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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비구름과 바람

기자명 법보신문


구름이 이미 비 뿌리면
피해 줄이는 데 애써야
생긴 번뇌 바로잡는 건
지난한 수행 노력 필요


바람은 비구름을 몰고 오기도 하지만, 몰고 가기도 한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비구름은 그 자리에 멈춰 많은 비를 뿌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바람은 상황에 따라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메마른 땅에 비구름을 몰고 온 바람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바람이며, 많은 비로 인해 비피해가 발생했을 때 비구름을 몰고 간 바람 역시 참으로 감사한 바람이다. 하지만 그 반대는 야속한 바람이 될 것이다.


장마철 강한 비를 뿌리는 비구름이 몰려올 경우를 생각해 보자. 생겨난 비구름에게 비를 내리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을 두고 탓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이다. 비가 내릴 만큼 내려 그치는 것을 바라는 것과 강한 바람이 불어 비구름을 몰고 가길 바라는 일일 것이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피해를 줄이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현상을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으니,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철저히 대비를 하는 일일 것이다.


‘상윳따 니까야’에 이와 관련된 비유가 나온다. 경전에서 비구름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강한 바람은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7가지, 즉 칠각지(七覺支)를 의미한다. 이 비유가 나오는 경문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커다란 비구름이 생겨났을 때 강한 바람이 몰아치면, 그것을 홀연히 사라지게 하고 그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닦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익히면, 이미 생겨난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홀연히 사라지게 하고 그치게 한다.”


칠각지의 내용은 첫째 알아차림(念), 택법(擇法), 정진(精進), 희열(喜), 안온(輕安), 집중(定), 평정(捨)이다. 이러한 칠각지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사라지게 하여, 열반으로 이끈다.


우리는 홍수를 대비하여 여러 가지 준비들을 한다. 댐이나 방파제를 쌓기도 하고, 수로를 정비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나에게 밀려오는 악하고 불건전한 비구름에 대처하는 일에는 소홀한 것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다. 외적으로는 이런 저런 방식으로 애를 쓰면서도, 내적으로는 거의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밖으로 홍수를 대비하듯이, 안으로는 번뇌에 잠식되지 않도록 대비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수행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수행에는 두 가지가 있는 셈이다. 하나는 미리 방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미 생겨난 불건전하고 악한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후자의 입장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은 어느 날 문득 생겨난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내가 태어난 이래 오랫동안 익혀온 습관과 생각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러한 것들을 보통의 노력으로 없앨 수 있을까. 잘못 익힌 앉는 자세하나 교정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평생 지녀온 건전하지 못한 습관과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 조금 노력한다고 바로잡아질 수 있을까. 아마도 지난한 노력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필원 박사

하지만 천릿길도 한 걸음이라고 했듯이, 바로 지금 나의 행동과 말과 생각을 체크하는 것에서 수행은 시작된다. 이것은 미미한 것처럼 보이지만, 번뇌를 한 순간에 날려버릴 강한 바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칠각지는 바로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나의 생각이나 행동 하나하나 자각하면서(念), 바른 가르침을 따라(擇法) 열심 노력하면(精進), 커다란 기쁨(喜悅)과 안온함(輕安)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힘으로 깊은 삼매(定)를 얻고 흔들림이 없는 평정심(捨)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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