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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구름을 벗어난 달

기자명 법보신문

게으름은 달 가린 구름
방일 않는 정진 수행자
정각 뒤엔 구름 벗어나
마음은 달처럼 빛날 것


2010년도에 개봉한 영화 가운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란 영화가 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내용은 둘째 치고 이 영화 제목을 보는 순간, ‘법구경’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 구절의 키워드는 ‘구름’과 ‘달’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구름과 달이 의미하는 바는 달라질 수 있다. 영화에서의 구름은 아마도 당시의 왕과 통치계급이 아니었을까.


부처님은 구름을 방일, 즉 게으름에 비유하셨다. 이 비유가 나오는 시의 전문은 이렇다. “어떤 이가 과거에는 방일했지만 나중에 방일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는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이 세상을 비춘다.”


상상해 보자. 달마저 구름에 가려 있는 어두운 밤이다. 더구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밤이다. 그런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가야할 방향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를 것이다.


부처님이 구름을 게으름에 비유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게으름은 우리들로 하여금 방향을 잃고 무기력함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다. 하루 종일 ‘멍’한 상태로 시간만 죽이게 된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다. 늘 같은 것이 반복되니 새로움에 대한 자각은 없게 된다. 이런 사람의 미래는 깜깜한 밤과 같을 것이다. 미래의 삶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고, 그 자신도 뭘 해야 좋을지 모를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게으름을 경책하는 말씀을 여기저기에서 누누이 말씀하신다. 예를 들어, ‘숫타니파타’에서는 “그대들이 잠을 자서 무엇을 하겠는가. 일어나 앉아라”는 말씀이 있다. 그리고 ‘대반열반경’에서는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으로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라는 말씀이 전하고 있다.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방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초기불교 이래 이 방일(게으름)은 중요한 번뇌 가운데 하나로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해탈을 추구하는 수행자라고 하면, 반드시 방일은 제거되어야 하는 번뇌가 된다.


게으른 자는 수행을 하지 못한다. 그럼 무엇을 게으름이라고 할까. 게으름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이다. 방일은 “선을 닦지 않는 게으른 마음” 혹은 “수행을 게을리 하는 마음”으로 정의된다. 이를 통해 게으름이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면 학생은 “공부하지 않는 것”이 게으름이며, 연구자에게는 “연구하지 않는 것”이 게으름이 된다. 선생에게는 “가르치는 것에 충실하지 않는 것”이며, 정치인에게는 “바른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 게으름일 것이다.


초기경전에서 깨달음의 상태를 노래할 때 “나는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라는 표현을 쓴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아침때까지 경행을 하시고 승원에 돌아와 잠시 누웠을 때였다. 마라가 부처님을 찾아와 ‘태양이 떠오른 지금 어찌 잠을 자는가?’라고 하자, 부처님은 “탐욕과 갈애의 그물을 끊은 자에게 어디든 이끌릴 곳이 없다네. 모든 삶의 집착을 부수고 깨달은 이가 잠을 자네. 악마여,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인가?”라고 말씀하셨다.

 

▲이필원 박사

해야 할 일을 마친 사람에게 ‘게으름’은 없다. 오직 해야 할 일이 남은 사람에게 게으름이 있을 뿐이다. 할 일을 모두 마친 사람에게 마음의 걸림, 곧 구름은 없다. 그의 마음은 밝게 빛나는 달과 같다. 작은 일이라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일을 완벽하게 끝내면 속이 시원하다. 하물며 수행을 마친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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