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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집

기자명 법보신문

사적인 공간서 오욕 줄여야 행복

애정·증오 등 온갖 감정
뒤섞이는 집을 성지 삼아
이기적 욕망은 줄여가며
관심과 배려로 채워가야

 

지난 3월에 서울 잠실 아파트촌을 지나가던 중에 동행인이 말했다. “저렇게 많은 집이 있는데 그 가운데 내 것이 하나도 없다.” 나의 동행인만이 아니라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서울의 주택이나 아파트의 값이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도 비싸다. 사람들이 서울에서 집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살아가는 사연도 사람들 숫자만큼이나 많다. 부유촌의 주택에도 들어가 볼 기회가 있었다. 성북동이었다.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그런 집이었다. 이렇게 크고 작은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은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까. 정행품 경전을 보자.


“궁(宮)과 주택(住宅) 안에 있을 때면 중생들이 성지에 들어가듯이 영원히 더러운 욕망을 제거하기를 발원해야 한다.”


‘궁(宮)과 주택(住宅) 안에 있을 때면’이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간에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있다. 예를 들어 ‘궁전’이라 하면 황제나 왕이 혹은 대통령이 사는 공간이다. 그 가운데 ‘궁(宮)’은 사적인 생활공간이고, ‘전(殿)’은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이다. 왕과 같이 신분이 높은 사람은 사적인 생활공간도 크고 넓고 화려하다. 일반인들은 자신의 형편에 맞는 ‘주택’에 살게 된다. 요즘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주택을 짓는 기술이 발달하여 여러 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


궁이나 주택은 사적인 공간으로 대개 한 가족의 생활공간이 된다. 한 가족은 이 생활공간 안에서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차별되게 친밀한 정을 나눈다. 가족의 모든 재산이 모여 있는 곳이고, 힘들 때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고 생기를 회복하는 곳이다. “아무리 초라해도 집만한 곳이 없다”는 속담도 있다. 그러나 이 속에는 사랑과 은혜가 있고 증오와 원한도 있다. 가족 관계에서 발생되는 일상적인 일들이다.


‘궁’은 옛날에는 황제나 왕의 사생활 공간이다. 그 속에는 여러 부인들이 있었다. 부인이 여럿이면 그 사이에 은혜와 원한 애정과 증오가 쌓이게 된다. 화려하고 편안하고 따뜻할 것만 같은 곳이 살아가기에 고단한 곳일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사극 드라마의 단골 주제로 올라오니 모두 잘 아는 내용이다. 일반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요즘은 TV 프로그램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SBS ‘스타부부쑈 자기야’ 에서는 소시민들이 보기에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유명인들이 나와 자기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부와 명예를 누리는 그들은 서로 사랑과 은혜만 있을 것 같았는데, 사실은 애증이 교차하는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타부부의 삶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무대는 그들의 주택 안에서이고 내용은 그들의 관계 맺는 방식이다.


사생활공간인 주택은 오욕인 식욕, 수면욕, 재물욕, 성욕, 명예욕을 추구하고 충족하는 공간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제일 중요한 인물이 되는 명예를 누린다. 공적인 장소에서 제한하였던 개인적인 습관을 편안하게 펼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람의 욕망이나 습관이 쉽게 조절되지는 않는다. 공적인 장소에서 조절되던 습관도 사적인 장소에서는 조절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편안한 장소에서는 우리들의 긴장이 쉽게 풀리기 때문이다. 조절되지 않는 습관과 욕망은 이기적이기 쉽고 사적인 장소에서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특히 가족 속에서는 본인과 가족이 모두 심각한 고통을 받을 수 있다.


‘중생들이 성지에 들어가듯이’에서 ‘중생’이란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 ‘성지’란 성인이 머무는 장소이거나 성인의 가르침이 실행되는 곳이다. 우리가 아는 성인은 오욕의 오염을 벗어나 밝고 안정되게 생활하는 분들이다. 그런 사람 가까이 가게 될 때는 우리는 몸과 마음을 단속하게 된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도 오욕의 오염을 조절하는 에너지가 작동하게 된다. 우리가 성인과 함께하는 동안은 우리도 비교적 밝고 맑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성인의 가르침이 실행되는 곳에서는 우리의 욕망과 집착이라는 독을 효율적으로 중화시켜 해독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게 된다. 배운 것을 제대로 실천만 하면 그 효과는 배우는 이를 성인의 경지로 안내할 것이다. 우리가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자기를 편안하게 억제하고 조절할 수만 있다면 행복은 늘어나고 고통은 줄어들 것이다. 자기의 집에 들어갈 때 ‘성지에 들어가듯’ 한다는 것은, 집안에 성인을 모시고 살면서 성인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장소라 여기고 삶을 살라는 것이다.

 

▲도암 스님

‘영원히 더러운 욕망을 제거하기를 발원해야 한다’라는 말은 우리를 격려하는 말이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수준이 높지 않더라도 실망하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말라. 다만 우리 삶의 목표와 방향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꾸준하게 노력하며 전진하는 삶이 필요할 뿐이다. 성인의 가르침은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과 습관을 이타적인 관심과 배려로 바꾸어 줄 것이다.

 

도암 스님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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