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삼광사 주지 무원 스님
부산 삼광사 주지 무원 스님
  •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 승인 2013.10.0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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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화두삼아 다름이 아름다운 세상을 열다

독실했던 모친 유언따라
천태종본산 구인사 출가
유년·청년 겪었던 고독
회피않고 직면하며 극복


다문화·남북교류·나눔
사회활동 쉼 없이 매진
‘힐링광장’ 삼광사 주 동력
현대인 적합 프로그램 개발


둘이 아닌 하나의 세상이
부처님 말씀하신 불국토

 

 

▲무원 스님

 


초하루 법회에만도 1만 5000여명이 운집하는 삼광사의 신도는 36만명. 1982년 부산 백양산 기슭에 첫 삽을 뜬 이후 30여년 만에 이룬 쾌거다. 신도 수에만 초점을 맞춰 사찰의 위상을 논할 수는 없지만 36만이란 숫자는 결코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삼광사를 일궈가는 사람은 사부대중이지만,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선두에 서서 대중을 이끌며 수많은 고난을 헤쳐 가야 할 사람은 주지다. 그 역할에 따라 사찰의 흥망성쇠가 좌지우지된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기에 삼광사 주지를 맡는다는 건 사찰의 새 역사를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천태종의 역사로 이어진다.


2013년 2월1일 삼광사 주지에 무원 스님이 취임했다. 우려의 여론은 전무했고, 기대감은 고조되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무원 스님은 천태종에서도 진취적 인물로 정평이 나있었다. 단순히 천태종 총무원 총무부장과 총무원장 직무대리를 지냈다는 이력 때문만이 아니다. 서울 명락사를 불교 최초 다문화가정 사찰로 선포하고, 천태종 차원의 남북교류 창구를 열며 영통사 복원을 이끈 인물이 무원 스님이다. 태백 등광사, 포항 황해사, 인천 황룡사, 서울 명락사 등의 자리를 옮길 때마다 늘 지역 사회의 나눔 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불교의 대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먼저 인식하고 실천에 옮긴 스님이다. 삼광사의 또 다른 변화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대중가슴에 벅차올랐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변화는 예상보다 빨리 일어났다. 그 변화의 중심축에 지난 7월 출범한 ‘힐링광장’이 자리잡고 있다. 기존의 삼광사 산하 복지문화 단체와 무원 스님 원력으로 꾸려진 사회복지 단체 등 20여개 단체를 ‘힐링광장’이라는 큰 수레에 담아낸 것이다. 불교광장의 슬로건은 ‘부처가 중생을 찾아가다!’

 

 

▲무조건 오라는 불교에서 이제는 찾아가는 불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무원 스님. 부산 삼광사는 이러한 스님의 원력에 의해 또 한 번 새롭게 일어서고 있다.

 


무원 스님의 주지 취임 직후 소소한 변화가 일었다. 경내에 벤치가 하나 둘 씩 놓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새롭게 조성한 백천연지(白泉蓮池)가 윤곽을 드러냈다. 웅장하지만 다소 경직돼 보이는 경내를 좀 부드럽게 보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벤치에 앉아 백양산 자락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젖고, 연못에 흐르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이 또한 관음보살님의 소리라는 걸 불현 듯 알게 되겠지요.”


‘시냇물 소리는 부처님 설법(溪聲便是長廣舌)’이라 했던 소동파는 이어서 ‘산빛은 깨끗한 법신(山色豈非淸淨身)’이라 했다. 무원 스님은 “물바람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 또한 그대로 법신”이라며 차 한 잔을 낸다.


꾸밈없는 호탕한 성격의 스님임이 분명하게 전해져 왔다. 청량하고도 그윽한 이 호쾌함은 언제 발현된 것일까? 스님은 심산유곡의 산과 동해바다가 펼쳐진 강원도 강릉 출신이다. 어쩌면 천혜환경 속에 자라난 덕에 이러한 호쾌함이 유년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배였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해 보았다.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잠시 회상에 젖는다.


“저의 유년과 청년 시절은 쓸쓸하고 외로웠습니다. 동산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며 허한 가슴을 달랬던 게 다반사였으니 말입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낙엽 하나 구르고, 꽃잎 한 장만 떨어져도 뭔지 모를 쓸쓸함에 휩싸였다고 한다. 놀라운 건 동산을 내려올 즈음이면 즐거웠다는 사실이다. 무엇인가를 사유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아가 사유에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의 긍정적인 갈무리를 했을 터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울증에 시달렸을 것이다.

 

부친의 임종을 지켜 본 스님은 오대산 동대 기슭에서 삶을 마친 어머님의 임종도 지켜보았다. 평창 월정사와 상원사에서 수행정진했던 어머님은 탄허 스님을 비롯해 희찬, 대허 스님 등 내로라하는 오대산 스님들 사이에서도 ‘보살’로 유명했다고 한다.


어머님이 병환으로 누웠을 당시 수발을 든 사람은 다름 아닌 둘째 아들 무원 스님이었다. 가족 중에 딸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머니를 향한 지극한 효심이 아니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을 떠날 시각까지 어머니는 인지했던 것일까? 어느 날, ‘생전에 신세 진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라도 전해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님 표현대로 ‘눈 뜨고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산을 내려 간 어머니는 10여일 동안 이곳 저 곳을 다니며 지인들과의 인사를 나눈 후 돌아와 세상에 이별을 고했다. 무원 스님은 임종 직전 어머니가 남긴 한 마디만을 가슴에 안은 채 오대산을 떠나 길을 나섰다. “아들아, 넌 스님이 되었으면 좋겠다.”


수행자가 만행을 떠나듯 스님은 나그네가 되어 산과 강을 벗 삼아 이 산, 저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리고 길은 어느 덧 구인사에 닿았다. 언제가 어머님이 ‘구인사에 꼭 한 번 가보라’했던 기억이 스님의 발길을 그곳으로 이끌었을 터였다. 큰스님을 뵙고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스님, 잃어버린 나를 찾아보려 왔습니다.” “설선당에서 100일 정진해라.”


이제 막 출가 의사를 밝힌 무원 스님을 곧바로 설선당에 앉혀버린 스님은 다름 아닌 천태종 2대 종정 대충 대종사. ‘큰 재목’임을 스승은 한 눈에 알아 본 것이다. 49일쯤이었을까? 은사 스님 앞으로 나아갔다.


“출가하겠습니다.” “좋다. 그리해라.” “도를 어떻게 닦습니까?” “마음 하나 잘 쓰면 되지!”


그 때가 무원 스님 세납 20대 초반의 1979년이다. 무원 스님의 ‘쓸쓸함과 외로움’은 출가와 함께 세속에 묻었다.
쓸쓸함을 사유로 달래며 외로움마저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조우했던 청년 시절의 ‘그 무엇’은 다름 아닌 고독일 것이다. 신학자이며 사상가였던 독일의 폴 틸리히가 말하지 않았던가.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라고. 고독한 사문의 길을 걸어야 하는 수행자의 불연은 무원 스님에게 숙연이었는지도 모른다.


힐링광장! 힐링과 광장은 친숙하다. 하지만 ‘힐링광장’은 낯설다.


“부처님께서 연기법을 설하신 직후부터 힐링은 시작된 겁니다. 그 말씀의 의미를 모르니 아직도 삼독에 병든 신세가 된 것뿐이지요. 힐링은 상호보완 작용 속에서 가능합니다.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힐링이 가능한 것이지 사람도, 자연도 떠난 혼자만의 사유 속에서 힐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사찰과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찰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힐링 될 수 있도록 사찰 스스로 능동적으로 다양한 방편을 써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습니다. 삼광사의 예불기도 수행은 시간대에 따른 테마가 있습니다.”


그렇다. 새벽 3시는 ‘희망과 행복을 위한 새벽예불’이고, 오전 10시30분 기도는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위한 사천수관음기도’이며 저녁 5시는 ‘안락과 평화를 위한 저녁 예불’이다. 저녁 8시 ‘걷기 명상 힐링탑돌이’와 밤 9시 ‘직장인의 건승과 행복을 위한 108참회관음기도’는 직장인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다. 밤 11시는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참 나를 찾는 관음정진’이다. 현대인들에 적합한 구체적이고도 세분화된 프로그램이다.

 

 

▲가을에 물들어가는 부산 삼광사 전경.

 


“사찰도 변해야 합니다. 무조건 ‘오라’는 불교에서 ‘찾아 가는’ 불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꿰뚫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을 진정으로 보듬을 수 있고 나아가 불교적, 사회적 대안도 제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좀 더 청안한 세상을 일궈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부처가 중생을 찾아 가다’ 불교광장의 슬로건 의미가 와 닿았다.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단 후원, 한가위 맞이 다문화가정 초청 한국예절 강좌, 독거논인 지원사업, 다문화 다종교 평화운동 캠페인, 찾아가는 자비의 밥차, 청소년 힐링캠프, 어린이 여름 템플스테이. 그랬다. 힐링광장이 추진한 불사 일체가 이 슬로건에서 출발한 것이다.


‘광장’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20여개의 단체가 모인 공간적 광장만은 아닌 듯하다.


“‘정신적 공간’ 즉 연기로 펼쳐진 세상을 말합니다.” 스님은 다문화 다종교 평화운동을 일례로 들었다.


“다문화 가정이란 말도 언젠가는 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외국인’이란 말도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뜻하는 말일 뿐이니 ‘다문화’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차별인 셈입니다. ‘다름’은 인정할 수 있지만 차별은 용인될 수 없습니다. ‘다문화’보다는 ‘글로벌 문화’라는 말이 더 적합합니다.”


다문화 가정을 배려해야 한다는 근시안적 사회적 통념을 깬 일언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은 다종교 평화운동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한다.


“종교 리더 격에 있는 분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가정이 화목해야 행복해 진다.’ 하물며 종교인들이 종교간 평화 운동을 해야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겁니다. 자책할 게 있다면 종교간 갈등을 종교 지도자들이 부추긴다는 사실이지요. 종교도 홀로 있는 게 아닙니다. 문화 속 종교요, 사회 속 종교 아니겠습니까? 문화가 다양하듯 종교도 다양하게 이 사회에서 펼쳐질 수 있는 겁니다. 상대 종교 인정해야지요. 다양한 종교가 조화를 이루면 새로운 문화도 창출돼 사회는 더 풍성해질 게 확실합니다.”

 

 

▲부처님오신날 삼광사 풍경.  사진 조희주.

 


스님은 ‘산 속 샘에서 시작된 물이 강을 따라 흐르다 바다에 모이듯 각기 다른 나와 너, 나와 자연도 궁극에는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이 아닌 하나’의 세상을 가꾸려 할 때 자비, 지혜, 백호의 빛이 나툴 것이라 했다. 그 세 개의 빛이 머무는 절이 삼광사(三光寺)요,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비추는 빛이다.


“누가 부처고 누가 중생이겠습니까? 찾아 가려는 사람이 부처요, 맞이하는 사람이 부처입니다. 찾아 가고 맞이하는 마음 하나 잘 쓰는 사람이 지혜롭고 행복한 인생을 설계하겠지요.”


힐링광장의 슬로건에 따른 지표가 눈에 들어온다. ‘지혜롭게 비움, 행복하게 비움, 자비롭게, 나눔, 아름답게 동행, 다름이 아름다운 세상.’ 누가 비우고 동행하는가?


무원 스님이 대중과 함께 이루고 싶은 ‘광장’, 그건 청정불국의 세상이다. 대충 대종사가 무원 스님께 전한 일언을 스님은 화두처럼 들었던 듯하다. 언제 깬 것일까? 지금 그 마음을 대기묘용하게 쓰고 있지 않은가!


무원 스님은 ‘중생을 일깨울 수 있는 힘’을 얻겠다는 원력으로 기도한다고 한다. ‘욕심’이 있다면 삼광사 신도분들이 갖고 있는 자긍심을 좀 더 높일 수 있도록 산사를 ‘멋지고 활기차게’ 가꿔보고 싶다는 것 하나다. 삼광사의 대 변화가 기대되지 않는가!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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