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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숲과 덤불

기자명 법보신문

숲에서 서늘해진 등골은
해로운 일 두려워하는 탓
스스로 모든 번뇌 제거해
숲조차 없는 상태 되어야


우리가 밤길을 걷다 보면 익숙한 곳이라고 해도 왠지 모를 두려움이 생긴다. 그것은 어둠이라는 장막 뒤에서 무엇이 갑자기 나와 나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훤히 잘 보이는 낮에는 어떤 두려움도 없던 것이 밤이 되면 저절로 두려움이 생겨나는 것은 아마도 어둠 속에 감추어진 그 무엇이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드넓은 들판에 있을 때는 확 트인 시원함이 나를 감싸지만, 울창한 숲에 들어가면 시원함이 아닌 두려움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한다. 더구나 그 길을 혼자 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온갖 사나운 동물이나 못된 도적이 어디에서 뛰쳐나올지 모를 일이다. 조그마한 소리만 나도 두리번거리게 된다. 마음은 위축되고, 오히려 크게 동요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를 이용해 ‘담마빠다’에서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숲을 잘라 버려라”라는 가르침을 주신다. 여기서 숲은 번뇌를 의미한다. 시의 전문을 보면, “숲을 잘라버려라. 나무는 말고. 숲에서 두려움이 생겨난다. 비구들이여, 숲과 덤불을 자르고서, 그대들은 숲이 없는 상태가 되어라”이다. 시에서 ‘나무는 말고’란 것은 실제 숲에 있는 나무를 의미한다. 주석서에 따르면 이는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여 실제 숲의 나무를 벨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숲(vana)은 번뇌를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을 의미한다. 삼독은 가장 근본이 되는 번뇌들이다. 여기에 교만(慢)·의심(疑)·악견(惡見)을 더하여 이 여섯 가지를 근본번뇌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들 근본 번뇌로부터 다양한 번뇌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수번뇌(隨煩惱)라고 한다. 근본번뇌에 의지하여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오염된 마음작용이란 의미이다. 부처님은 이것을 ‘덤불(vanatha)’에 비유하고 있다.

 

즉 숲은 근본 번뇌이며, 덤불은 수번뇌인 셈이다.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근본번뇌와 수번뇌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만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시에서 ‘숲이 없는 상태가 되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때 쓰인 단어가 ‘nibbana(숲이 없는)’이다. 이 단어는 열반과 관련이 깊은 단어이다. 결국 숲과 덤불을 모두 제거해서 숲이 없는 상태가 되어야만 우리는 두려움에서 비로소 완전히 벗어나 열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낱낱이 보일 때 우리는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된다. 무언가 감추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 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은 바로 이렇듯 번뇌가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모든 번뇌가 소멸되어 마음이 명징(明澄)한 상태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수행의 궁극적 목적이 된다. 밝고 맑은 마음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알기에, 거짓이나 위선이 자리할 틈이 없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수행은 누가 대신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내가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 나의 밥을 먹어준다고 내 배가 부르지 않는 것처럼, 내가 스스로 수행하지 않으면 나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게 된다.

 

▲이필원 박사

그런 의미에서 수행은 철저히 나 자신과의 싸움이 된다. 그래서 수행의 길이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묵묵히 수행에 정진하는 수행자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숲과 덤불이 사라진 수행자의 곁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맑고 밝게 되어 수행의 의지가 솟아나기도 한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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