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4. 국자

기자명 법보신문

국자는 국의 맛 몰라
주변 영향 받는 인생
스스로 현명한 벗 찾아
곁에 둬야 바른 길 걸어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며 산다. 그 중에서 어떤 경험은 내가 직접 몸으로 체험한 경험도 있고, 누군가에게 듣거나 유추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도 있다. 우리의 앎은 이러한 직간접적 경험 내용을 토대로 한다. 그런데 과연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사실 직접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한정된다. 그래서 평생 동안 경험할 수 있는 내용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앎을 전해주는 대부분은 간접경험을 통해서 획득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를 둘러싼 주변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선우(善友)’에 대한 말씀을 매우 강조하셨다. 선우란 좋은 친구란 의미로, 여기에는 훌륭한 선생과 선후배가 포함된다. ‘담마빠다’에 “자신보다 더 낫거나 적어도 같은 자가 아니면 단호하게(dal. ham. ) 홀로 가라”는 말씀이 있다.


나보다 ‘낫다’라는 것은 재산이나 능력, 학력이 좋다는 말이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고 해도 감각적 쾌락이나 물질에 집착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행위가 바르고 말이 진실되며 감각적 쾌락의 헛됨을 명확히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는 바로 이러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벗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홀로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 경험한다. 그럴 때 지혜로운 사람과의 교류는 나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고급스럽게 만드는 바탕이 된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자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주변에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고 한들 그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나아가 어리석어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주변에는 어리석은 사람들만 있게 된다. 이러한 내용을 비유로 나타낸 것이 “어리석은 자는 설령 평생 동안 현명한 사람을 모시더라도, 그는 진리를 알지 못한다. 마치 국자가 국 맛을 모르듯”이란 경구다.


국자는 아무리 국속에 담겨 있더라도 그 맛이 짠지 싱거운지 알지 못하며, 음식이 상했어도 상한 줄 알지 못한다. 내가 직접 맛을 보아야만 그 맛을 알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국자를 국속에 담그는 것으로 맛을 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러한 사람을 보면, 누구나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의 삶 속에서 현명한 사람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러한 노력이 왜 필요한지 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국자가 국 맛을 본다고 믿는 것 보다 더 심각한 일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내 삶의 밑그림은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의해 그려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내 생각의 대부분은 주변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나의 생각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이필원 박사

그래서 사람을 가려 사귀어야 하는 것이다. 감각적 쾌락을 쫓는 사람들만 주변에 있으면, 나 또한 그렇게 된다. 그러면 현명한 사람이 아무리 나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주어도 그것을 바른 길이라고 알지 못한다. 마치 국자가 국 맛을 모르듯이 말이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바른 길을 찾고자 노력한다면, 현명한 사람의 말을 잠깐만 들어도 내 인생의 행로는 달라진다. 마치 내가 직접 국 맛을 보듯이, 그 즉시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