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 깨달음의 경지

기자명 법보신문

들러붙은 더러움 떼어내는 수행이 우선

순경계나 역경계 만나도

물들지 않는 상태 넘어

물듦의 구별마저 놓으면

걸림 없는 지혜를 얻어

   

우리가 독송하기 위해 경전을 열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게송이 개경게다. 그 4구 가운데 마지막 구가 ‘원해여래진실의’다. 여래의 진실한 뜻을 알기 원한다는 발원이다.

 

그런데 이 발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수행에 많은 노력과 성취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불법공부는 ‘오해여래진실의’에서 시작된다. 여래의 진실한 뜻을 오해하는 자리에서 시작한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집착, 분별, 망상이 있는 한 원하지 않아도 오해할 수밖에 없다. 비록 오해의 자리에서 시작하지만 진실한 원력과 진실한 노력, 진실한 성취로 여래의 진실한 뜻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다. 지혜의 순도가 점점 높아져 집착, 분별, 무명망상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번뇌 망상이 녹아서 지혜가 늘어나는 단계적 모습을 정행품 아홉 번째 질문이 잘 보여준다. 경문을 보자.

“어떻게 하면 물들지 않는 몸과 말과 생각의 행위를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가장 수승한 지혜, 제일 지혜, 최상 지혜, 무량 지혜, 셀 수 없는 지혜, 사량할 수 없는 지혜, 비교할 수 없는 지혜, 판단하여 알 수 없는 지혜,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가?”

 

위의 경문을 청량국사가 해석하기를 “다양한 경계를 겪으면서 그 경계에 물들지 않기 때문에 법을 전하는 그릇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다양한 경계란 우리가 만나는 순 경계나 역 경계를 모두 포함한다. 이것은 매우 높은 경지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몸이나 마음이 더러운 것에 물들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씻어낼 수 있다면 매우 훌륭한 사람이다. 요즘 세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고상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물들지 않는다’는 것은 더러운 것을 떠나 물들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그보다는 훨씬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능력이 있다고 가르친다. 육조 혜능대사와 신수대사의 게송을 비교하면 경에서 말하는 ‘물들지 않는다’의 의미를 좀 더 쉽게 비교해 알 수 있다. 신수대사는 “수시로 부지런히 털어내어 더러운 것이 들어붙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경계를 만나면 경계에 물들기는 하지만 부지런히 그 물든 것을 털어내어 그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혜능대사는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어느 곳에 더러운 것이 앉겠는가”라고 하였다. 마음도 경계도 모두 사라진 확연한 경계에서는 ‘물든다’, ‘물들지 않는다’라는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주관과 객관의 경계가 존재하는 단계의 지혜와 그것이 사라진 단계의 지혜의 차이를 보여준다. 전법이 혜능대사에게 이어진 것이 당연한 것임을 정행품 아홉 번째 아래 경문은 잘 보여준다.

 

부처님 깨달음의 경지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한다. 그 의미는 무상정등정각이다. 깨달음의 경지를 구별하면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집착을 끊으면 정각을 얻어 아라한이 된다. 분별과 근본 무명을 끊으면 정등정각을 얻어 법신보살이 된다. 법신보살은 원교의 초주(初住)부터 등각보살까지를 이른다. 무명의 습기마저 모두 끊으면 무상정등정각을 얻어 원만한 각을 이룬 부처님이 된다. 위 경문의 열 가지 지혜 가운데 앞의 넷은 집착을 끊고 삼계를 벗어나서 얻는 지혜이다. 다음의 셋은 근본 무명을 끊고 정등정각을 이룬 법신보살의 지혜이다. 그리고 마지막 셋은 부처님의 지혜를 표현한 것이다.

 

‘수승한 지혜, 제일 지혜’ 가운데 수승한 지혜란 삼계 28천과 비교할 때 하는 말이다. 삼계내의 중심 에너지는 집착인데 집착이 강하면 지옥에 가깝고 옅으면 비상비비상처천에 가까워진다. 집착의 뿌리가 빠지면 삼계를 벗어나게 된다. 이 지혜를 ‘수승한 지혜’라 하며 아라한이 얻는다. 집착의 뿌리는 빠졌어도 습기는 남아있다. 그 습기를 제거하면 이승 가운데 ‘제일 지혜’를 얻고 벽지불이 된다. ‘최상 지혜, 가장 수승한 지혜’란 이승을 뛰어넘어 분별의 뿌리를 끊고 ‘최상의 지혜’를 얻어 권교보살이 된다. 분별의 습기마저 내려놓으면 10법계내에서 ‘가장 수승한 지혜’를 얻어 부처님이 된다. 10법계내의 부처님은 아직 8식 51심소를 사용하는 단계로 겉모습이 부처님과 비슷하기 때문에 부처님이라고 부른다. 아직 근본무명이 남아있는 상태인 4성법계의 부처님이다.

 

‘무량 지혜, 셀 수 없는 지혜, 사량할 수 없는 지혜’는 근본 무명의 뿌리는 끊었으나 무명의 습기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 습기를 지속적으로 제거하면서 확장되어가는 지혜다. 양으로도 잴 수 없고 수로 세어도 알 수 없으며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의 작용처가 사라진 상태에서의 수행이 이루어진다. 정등정각의 경지다. 등각보살의 경지에서도 무명의 일분 습기는 남아있다. ‘비교할 수 없는 지혜, 판단하여 알 수 없는 지혜,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지혜’는 무상정등정각의 다른 말이다. 무명번뇌의 습기마저 모두 사라지고 걸림 없는 지혜가 온 법계에 두루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완전하고 원만한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한 것이다.

 

▲도암 스님

‘물들지 않는다’는 말은 집착을 끊는데서 시작하여 무명을 끊는 것을 중간과정으로 하고 무명의 습기를 끊는 것을 완성으로 하는 말이다. 우리 수행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지혜로운 질문이다.

 

도암 스님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