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경전, 한국문화재의 중심
6. 경전, 한국문화재의 중심
  • 법보신문
  • 승인 2013.05.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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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적 측면서 문화 다방면 영향 미쳐

부처님 말씀 기록한 지침서
교리 집대성이자 신앙 기반
불교, 불경 통해 한반도 전래


국가 문화재 중 경전 262점
다양한  분야에 폭넓은 영향
법사리로 탑에 봉안되기도

 

 

▲금강경탑다라니 목판 인경. 통도사박물관 소장.

 

 

문화란 삶의 궤적이자 그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통된 행동이다. 과거로부터 변하지 않고 올곧게 내려온 것을 전통이라고 했을 때, 전통문화는 한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척도인 동시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생명체와 같은 속성을 지닌다.


고등종교와 그렇지 않은 것을 가르는 기준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해당 종교의 교리를 집대성한 경전의 유무 역시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불교경전은 부처의 말씀 기록이면서, 크게는 깨달음의 진리를 담고 있는 불교도의 수행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경전은 부처님 사후 이루어진 결집(結集)을 통해 이루어졌다. 부처는 자신의 가르침을 글로 남기지 않았기에, 제자 마하가섭이 부처의 가르침을 옳게 파악해 놓지 않으면 정법정률이 없어지게 될 것을 염려했다고 한다. 결집을 달리 합송(合誦)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 아난이 경을 독송하고 계율에 엄격했던 우바리가 율을 송출(誦出) 한데서 연유한다.


불교의 한반도 전래는 기록상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전진의 왕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보내 불상과 불경을 전한 것을 시작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는 584년 승려 혜편(惠便)을 일본에 파견했는데, 이 때 고구려에서 제작한 경전이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6세기 후반에는 적어도 이 땅에서 경전이 제작되었을 것이다.


현재 국가로부터 지정·보호 받고 있는 문화재 중 국보와 보물은 모두 2260건이며, 이 중 불교와 관련된 유물 1235건은 전체 지정문화재의 54%에 이르는 방대한 양을 차지하고 있다. 1700여년에 가까운 기간 불교가 신앙과 사상의 중심을 차지했음을 고려한다면 자못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이 가운데 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은 국보 33점과 보물 229점 등 총 262점으로 전체 지정문화재의 11.6%를 차지하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경전은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국보 제196호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으로 황룡사 연기법사(緣起法師)가 그의 아버지와 중생의 성불을 위해 경덕왕 13년(754) 8월1일에 시작해 이듬해 2월14일에 완성했다. 권말에 14행의 이두로 덧붙여진 사성기(寫成記)에는 사경제작방법과 그에 따른 의식절차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사경제작에 참여한 19명의 거주지·인명·관등이 남아 있어 신라사회의 관등과 신분관계, 이두 연구 등에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이렇듯 사경은 단순히 경전의 내용을 옮겨 적는 행위를 넘어, 부처의 말씀을 되새기는 엄숙한 수행이라고 하겠다.


구례 화엄사에는 60화엄경과 40화엄경을 돌에 새긴 보물 제1040호 화엄석경이 남아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화엄경’으로 의상대사가 화엄십찰을 불교전교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왕명으로 화엄사 장육전(현 각황전)을 건립하고 석판에 ‘화엄경’을 새겨 벽면에 둘렀다고 전해지는 유물이다. 석경은 이 외에도 경주 창림사지 부근에서 출토된 법화석경과 경주 칠불암 출토의 9세기 제작 금강석경 등이 남아 있다.


불경의 간행은 공덕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불경은 물론 불교의 교리를 집대성한 것이기 때문에 신앙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때로는 일정한 목적을 이루려는 공덕신앙으로 간행되기도 했다. 고려 현종 때 시작된 ‘고려대장경’ 간행은 거란의 침입을 불력을 이용해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판한 것이다. 경판은 몽고침입으로 소실됐으나 판본 일부가 남아 있어, 대략적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해인사에 전하는 국보 제32호 ‘팔만대장경’은 고종 23년(1236) 몽골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되어 동왕 38년(1251) 완성됐다. 역시 부처의 보살핌으로 외침을 극복하려던 고려인들의 간절한 염원을 살필 수 있는데,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므로 2차례에 걸쳐 이룩된 대장경 조판은 모두 적군의 침략을 물리치려는 공덕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고려에 앞서 통일신라에서도 무수히 많은 경전간행이 이루어졌을 것이지만,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앞선 사례로는 석가탑에서 출토된 국보 제21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들 수 있다. 1966년 9월 석가탑 사리장엄구 도굴과정에서 훼손된 석탑을 보수하게 되면서 2층 탑신 사리공에 봉안된 사리구가 수습되었다. 이때 수습 유물 중에는 닥종이에 인쇄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두루마리 형태로 말려있고, 훼손이 심해 내용을 알지 못했지만 보존처리를 통해 석가탑이 고려시대 중수되었고 이 다라니경이 742년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임이 확인되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탑을 세울 때 염송하거나 탑 안에 봉안하면 수명을 연장하게 되고 내세에 극락왕생과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탑 안에 경전을 봉안하는 행위는 사리신앙의 한 형태로 불탑은 본래 부처의 입멸을 상징하는 공간이며, 재가자들에 의해 부처의 업적을 기리고 찬탄하는 공간이었다. 인도에서 초기 대승불교의 발전 역시 불탑을 중심으로 시작됐으며, 불교의 확산과 함께 신앙의 공간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탑을 세우는 방법과 그로부터 얻게 되는 공덕내용을 담고 있는 조탑경전으로는 ‘조탑공덕경’, ‘무구정경’, ‘보협인다라니경’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조탑공덕경’은 인도 승려 지파사라(地婆詞羅)와 신라 승려 원측 등 5인이 장안의 서명사(西明寺)에서 680년 한역했다. 탑 안에 불사리와 법사리를 함께 봉안함으로써 무량공덕을 얻을 수 있다는 조탑경전의 내용은 위기감을 갖고 있던 신라사회에 급속도로 유포되었다. 그 결과 수많은 불탑이 비교적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건립되는 원인이 되었다. 법사리는 경전을 지칭하며, 진신사리와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됨으로써 진신사리 중심의 사리신앙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경전은 글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불화와 사경의 핵심내용을 간추린 변상도와 같이 그림을 통해 드러내기도 한다. 불화 중 ‘녹원전법상’은 부처의 일생을 8부분으로 나누어 그린 8상도 중 일부로 정각에 이른 석가모니가 화엄대법을 설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 아래에는 보관을 쓴 비로자나불이 ‘화엄경’을 설하고 있다. 이렇듯 불교경전은 신앙, 조형미술, 교리 등 제 분야를 아우르는 폭넓은 분야에 영향을 주었고, 모든 경전의 시작이 ‘여시아문(나는 이렇게 들었다)’으로 시작하듯 부처의 말씀으로 시간을 초월해 이어져 오고 있다.

 

불교관련 지정문화재 현황


 

전체수량

불교관련

전적(典籍)류

경전

국보

326

176

64

33

보물

1,934

1,059

541

229

2,260

1,235

605

262

 

2013년 5월 기준                      

 



탑·경패 등 다양한 형태 변모

 

한국의 이색 경전

 

 

▲서동리석탑 납석제 소탐(왼쪽 위). 송광사 경패(오른쪽 위). 화엄경변상 경상(아래).

 


경전은 기록물이라는 특성상 사경 혹은 인쇄본으로 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조형물 또는 불화로 대체되기도 했다. ‘금강경다라니탑목판’은 7층의 목탑 형태 내부에 ‘금강경’의 모든 경문을 새겨 넣은 목판이다. 매우 절묘한 구성으로 기단부 위 옥개에는 풍경이 있고, 상륜부 역시 찰주 위로 보주까지 화려하게 표현했다. 각층 모두 목조건축의 구조를 사실적으로 드러내었으며, 엄격한 좌우대칭으로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금강경’ 경문을 새겨 놓았다.


경전을 읽기 위한 책상을 경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동화엄경변상 경상’은 경상 바닥에 ‘화엄경’ 변상을 조각한 것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예이다. 해인사 80권본 ‘화엄경’ 변상도의 11권 ‘비로자나품’ 변상을 취사선택해 판각한 그림으로 생략된 부분이 많지만, 경상 자체가 경전의 기능을 지닌 특수한 경우라 하겠다.


탑을 세움으로써 얻게 되는 공덕을 설한 조탑경전의 유행은 새로운 경전봉안방식을 가져왔는데, 탑 내부에 소형의 탑을 추가함으로써 공덕을 높이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이들 소형탑은 나무, 청동, 흙 등으로 제작 후 몸체 내부에 뚫어 놓은 구멍 속에 다라니를 넣었다.


옛 사람들은 경전을 소중히 여겼다. 교리의 집대성이라는 관점 이외에 신앙의 대상이었고 그 자체가 부처의 또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경전을 보관하기 위한 나전칠기와 청자 경합의 제작, 사경의 경우 변상도 이외에 표지까지 금과 은니를 이용해 표지화를 장식했다. 경패는 불경을 넣은 나무함의 겉에 달아서 내용을 나타내는 표지로 나무와 상아로 제작했다. 국내에는 송광사에 전해오는 43점이 유일하며, 이중 상아로 만든 경패는 고려대장경 완성 후 1278년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거란본대장경 1000여 책을 송광사 원감국사(1229~1292)가 송광사로 이운 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홍대한
거란본대장경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경판을 만들면서 목조경패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경패의 몸체에는 경전의 이름과 함께 제석과 범천, 사천왕, 금강역사 등 법을 수호하는 신중과 불보살 및 승상 등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홍대한 숙명여대 강사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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