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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나타났다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3.09.30 16:32
  • 수정 2013.09.30 16:35
  • 댓글 0

살아 있는 우리와 달리 귀신들은 멈춘 시간 속에 존재한다. 대개 잊을 수 없는 어떤 상처 때문에 죽어서도 저승으로 가지 못한 채 떠도는 귀신들은, 어떤 연유로 어떻게 죽었든 모두 죽었을 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이 죽은 시간에 멈추어 있다. 그런데 종종 멈춘 시간 속에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분명히 살아있는 사람임에도 귀신을 본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얼마 전에 ‘내란음모’ 혐의로 검거되면서 문제가 되었던 ‘이석기 사건’을 보면서, 미안하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현재의 상황을 전쟁상태라고 규정하면서, 총기를 준비하여 싸울 준비를 하자면서 몇몇 장소를 습격할 계획을 세웠다는 보도를 보면서, 짧게 잡아도 20여년 전의 시간에 그들의 시계는 멈추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좀 더 오래 전의 시간에 멈추어 있다고 해야 한다. 그들이 지금을 전쟁에 준하는 상황이라고 보는 것을 나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전의 포격사건이나 천안함 사건 같은 일이 있었을 때에도, 이전에 그랬듯이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일이라고 보았지 전쟁의 징후라곤 보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하여, 그런 판단의 이유를 유심히 찾아보니, 북한의 정전협정의 폐기선언이 그렇게 생각한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한다. 법적으로 본다면 6.25의 휴전협정 이후 남북한은 ‘휴전’ 상태였고, 정전협정이 폐기되었으니 다시 전쟁상황으로 들어간 것이긴 하다. 그러나 이게 정말 우리가 사는 현실의 상황일까?


이런 식의 생각은 정전협정을 통해 전쟁이 휴전으로 접어들었던 1953년, 혹은 그 휴전상태의 감각이 현실감을 갖던 50년대라면 상당히 설득력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심지어 대포를 쏘고 해도 그게 남북간 내지 ‘북미간’의 전면적인 전쟁이 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남한에서라면,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60년의 시간 속에서 남북관계나 ‘북미관계’가 이미 전쟁을 벌이기도 쉽지 않은 그런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정전협정 폐기에 놀라 전쟁직전의 상황이니 그걸 준비하자는 얘기를 많은 이들이 어이없는 코미디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런 감각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멈춘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이들이 그들만은 아닌 것 같다. 유신헌법을 만들고 유신정국을 주도했던 김기춘 씨가 비서실장이 되고, 그의 입김 아래 턱도 없는 이유로 멀쩡한 검찰총장의 목이 날라가는 걸 보면서, 그리고 유신시대의 노인들이 유신시대의 감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청와대와 정부의 요직들을 채우는 걸 보면서, 멈춘 시간 속에 사는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우리 눈앞에 도래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하긴, 생각해보면 북미관계의 멈춘 시간 속에 사는 이들과, 남북간의 적대 관계 속에서 어이없는 헌법을 만들고 ‘유언비어 유포’로 사람을 가두고 ‘막걸리 국보’를 만들어내던 이들이 잘 어울리는 짝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반대편에서 동시에 멈춘 시간 속의 귀신들이 나타난 것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두 귀신이 다른 것은, 전자의 멈춘 시간이 시간의 간극 속에서 발생하는 당혹이나 웃음을 준다면, 후자는 국가적 권력을 통해 우리의 삶을 그 멈춘 시간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는 점이다. 그 얼어붙은 시간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이 싫은 것은 그 멈춘 시간이 결코 행복한 추억의 시간이 아니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이진경 교수

인터넷과 휴대폰 등의 강력한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가 ‘리얼타임’이라고 부르는 하나의 시간 속에서 미친 듯한 속도로 달려가는 시대에, 40여년 전의 멈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무리 곱게 생각해보아도 집단적으로 퇴락하거나 그게 아니면 그들처럼 우스운 귀신들이 되는 길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진경 교수 solaris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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