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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문

기자명 이필원

안팎 구분하는 문은
6개 감각기간과 같아
‘알아차림’이 없다면
각종 유혹에 마음 뺏겨


우리가 바깥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문’은 안과 밖을 구분하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다. 문이 없으면 안과 밖은 구분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물론 다른 생명체에게도 적용되지만,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있다고 말해진다. 이를 부처님께서는 육근(六根)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 육근을 문에 비유하여,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여섯 가지 문이란 의미이다. 우리는 이 여섯 가지 문을 통해 외부대상과 접촉하고, 그 내용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이 없으면 외부대상을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이 여섯 가지 문은 인식의 수단, 방법인 셈이다.


그런데 이 문이 잘 지켜지지 않으면, 문을 통해 도둑이 들게 된다. 이런 도둑을 비유하여 육적(六賊)이라고 한다. 우리의 감각기관이란 문을 통해 여섯 가지 도둑이 든다는 말이다. 아름다운 대상에 눈을 빼앗기는 것, 아름다운 소리에 귀를 빼앗기는 것, 맛있는 음식에 입을 빼앗기는 것, 부드러운 감촉에 피부를 빼앗기는 것, 향긋한 냄새에 코를 빼앗기는 것, 온갖 상념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도둑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감각기관이란 문에는 반드시 문지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문지기가 도둑이 들어올 수 없도록 감시, 감독을 해야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이 문지기를 ‘알아차림(sati)’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는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문지기가 문을 지키는 것이 된다. 그리고 문득 예전의 후회스러운 일이 떠오르면, 내가 후회스러운 일을 떠올린다고 아는 것이 문지기가 문을 지키는 것이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감각기관의 문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문지기도 그러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이것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이 여섯 가지 문을 상황에 맞게 사용한다. 때로는 거의 동시에 여섯 가지를 같이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 가지만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의 감각기관의 문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거기에는 반드시 왜곡이라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상윳따 니까야’에는 “감각기관의 문을 지키지 못하는 자에게(aguttadvārassa) 모든 것은 헛된 것이다. 사람이 꿈속에서 얻은 보물처럼”이라는 가르침이 나온다. 감각기관의 문을 통해 들어온 것들을 우리는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사실은 ‘무상하고 일시적인 것’을 ‘영원히 있다’고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그러니 그것은 꿈속에서 얻은 보물처럼 허망한 결과가 될 뿐이다.


감각의 문이 이처럼 대상을 왜곡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고집을 먼저 버려야 한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 한, 대상을 왜곡 없이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울에 먼지가 덕지덕지 묻어 있으면, 대상은 명료하지 못하고 흐릿하게 비추어진다.

 

▲이필원 박사

하지만 거울의 먼지를 제거하여 깨끗하게 하면, 거울이 비친 대상은 있는 그대로 명료하게 비추어지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먼저 ‘대상에 대한 선입견, 지식, 개념’ 등으로 물든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감각의 문을 통해 들어온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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