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9. 노잣돈

기자명 법보신문

삼보 향한 청정한 믿음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노잣돈이자 보증수표
재물, 죽으면 무용지물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죽은 이에게 주는 돈이 있다. 그것을 지전(紙錢)이라고 하고, 저승길에 사용할 노잣돈이라고도 한다. 신라시대 제망매가(祭亡妹歌)란 향가에서는 월명사 스님이 죽은 누이의 제를 올리며 향가를 읊으니 홀연 바람이 불어 지전이 서쪽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에서 지전이 등장한다. 이 외에도 죽은 이의 무덤 속에 온갖 금은보화를 넣는 풍습 역시 망자를 위한 ‘노잣돈’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방식은 고대 인도인들, 특히 불을 숭배하는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던 중앙아시아의 쿠샨인들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죽은 이의 입에 저승에 가져 갈 노잣돈을 넣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인들 역시 이러한 저승 노잣돈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죽은 뒤에 실제 돈을 쓸 수 있을까?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것은 망상이다. 현실의 삶을 죽은 뒤의 삶에 투영한 것뿐이다. 흔히 억만금이 있어도 죽은 뒤에 한 푼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권력이 되었든, 부가 되었든 생전에 갖고 있었던 것은 어느 것 하나 가져갈 수 없다.


그럼 살아생전에 우리가 갖고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우리의 선행(善行)과 믿음(信), 그리고 수행(修行)에 대한 과보는 가져갈 수 있다. 이러한 것이 씨앗이 되어 내생의 어느 시점에 우리는 천상에도 태어나고, 깨달아 부처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악행(惡行)과 불신(不信), 나태(懶怠)에 대한 과보도 가져가게 된다. 그 결과는 악처(惡處), 곧 지옥이나 축생, 아귀의 세계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샹윳따 니까야’에는 천신과 부처님의 대화가 전하는데, 그 내용에서 ‘노잣돈’이란 표현이 나온다. 천신이 묻는다. “무엇이 노잣돈입니까?” 부처님이 답하신다. “믿음이 노잣돈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불법승(佛法僧) 삼보에 대한 청정한 믿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불도(佛道)를 닦는데 있어 그 밑거름이 되는 것은 바로 삼보에 대한 귀의이다. 귀의(歸依)는 돌아가 의지한다는 말이다. 즉 불법승 삼보에 마음을 돌려 의지처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이 내용은 죽은 자를 위한 노잣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관 지어 생각해볼 여지는 많다. 성인의 계위 가운데 예류(預流)성자가 있는데, 이는 불법승 삼보에 대한 결코 무너지지 않는 믿음(不壞信)을 갖고, 계율을 지키면 획득되는 경지이다.


예류성자가 되면 죽은 뒤에 최대한 7번 천상과 인간세계를 왕래하면 궁극의 깨달음을 얻어 열반을 성취하게 된다. 그래서 극칠반생(極七返生 : 최대 7번 다시 태어남)이라고도 표현한다.


바로 여기서 중요한 것이 ‘믿음’이다. 이 결코 무너지지 않는 청정한 믿음은 우리가 죽은 뒤에 가져갈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노잣돈이자, 악처(惡處)를 벗어나 선처(善處 : 하늘나라, 인간)로 나아갈 보증수표가 되는 것이다. 살아서의 바르고 청정한 믿음은 삶을 편안하고 두려움 없이 살게 한다. 그리고 죽은 뒤에는 선처로 나아가게 하고, 나아가 깨달음으로 인도하게 되는 ‘노잣돈’이 된다.

 

▲이필원 박사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은 ‘한 번 믿어볼까?’가 아니라, 나의 모든 존재를 걸고 ‘확고하고 크게’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때 믿음이 노잣돈의 역할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깨달음의 씨앗도 되는 것이다. 용수 보살이 ‘대지도론’에서 “불법(佛法)의 대해(大海)는 믿음으로 능히 들어간다”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동국대 연구교수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