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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창호제작 30년 淸圓 심용식 씨

기자명 법보신문

“부처님 집은 문짝 하나라도 달라야죠”


어디든 부처님 일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

아낌없이 재주 바치고

전통 창호의 미덕을

세계에 알리겠다



그이 명함을 들여다보다가 유독 한 낱말에 눈길이 머문다. ‘고전창호, 문화재창호’라고 새긴 아래쪽에 특별히 돋을새김한 것처럼 두드러져 보이는 글자 ‘쟁이’. ‘고전창호쟁이 심용식(沈龍植, 48세)‘이 그이가 바라는 이름이다. 예술가, 아티스트 등 소위 우아한(?) 이름을 마다하고, 굳이 ‘쟁이’로 불리길 원하는 그이의 고집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그 낱말에 담겨있을 의미를 그이라고 모를 리가 없다.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끔 퉁을 주는 이들도 있다. 쟁이가 뭐냐고. 그 문제에 대한 그이의 생각은 호쾌하다.

“저는 쟁입니다. 쟁이로 30년을 넘게 살아왔고, 한 번도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해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최고의 창호쟁이가 되는 게 제 남은 꿈이기도 하구요.”



경배하는 마음 담아 5백여 사찰 창호 제작



충남 덕산에 탯자리를 둔 그이는 덕산초등학교 시절, 등교길에 지나다니던 목공소에서 새어 나오는 소나무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렸다. 그리고는 졸업과 함께 스스로 찾아간 그 목공소에서 첫 스승인 소목장 조찬형(고가구, 현재 충남 인간문화재) 씨를 만났다. 일곱 남매를 거둬야 하는 곤궁한 부모님은 아픈 속내를 감추지 못하면서도 열세살 어린 아들의 뜻을 막지 않았다.

군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십년 간 그곳에서 목수일을 배우면서 또 한 분의 스승을 만났다. 사찰이나 고건축 건설 현장에서 문을 만드는 수덕사 대목 이주탁(현재 문화재 기능보유자) 씨 였다. 그 두 번째 스승과의 만남으로 그이는 창호에 조금씩 눈뜨기 시작한 셈이다.

두 번째 스승의 지도로 그렇게 나무들 속에서 먹고 자고 숨쉰 지 육년 남짓, 마침내 그이의 첫 작품이 수덕사 요사채 창문으로 세상에 선보이기에 이른다. 1971년에서 2년 사이의 일로 기억한다. 비록 법당문은 아니지만 밤낮없이 수행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은은히 담아낼 빗살문을 바라보며 느꼈던 환희심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출발이 그런 만큼 사찰 창호를 만들 때의 마음가짐은 남다르다. 철모를 때 그를 편안하게 맞아주던 할머니의 원찰 보덕사, 현재 온 가족이 집처럼 드나드는 안산 청룡사 등에서 나름의 신심을 키웠으면서도, 사찰 창호 만드는 일을 부처님께 대한 경배이며 간절한 기도라고 생각한다. 중생의 삶을 걱정하는 부처님의 그윽한 눈길이 자신이 만든 창문에 닿는다고 생각하면, 어느 한 귀퉁이 소홀히 대할 수 없다.

이렇게 그의 신심어린 손길로 빚어낸 창호가 현재 전국 5백여 곳의 사찰에 걸려 있다. 가장 어려운 공정을 거친 만큼 특별히 마음이 가는 운문사 큰법당의 민꽃살문, 수국사 황금법당문, 진천 보탑사 법당문, 그리고 집에까지 가져다가 보수했던 통도사 금강계단의 모란꽃살문 등 문화재 사찰에서부터 인연 깊은 작은 산사에까지 그이의 손길이 미친 곳이 적지 않다.



스승의 은혜를 제자와 이웃에 회향



만리동 고갯길을 오르다 보면, 고전창호를 단 고풍스런 낡은 건물이 왼쪽에 나타난다. ‘誠心藝工院’이란 간판이 걸린 이 건물이 그이의 서울 사무실이며, 그 아래층은 작업장으로 쓰인다.

1982년 서울로 올라온 후 처음 자리잡은 이 동네는 살림집과 사무실이 있는 삶의 터전이 되었다. 그리고 그이가 더 좋은 스승을 만나 쟁이로서 큰 걸음을 뗀 곳이며, 또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어받고 넓혀줄 제자들을 키워내는 곳이기도 하다.

운이 좋아 훌륭한 스승들을 많이 만났다. 위의 두 스승 외에도 남대문을 지은 고건축 인간문화재 고 이광규 선생과 최영한 명장 밑에서 그의 공부는 더욱 깊어졌다.

“이 선생님 아래서 5년을 공부하는 동안, 최영한 선생님을 만났는데, 이광규 선생님은 꼭 최선생님께 창호 제작을 맡기셨죠. 최 선생님의 호된 가르침 속에서 제 얕은 손재주가 비로소 쟁이 솜씨로 여물게 된 거지요.”

그이에게는 현재 6명의 제자가 있다. 그 중 17, 8년이란 긴 시간을 그이와 함께해 온 제자들은 가족처럼 정도 들었고, 어떤 일을 맡겨도 믿음이 간다. 일 앞에서 그렇게도 매몰차고 무섭던 스승들의 깊고 큰 사랑을 요즘, 제자들을 가르치며 느낀다. 자신이 직접 걸어온 길의 각박함을 뼈저리게 체험한 그의 제자에 대한 정은 애잔하고도 각별하다.

현대식 창호보다 두 배가 넘는 비용이 드는 고전창호 수요가 없던 시절, 장모님과 만삭의 아내까지 거들어도 늘 빚만 늘었다. 아이들 학비가 없어 쩔쩔매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이는 조금 형편이 나아지자 제자 자녀들의 학비부터 대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은 액수지만, 그 세계에서는 드물게 퇴직금도 지급하고 있다. 가정이 안정되어야 작업능률이 오른다는 나름의 철학을 내세우긴 하나, 그 밑바닥에는 제자를 사랑하는 스승의 따뜻한 마음이 스며있다.

더불어 그이는 몇 년 전부터 만리동 생활보호대상 가정의 학생들이나 소년소녀가장들의 장학금을 도와주고 있다.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받은 유형 무형의 것들을 이젠 남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전창호 위상 찾고 최고의 쟁이로



고전창호는 창과 지게문(출입문)을 합쳐 이르는 말이다. 나날이 고전창호에 대해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제작비가 비싸 대중화의 길은 멀다. 더불어 창호를 독립 분야로 보기보다 고건축이나 고가구에 포함시켜 특수성이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불교미술계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불교미술에 고전창호를 끼워 주지조차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이니 고전창호 장인의 사회적 위상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전국에 10명 정도나 될까요.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야죠. 그러나 예전보다 는 훨씬 인정받고 있고, 수요도 점점 늘고 있어서 희망적입니다.”

심용식 씨가 제5대 동국불교미술인회 회장을 맡게 된 것도 그 징조라고 할 수 있다. 1993년 동국대 불교미술대학원 출신의 기능보유자들을 주축으로 설립된 이 단체가 고전창호장을 회장으로 추대했다는 건 고전창호의 입지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다.

그이가 작년부터 한옥문화원(원장 신영훈)의 ‘한옥 짓기’ 강좌에 출강하고 있는 것도 큰 변화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운문사 법당 지을 때부터 인연이 되어, 그이의 재주를 아끼고 지켜봐 주는 신영훈 원장의 고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와 배려가 뒷받침된 결실이기도 하다. 그이에게 신 원장은 이론과 실무를 다 고증받을 수 있고, 좀더 넓은 작품세계로 나가도록 아낌없이 질책하고 도와주는 큰 스승으로 자리잡고 있다.

30년 넘는 시간을 오로지 한길에만 정진하고도, 겨우 창호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겠다는 심용식 장인. 그이는 어디든 부처님 일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 자신의 재주를 아낌없이 바치고 싶고, 이 나라 최고의 창호쟁이로서 전통 창호를 세계 각국에 알려 빛내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이가 거인으로 보이는 건, 세상을 향한 그이의 밝고 따뜻한 마음이다. 어려운 이들에게 눈길을 돌릴 줄 아는 그이는 어쩌면 진정한 ‘인간쟁이’가 아닐까.



창호 제작 과정



1. 좋은 나무를 골라 매끈하게 대패질해서 알맞은 크기로 자른다.

(주로 춘양목이나 적송, 홍송 가문비나문 등을 쓰는데, 나이테가 고르고 간격이 일정해야 하며, 송진이 적어야 한다. 나무는 겨울에 구입해서 1년 동안 비바람을 맞히고 한 달 동안 증기를 쬔다. 다시 11개월을 자연 건조시켜, 함수율이 5% 미만이 되어야만 후에 갈라지거 나 뒤틀리지 않는다.)

2. 마름질 : 목재에 구멍 뚫을 자리를 표시하는 일. 작은 오차가 생겨도 안되므로 날카로운 문구용 칼을 사용한다. (전 작업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작업으로 이 작업을 하는 곳을 심용식 씨는 ‘지휘본부’라고 부른다.)

3. 끌 작업 : 마름질로 표시한 부분을 끌로 파내는 일.

4. 대패질 : 목재를 한번 더 매끈하게 대패질한다.

5. 맞춤 : 문살을 서로 끼워 맞추는 일.

6. 조각작업 : 끼워 맞춘 문살에 문양을 새기는 일.

7. 마무리 : 들기름을 바르거나 창호지를 붙이는 일.



문살 문양의 종류



1. 사찰에 주로 쓰이는 문양 : 꽃살, 민꽃살, 빗살, 정자살

2. 일반 요사채 : 띠살

3. 박물관 : 띠살, 완자살

4. 궁궐 등 : 포도살

기타 : 소슬, 곧은살, 격자살, 팔각 등

* 예술성은 꽃살이 높다.



글 노희순(자유기고가)·사진 황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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