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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바람

기자명 법보신문

안·이·비·설·신·의
여섯 감각에 휘둘려
쾌락에만 젖어 살면
삶의 목적 잃고 방황


비유 가운데, ‘높은 나무에는 바람이 세다’란 표현이 있다. 이는 자신의 위치가 높아지면 질수록, 위태로운 일이 많아진다는 의미이다. 그냥 ‘바람이 세다’라고 할 때는, 내가 처한 외부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럴 경우, 맞서는 것 보다는 한발 물러나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자신을 낮추어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담마빠다’에 ‘바람이 연약한 나무를 쓰러뜨리듯’, ‘바람이 바위산을 무너뜨리지 못하듯’이란 표현이 나온다. 바람이 세찬데, 내가 그것을 견딜 만큼 굳세지 못하면, 바람에 쓰러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능히 감내하며 견딜 수 있다면 다소의 저항은 있을지언정, 바람이 나를 쓰러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전에서 말하는 바람은 외부적 환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자신의 감각기관(indriya)을 잘 지키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대한 내용이다.


경전에 여섯 도둑(六賊)이란 표현이 있다. 이 역시 비유적 표현인데, 우리에게 여섯 가지 도둑이 있다는 말이다. 눈, 귀, 코, 혀, 몸, 생각의 여섯 감각기관(六根)을 도둑에 비유한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이 여섯 감각기관을 사용하며 산다. 여섯 감각기관은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 정보를 받아들여, 다양한 판단을 한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그만큼 우리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우리는 옛날보다 행복하지 못하다. 이리저리 재고 따져야 할 일 많고, 남과 비교해서 상대적 박탈감이나 불행감을 보다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부 정보를 크게 세 가지로 판단한다. ‘좋다’, ‘나쁘다’, ‘그저 그렇다’ 좋은 것은 갈구하고, 나쁜 것은 멀리하며 그저 그런 것은 경우에 따라서 취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결국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수많은 정보들은 이 세 가지로 범주화되어, 우리에게 인식된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Paul Valery)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을 했다. 쾌락에 젖어 살게 되면, 우리는 쾌락을 가져다주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게 된다. 그것은 곧 노예적 삶과 동일하다. 감각기관을 만족시킬 것만 생각하며 살게 되니, 어찌 감각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인가. 감각의 대상들에 마음을 홀딱 빼앗겨 버려, 내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망각하기 때문에 도둑이란 말을 쓴 것이다.


이런 이유로 경전에서는 눈, 귀, 코, 혀, 촉감이 느끼는 쾌락을 바람에 비유한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감각기관을 굳건히 지키지 못하면 조그만 바람에도 바로 쓰려져 버리고 만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감각기관을 잘 단속 하지 않고, 음식에 적당량을 모르고, 게을러서 노력하지 않으면 바람이 연약한 나무를 쓰러뜨리듯이, 악마가 그를 쓰러뜨린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반대로 감각기관을 잘 단속하고, 적당하게 음식을 먹으며, 열심히 노력하면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움쩍하지 않는 바위산처럼, 악마가 그를 쓰러뜨리지 못하게 된다.

 

▲이필원 박사

요즘은 인간의 욕망을 얼마만큼 잘 디자인하는지가 키워드인 사회다. 욕망을 읽고 그것을 현실화 하는 것, 그것이 요즘 모든 기업과 사회가 목표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욕망을 충족하는 삶이 역설적으로 노예의 삶으로 바로 가는 지름길이란 것을 알게 될 때, 부처님의 이 말씀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바람이 불 때면 옷깃을 여미며, 자신을 단속하고 조심해야 한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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