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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를 베테랑불자로 알기쉬운 불교교리 - 정정(正定)

기자명 이병욱

완성된 지혜를 향한 험난한 마라톤 코스

드디어 저도 문화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즘에 감기가 유행이라는데, 남에게 뒤질세라 이 세계공통의 거대한 바이러스 흐름에 제 몸을 내던진 채, 최첨단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을 했습니다. 그 결과는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며칠을 꼼짝도 못한 채, 누워있거나 집안에서 빌빌거리며 ‘시간’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시간’ 죽이기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누워있으면서 현실과 전혀 다른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서, 부질없이 모래성을 쌓았다가는 부셔버리고, 다른 영토에 들어가서 다른 모래성을 만들고는 이내 무너뜨리곤 하였습니다.

그 때 떠오른 생각 중에 하나가 지난 여름에 중국 오대산으로 여행을 간 것입니다. 중국의 오대산은 우리의 산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물이 귀하고, 수풀이 우거진 모습도 거의 보기 힘들었습니다. 메마른 대지 위에 먼지만이 살아 꿈틀거리는, 멋대가리 없이 그저 체구만 큰 산맥이 여기 저기 힘없이 서 있을 따름입니다. 산새가 울고, 산짐승이 여기 저기 바삐 뛰어다니고, 물이 흐르고, 신록이 우거진 그런 이미지의 한국의 산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산이 갖지 못한 점을 중국의 오대산은 가지고 있더군요. 그것은 구름의 그림자이었습니다. ‘구름에도 그림자가 있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궤변인가 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히 구름에도 그림자가 있습니다.



잡생각이 지혜를 가려



다만 한국에서는 구름이 그림자를 나타낼만한 공터가 없어서 그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것일 뿐이고, 중국같이 땅덩어리가 무지막지하게 큰 곳에서야 비로소 그 신이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 따름입니다. 오대산같이 수풀이 우거지지 않은 곳에 구름은 자신의 은밀한 모습을, 수줍은 소녀와 같이, 살짝 보여줍니다. 처음에 여기는 그저 짧은 풀만이 듬성듬성 나 있는 곳이어서, 상당히 큰 그림자가 도저히 생길 수 없는 곳인데,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자꾸만 쳐다보기만 하다가, 나중에 그것이 구름의 그림자인 줄 겨우 알았습니다.

이 때 저는 삼매(三昧)에 대해서 문득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삼매는 선정(禪定)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인데, 이는 정신이 통일되어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된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삼매에 들어가면 정신이 한 곳에 몰리고, 그 때 어수룩한 여러 생각이 사라지고 오로지 밝은 한 생각만이 내면에서 빛나는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 비로소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지요. 마치 구름의 그림자를 보듯이 말입니다.



정념의 다음 단계, 바른 삼매



구름의 그림자가 평상시에 잘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도 자잘한 것이 땅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영토에서 구름은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사소한 것들이 사라지고, 드넓은 광야에서 구름은 비로소 헤엄을 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 속에 욕심이나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하면, 지혜의 광명이 자신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복잡한 생각이 진리라는 큰 흐름을 막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생각을 비우는 첫 단계가 앞 시간에 소개한 바른 정신집중인 ‘정념’이고, 이것이 한 차원 더 무르녹아서 ‘바른 삼매’가 되는 겁니다. 이 삼매는 모든 불순물을 녹여내는 용광로와 같은 것이어서, 삼매에 들어갈 때, 번잡하고 시시콜콜한 세간잡사에 얽매여 제대로 보지 못했던 인생의 ‘구름그림자’가 얼굴을 살짝 들어냅니다. 이 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불교에서 그토록 떠들어대는 것이 무얼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희미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불교계에서는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3년 업장이 다 녹는다”라는 속설이 유행할 정도로 선정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을 일구어내는 방법에 대해서 등한시해 왔습니다. 있다면, 출가수행해서 선방에서 죽자살자 좌선에 매달리는 것이 있었겠죠. 저는 삼매가 그렇게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눈을 돌리면, 우리 일상생활 어느 하나 하나가 삼매 아닌 것이 없습니다. 독서하기 위해서 몰두하는 것을 우리는 ‘독서삼매경’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일과 삶 속에서 행해지는 진지한 노력이 바로 삼매의 첫 걸음이고, 이 걸음 걸음이 쌓여서 ‘삼매’라고 부르는 험난한 마라톤코스를 완주할 그 날이 있을 겁니다.



이병욱 (고려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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