갑자기 깨닫고 용담 스님에게 절을 했다. 그러자 용담 스님은 물었다. “그대는 어떤 불법의 도리를 보았는가?” 덕산은 “저는 오늘 이후로 천하의 노화상께서 하신 말씀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다음 날 용담 스님은 법당에 올라 말했다. “만일 이가 검이 세워진 수풀과도 같고 입이 피가 담긴 쟁반과도 같아서 방망이로 때려도 뒤도 돌아보지 않을 남자가 있다면, 언젠가 홀로 우뚝 솟은 봉오리 정상에 나의 도를 세울 것이다.” 마침내 덕산은 (‘금강경’의) 주석서를 법당 앞에 들고 나와 횃불을 들고 나와 말했다. “불교의 모든 심오한 변론들을 남김없이 밝힌다고 해도 허공에 터럭 하나를 날리는 것과 같고, 세상의 모든 진리를 모조리 갈파한다고 해도 물 한 방울을 거대한 계곡에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이어 주석서를 바로 불태우고 용담 스님을 떠났다. 

 무문관(無門關) 28칙 / 구향용담(久響龍潭)

 

 

▲ 그림=김승연 화백 

 


1. 덕산 스님, 남쪽으로 향하다

 

‘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를 통한 지적인 이해를 표방하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이 슬로건만큼 선종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긴 자신의 삶을 당당한 주인공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말이나 글에 얽매인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일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말이나 글, 즉 문자란 기본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속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불립문자’라는 선언으로 선사들은 영원한 침묵을 선택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선사들이 부정하려고 했던 문자는 자신의 문자가 아니라 타인의 문자일 뿐입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타인의 말이나 글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노예의 삶이지 주인의 삶일 수는 없으니까요.


‘무문관(無門關)’의 28번째 관문이 중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 관문에 등장하는 덕산(德山, 782-865) 스님은 ‘불립문자’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덕산은 용담(龍潭) 스님을 만나 타인의 문자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만 진짜 중요한 대목은 용담 스님을 만나기 전에 이루어졌던 덕산 스님과 어느 노파의 만남 아니었을까요. ‘전등록(傳燈錄)’에 실려 있는 덕산 스님과 관련된 전체 에피소드에는 노파와의 만남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문관’을 편찬했던 무문 스님도 그 만남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어서인지 그 이야기를 자신의 주석에 요약해 놓고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용담 스님을 만나러 남쪽으로 내려오기 전, 덕산 스님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것은 남중국에서 일어나 융성하고 있던 새로운 불교의 흐름, 그러니까 선종 때문이었습니다. 남중국의 선사들이 여러 부처님들의 말과 글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교외별전(敎外別傳)’을 주장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경전의 내용 이외에 별도의 가르침이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덕산은 화가 난 것입니다. 경전을 무시하고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부수고 싶었던 겁니다. 남중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덕산 스님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자신의 품에는, 모든 것을 자를 수 있는 다이아몬드처럼 날카롭고 견고한 무기, 그러니까 모든 희론(戱論)을 논박할 수 있는 ‘금강경(金剛經)’이란 경전이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2. 꺼진 등불 속에서 깨달음을 얻다

 

불행히도 중국 예주(澧州)로 내려가던 중 어느 노파를 만나면서 덕산 스님의 자신감은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길가에서 어느 노파가 간식을 팔고 있었습니다. 허기가 느껴진 덕산은 노파에게 먹을 것을 요청합니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노파는 덕산에게 지나가는 듯이 물었습니다. “스님! 수레 속에는 어떤 책이 있나요?” “‘금강경’의 주석서입니다.” 그러자 노파가 다시 물었습니다. “‘금강경’에는 ‘과거의 마음도 잡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잡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잡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어느 마음으로 점심을 드시려고 하십니까?” 덕산 스님은 노파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당혹감과 낭패감 때문이지, 덕산 스님은 서둘러 말꼬리를 돌리게 됩니다. “이 근처에 어떤 선사가 계십니까?” 노파는 오리쯤 떨어진 곳에 용담 스님이 있다고 대답해주게 됩니다.


이렇게 무엇인가에 쫓기 듯 경황없이 덕산 스님은 용담 스님을 찾아 가게 된 겁니다. ‘금강경’을 달달 외웠을 정도로 덕산 스님은 경전 내용에 정통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이해는 단지 지적인 것에 그쳤을 뿐 자신의 삶에 조금도 적용할 수 없었던 겁니다. 어디가 잘못된 것이었을까요. 노파의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 했을까요. 노파는 덕산 스님에게 심각한 화두를 하나 던진 것입니다. 용담 스님과 만나서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아마 덕산 스님의 뇌리에는 노파와의 만남이 지워지지 않았을 겁니다. 어느덧 해가 지게 됩니다. 숙소로 돌아가려고 용담 스님의 방을 나왔을 때, 바깥이 너무나 캄캄해서 덕산 스님은 등불을 부탁하게 됩니다. 그러자 용담 스님은 등불을 켜서 덕산 스님에게 건네줍니다. 캄캄한 주변이 순식간에 환하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용담 스님은 덕산 스님에게 건네주었던 등불을 불어 꺼버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꺼진 등불을 허무하게 든 채 다시 암흑 속에 던져진 덕산 스님은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등불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상징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등불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요. 그 등불이 바로 용담 스님이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앞서 깨달았던 사람들의 가르침, 그러니까 ‘금강경’과 같은 경전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용담 스님이 등불을 훅 불어 끄자마자 덕산은 깨닫게 됩니다. 무엇을 깨달았던 것일까요. 덕산의 깨달음을 이해하려면, 등불이 켜지고 꺼지는 사태에 조금 더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등불이 켜지면 등불로 환한 부분과 등불이 미치지 않아 어두운 부분이 구별되어 나타나지만, 반면 등불이 꺼지는 순간 그런 구분은 씻은 듯이 사라질 것입니다.


3. 금강경 태우고 스스로 길을 가다

 

마침내 용담 스님을 통해 덕산은 자신이 왜 노파에게 쩔쩔맸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금강경’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덕산은 노파의 질문에 대응할 수 없었던 겁니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을 ‘금강경’에 입각해서 바라보고 생각했기 때문에 덕산은 ‘금강경’이란 등불이 비추지 못하는 것을 볼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이지요. 노파의 질문은 ‘금강경’의 맹점을 지적했던 겁니다. 사실 등불이란 것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요. 밝기의 정도나 비추는 방향에 따라 등불들에는 비출 수 있는 부분과 그럴 수 없는 부분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등불이 비추는 특정한 부분에 연연해서 등불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하곤 합니다. 이제야 분명해지지 않았나요. 용담 스님은 노파의 질문에 덕산이 쩔쩔맸던 이유를 가르쳐주었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경전들은 각각 자기만의 고유한 한계를 갖고 있는 등불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경전들에는 자신이 비출 수 있는 측면과 그럴 수 없는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1897~1962)는 ‘내적 체험(L'expérience intérieure)’에서 ‘비지(非知, nonsavoir)’에 대한 체험을 강조했던 적이 있습니다.


기존의 지식이 설명하지 못하는 맹점과도 같은 영역, 그러니까 등불이 비출 수 없는 영역이 바로 ‘비지’의 영역입니다. 이제 ‘무문관’의 28번째 관문이 명료해지지 않았나요. 점심을 팔던 노파가 덕산 스님을 비지의 영역으로 이끌었다면, 등불을 끄면서 용담 스님은 경전에 대한 맹신이 비지의 영역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던 겁니다. 사실 ‘금강경’에 대한 맹신이 없었다면 덕산 스님이 ‘금강경’으로 해명되지 않는 비지의 영역과 마주칠 수도 없었을 겁니다.


이런 비지의 영역과 마주쳐서 이곳을 통과하려면, 더 이상 덕산 스님은 ‘금강경’이란 경전에 의지할 수도 의지해서도 안 됩니다. 비지의 영역은 ‘금강경’의 외부에 있는 것이니까요. 이제 오직 자신만의 마음에 의지한 채 사자처럼 홀로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덕산 스님이 보물처럼 가슴에 품고 있었던 ‘금강경’의 주석서를 태우고, 심지어 자신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용담 스님마저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 떠났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강신주

비지의 영역을 통과했을 때, 덕산 스님은 문자나 언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덕산은 말도 하고 글도 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것은 앵무새처럼 흉내 내는 타인의 말이나 글이 아니라, 자신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나 글일 것입니다. ‘불립문자’라는 슬로건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의 말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말을 하는 것, 그러니까 잃어버린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는 것 말입니다. 

 

강신주 conting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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