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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비

기자명 법보신문

물이 새기 시작하면
안 새던 곳도 새게 돼
모르는 사이 물드니
늘 점검하고 수행해야


옛 속담에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샌다’라는 말이 있다. ‘본바탕이 좋지 아니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그 본색을 드러내고야 만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의미의 경문이 ‘담마빠다’에 나온다. “(지붕의) 이엉이 허술하게 이어진 집에 비가 새듯이”, “(지붕의) 이엉이 잘 이어진 집에 비가 새지 않듯이”라는 비유이다.


이 비유는 평소 마음이 잘 닦여지지 않은(abhāvita) 마음에는 탐욕(rāga, 貪欲)이 새어들고, 그렇지 않고 마음이 평소에 잘 닦여져 있으면 탐욕이 새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처님 가르침의 요지는 ‘평소에 늘 준비하라’는 것이다. 늙음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상황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덧 늙은 뒤에 젊은 날을 후회한들 소용없으며, 죽음에 이르러 삶을 후회한들 또한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늘 스스로를 잘 다루어 수행하라’는 말씀을 하신다. 오죽하면 부처님의 유언이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였겠는가.


우리는 ‘뭐, 일이 닥치면 어찌 되겠지?’라는 생각을 갖는다. 할 일이 많아서일 때도 있지만, 대개는 다른 일로 시간을 낭비하느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닥쳐서’ 한 일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뭐가 문제가 생겨도 생긴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그것은 습관이 되어 좀체 고치려 해도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한 번 지붕의 이엉이 잘못되면, 비가 새는 부분만 수리한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안 새던 곳도 새게 되고, 여기 저기 물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결국은 이엉을 다 내려, 근원적으로 새로 이엉을 잘 올려야만 한다.


경문에 나오는 ‘라가(rāga)’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물들다(rajati)’란 단어와 관련이 깊다. ‘격정’, ‘욕정’의 의미이며, 영어로는 passion으로 번역된다. 탐욕은 한역경전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단순한 물질에 대한 탐욕만이 아니라,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과 이성에 대한 욕망 등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이 말이 ‘물들다’란 의미에서 파생된 것은 아마도 성적, 물질적 욕망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물들어 버린다는 관점에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가를 지붕에 새어드는 비에 비유한 것은 매우 탁월하다.


서서히 물이 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성격이 변하게 되고, 문득 어느 날 변해버린 자신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기는 매우 어렵게 된다. 모든 행동과 사고방식이 이미 그렇게 프로그램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을 ‘경향성’이라고 한다. 그것이 개인의 성향이나 성격이 된다. 곧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직면하게 되면,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이나 사고하는 경향성을 띄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게 되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개인의 성격이 일정 방향으로 프로그램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불변의 것은 아니다. 그런 입장에서 불교는 결정론이나 운명론을 거부한다. 불교는 개인의 고착화된 프로그램을 해체하여 재설정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 방법이 수행이다. 수행으로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자신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다.

 

▲이필원 박사

결과적으로 수행을 통해 나의 마음을 갈고 닦는다면, 욕망이 모르는 사이에 나를 물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존에 스스로도 싫어하던 나의 성향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재정립되게 되면, 그만큼 우리는 자유로움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된다. 이러한 것이 쌓여 해탈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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