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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노르부강

기자명 법보신문

세 명 스님 모여 왕 옹립 시킴왕국 역사 시작된 곳

티베트서 온 세명의 라마승
욕숨서 만나 왕국 세우기로
파드마삼바바의 예언 따라
동쪽서 왕이 될 인물 찾아


왕좌와 나란한 세 개의 법좌
왕 버금간 불교 위상 보여줘


울창한 숲 휘감은 타르초는
이곳이 성소임을 알리는 듯

 

욕숨은 펠링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허름한 식당 두세 개와 상점,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몇 곳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예쁜 시골. 욕숨의 풍경은 별스러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이곳에 남아있는 유적 노르부강은 시킴왕국이 시작된 곳. 첫 왕의 대관식이 치러진 곳이며 욕숨은 시킴왕국의 첫 수도다.
왕국의 역사와 불교의 역사가 함께 시작된 곳, 그래서 작은 시골 욕숨은 시킴에서도 특별한 지역이다.

 

 

▲ 노르부강에는 크고 작은 돌탑과 조각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욕숨에 도착한 탓에 우선 식당을 찾는다. 여행객들 사이에서 꽤나 이름이 알려진 곳이지만 상점을 겸하고 있는 식당 안의 손님용 테이블은 야외용 플라스틱 간이 식탁 다섯 개가 전부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뎀뚝. 북인도나 네팔, 티베트 쪽을 여행해본 이들이 손에 꼽는 추천 음식 가운데 하나다. 얼핏 보아서는 우리의 수제비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은 겉모습에 맛도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특히 이집 뎀뚝은 고기와 함께 각종 야채를 넣어 우려낸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한 그릇 후딱 해치우고 목적지 노르부강으로 향한다.


욕숨이라는 지명에는 ‘세 명의 라마(스님)가 만난 장소’라는 뜻이 들어있다. 그 사연은 이렇다. 15세기 후반 티베트에서 계속되던 종파 간 분열과 경쟁의 결과, 겔룩파가 정교일치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른 종파들은 티베트 주변국으로 대거 이동하는데 이때 티베트불교의 닝마파가 이곳 시킴으로 유입됐다. 이 현상이 결국 시킴왕국의 탄생으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는 당연히 전설과 기행이 따른다.


전설에 따르면 티베트로부터 세 명의 라마승이 이곳 시킴으로 들어오는데 그들은 가닥 셈파 첸포 푼촉 리진, 가독 쿤투 장포, 그리고 앞서 펠링에서 보았던 상가초울링곰파를 세운 랍춘 남카 지그메 스님이다. 이들은 각각 다른 방향에서 따로따로 시킴으로 들어와 이곳 욕숨에서 만났다. 이들의 만남은 오래전부터 파드마삼바바에 의해 예언된 것이라고도 한다. 세 라마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는 시킴왕국의 시작은 그 자체가 신비로운 전설과도 같다.

 

 

▲ 욕숨은 티베트에서 시킴으로 온 세 명의 라마가 처음 만난 장소이며 노르부강은 이 세 라마가 옹립한 시킴왕국의 첫 왕 푼촉 남걀 쵸겔이 대관식을 치른 장소다. 왕의 대관식에 사용됐던 왕좌(사진 위)에는 가운데 있는 왕의 자리와 함께 세 라마의 자리가 나란히 마련돼 있어 당시 시킴왕국에서 불교의 위상이 왕에 버금갔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노르부강은 시킴왕국의 역사가 시작된 중요한 유적지이며 성소로 여겨지고 있다. 왕좌 앞에 우뚝 서있는 초르덴과 노르부강 전체를 휘감듯 걸려있는 수많은 타르초들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만약 이 타르초가 없다면 노르부강은 역사 유적지라기 보다 오래된 공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세 명의 라마는 이곳에 왕국을 세우기로 하고 왕이 될 만한 인물을 찾았다. 그러나 자신들이 시킴으로 들어오면서 거쳤던 북, 남, 서쪽에는 왕이 될 만한 인물이 없었다며 동쪽을 찾아보기로 한다. 결국 이들은 파드마삼바바가 남긴 예언에 따라 동쪽에서 새 왕국의 왕이 될 인물인 푼촉을 찾아내고 랍춘 남카 지그메 스님은 그에게 자신의 성인 남걀을 부여해 시킴왕국의 첫 번째 왕으로 등극시킨다. 시킴의 왕은 쵸겔이라 불렸으므로 그는 푼촉 남걀 쵸겔이라는 이름을 역사에 남기게 됐다. 이때가 1641년이었고 푼촉 남걀 쵸겔이 대관식을 치른 장소가 바로 이곳 욕숨의 노르부강이었다.


노르부강은 욕숨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 시골 농가 몇 채가 모여 있는 작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길게 담장이 둘러쳐져 있고 입구에 ‘노르부강’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유적을 훼손하면 벌금을 부과한다’는 제법 위협적인 경고문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어디에서도 관리인 한 명 보이지 않는다. 문밖에서만 보아서는 유적지라는 느낌 보다는 숲이 우거진 공원 같다.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아서니 햇빛이 비치지 않을 정도로 숲이 울창하다. 나무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타르초가 걸려있는데 어찌나 많은지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숲 전체를 휘감고 있는 듯하다. 길가 곳곳에는 짙푸르게 자라난 이끼들이 두툼하게 바위를 덮고 있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음이다. 그 너머로 커다랗고 하얀 초르덴과 유독 높다랗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숲을 헤치고 타르초를 걷어 올리며 초르덴에 다가간다.
하얀 초르덴은 비교적 잘 관리 돼 있다. 맨 위의 상륜부는 금색으로 칠해져 있고 그 아래로 ‘세상의 눈’이라는 두 개의 눈동자 문양도 선명하다. 그 초르덴 옆, 높디높은 나무 아래에 돌을 쌓아 만든 커다란 왕좌가 있다. 가운데 가장 높게 자리 잡은 왕좌를 중심으로 오른편과 왼편에 각각 두 개와 한 개의 자리가 더 있다. 가운데가 왕의 자리, 그리고 좌우의 세 자리가 바로 세 라마의 자리다. 이 왕좌가 시킴왕국을 연 푼촉 남걀 쵸겔의 대관식이 열렸던 자리다. 왕좌가 말해 주듯 시킴왕국은 왕으로 등극한 쵸겔 뿐 아니라 세 명의 라마가 함께 만든 나라였다. 대관식에서도 왕과 세 명의 라마가 나란히 자리를 함께 했으니 시킴의 불교 위상은 왕에 버금갔을 터이다. 왕좌 앞에는 누가 올렸는지 일곱 개의 물 잔에 맑은 물이 가득하다. 대관식에서 라마가 왕의 머리에 성수를 뿌려줬다고 하는데 그 물은 노르부강 옆에 자리하고 있는 카톡 호수에서 길어왔다고 한다. 이후에도 중요한 종교 의식은 카톡 호수에서 치러졌다. 아마 이러한 전통이 후일까지 이어져 새로 등극하는 왕에게 성수를 뿌리는 전통이 생겨났고 그 성수를 뿌릴 수 있는 권한이 바로 앞서 살펴본 닝마파의 사원 페마양체의 스님에게 부여된 것이 아닐까.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이곳 노르부강에서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이곳에는 세 라마와 얽힌 또 하나의 유적이 있다. 바로 라마의 발자국이다. 세 라마가 이곳에 처음 모였을 때 그중 한 스님의 발자국이 돌에 새겨졌다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대관식 왕좌 바로 앞에 불쑥 튀어나온 바위가 하나 있다. 별로 크지도 않고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데 난간까지 둘러져 있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하다. 바위 위에는 공책 크기만 한 철판에 손잡이까지 달려있는 덮개가 하나 놓여있다. 혹시나 싶어 그 덮개를 들어보니 바위 위에 작은 발자국 같은 흔적이 남아있다. 이것이 바로 라마의 발자국이다. 크기는 대략 240~250mm 가량, 성인 여자 발 크기 정도의 오른쪽 발자국이다. 신기한 것은 발바닥과 발뒤꿈치, 심지어는 발가락 모양까지 갖추고 있어 누가 보아도 발자국이라 믿을 만하다는 점이다. 진짜 이곳에 모인 세 라마 가운데 한 명이 신통력으로 바위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긴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조그만 철재 덮개를 만들어 덮어 놓고 궁금한 사람이 직접 열어서 보도록 해 놓은 센스다. ‘손대지 마시오’ 식의 경고문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누구도 이 발자국을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까. 그 믿음에 화답해야 할 듯싶어 한참을 살펴본 후 다시 처음처럼 철재덮개를 조심스럽게 덮어 둔다.

 

 

▲왕좌 앞 바위에 남아있는 라마의 발자국. 세 명의 라마가 이곳에 처음 모였을 때 남긴 발자국이라는 전설이 있다.

 


대관식 왕좌 뒤편으로 이어지는 길가를 따라 작은 탑과 조각들이 줄지어 서 있다. 파드마삼바바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라마의 모습을 조각한 것 같기도 한 조형물들, 그리고 다듬지 않은 돌을 그냥 쌓아 올려 만든 소박하고 작은 탑들은 우리 내 성황당이나 마을 어귀, 아니면 산길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었던 돌탑과도 비슷하다. 누가 이곳 노르부강에 이렇게 탑을 쌓고 조각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빼곡히 걸려있는 이 타르초 또한 누가 걸어 놓은 것인지 모르겠다.


시킴왕조의 첫 수도였던 욕숨, 그리고 첫 왕의 대관식이 열렸던 역사적 장소 노르부강은 그 위상에 비해 그리 중요한 유적으로 대접받고 있지는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왕국이 사라졌으니 그 왕조의 첫 왕이 등극했던 자리에 대한 대접인들 극진할리야 없다.


하지만 노르부강을 휘감고 있는 선명한 빛의 타르초와 이름 없는 사람들이 쌓아올린 돌탑, 그리고 작은 조각들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왕국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불교왕국 시킴, 그 자부심은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인도 욕숨=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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