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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빛

기자명 법보신문

두려움 낳는 어둠은
대상마저 왜곡시켜
번뇌로 점철된 삶도
지혜의 빛으로 정화

 

불교에서는 알지 못하는 것을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무명이란 밝음이 없는 것, 즉 어두움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어두움은 진리에 대해 알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밤하늘에 달빛마저 없는 그 캄캄함을 상상해 보라. 막막함과 두려움, 그리고 온갖 환상과 상상이 대상을 왜곡시킨다. 저곳에 있는 나무가 마치 귀신인양 보이기도 하고, 바람소리가 동물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가 뱀 인줄 알고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이쯤 되면 정신이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 더구나 어느 방향이 옳은지 확신도 없으니, 더욱더 막막하게 된다.


그러다가 저 멀리 불빛을 보게 되면, 마음은 다소 안도하게 된다. 불빛을 따라 가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두려움을 극복하게 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면 그럴수록 대상이 분명하게 지각되어 나무를 보고 귀신으로 착각하지 않게 된다. 환상과 상상에 의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마음은 점점 평온함을 찾게 된다. 이처럼 빛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빛을 지혜에 비유한다.


‘앙굿따라 니까야’에 지혜를 빛(ābhā)에 비유한 표현이 나온다. “비구들이여, 네 종류의 빛이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달빛, 햇빛, 불빛, 지혜의 빛이다.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빛 가운데 지혜의 빛이 최상이다.” 여기서 지혜의 빛은 빤냐브하(paññābhā)라고 표현되는데, 빤냐는 한역으로 반야(般若)이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지혜란 무엇일까. 이 세상이 고통임을 여실하게 아는 것, 그리고 팔정도 사성제가 고통의 소멸로 이끄는 길임을 명확하게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 마지막으로 고통이 소멸된 상태를 그대로 아는 것이 지혜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혜란 어떤 우주적 신비에 대한 앎을 의미하거나, 신비로운 그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어떤 환상이나 상상으로 덧보태어지거나 왜곡되지 않게 여실(如實: 있는 그대로)하게 보는 것이 지혜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혜는 단순한 앎의 차원, 이해의 차원이 아니다. 사막을 몇 날 며칠 헤매던 사람이 오아시스를 만나 마시는 한 모금의 물과, 물을 말 그대로 ‘물마시듯’ 마시는 사람이 ‘물’을 이해하는 것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물이 소중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것을 몸으로 뼛속까지 철저하게 아는 사람은 사막을 헤맨 사람일 것이다. 그럴 때, 그 앎이 단순한 이해의 차원에서 삶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실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지혜란 바로 이렇듯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단어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빤냐(paññā)는 동사 빠자나띠(pajānāti, 알다, 이해하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빠자나띠는 다시 자나띠(jānāti, 알다)에 ‘pa’라는 접두사가 붙은 동사로, 자나띠의 의미가 강화된 말이다. 그래서 단순한 앎이 아니라, ‘분명하게 알다’ 혹은 ‘경험적으로 철저하게 알다’란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빤냐, 곧 지혜는 ‘경험적으로, 분명하고 철저하게 아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필원 박사

만약 어떤 사람이 반야, 곧 지혜를 얻게 된다면 그 사람은 삶의 모습이 변할 수밖에 없다. 늘 깨어 있는 밝고 맑은 지혜의 빛으로 자신을 비추고 대상을 비추기에 어떠한 왜곡도 일어나지 않고, 어떠한 것에도 속임을 당하지 않으며, 어떠한 것에도 속박되지 않는 대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행동하나 하나는 모두 보살행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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