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논리의 타당성을 따져라

기자명 법보신문

논리학의 오류론에 ‘사람에의 추론’이라는 오류가 있다. ‘추론의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따지지 않고, 그 추론이 누구의 것이냐에 따라 추론의 타당성을 결정하는 오류’를 말하는 것이다. 공자가 “사람이 어떻다 하여 그 말을 버리지는 않는다”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오류를 피하라 한 것이겠다. 이러한 오류는 크게 보면 모두 ‘논점 부적절’ 오류에 포함되는 것이며, 우리가 감정을 지닌 인간이기에 자기도 모르게 범하기 쉬운 오류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이고, 대중들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휩쓸려 가는 것이 바로 이 ‘사람에의 추론’, 나아가 ‘논점 부적절 오류’가 아닌가 싶다.


정치판이나 그 언저리를 보면 이 오류가 난무한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다. 요즈음 문제가 된 여러 사건들을 보라. 어떤 자기편에 불리한 문제가 터졌을 때 거의 상투적으로 그 문제를 제기한 사람 자체를 문제로 삼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지 않은가를 살펴보라. 어떤 주장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전혀 논점이 다른 문제를 끄집어내어 그 주장을 매도하려는 시도는 또 얼마나 많은가 살펴보라. 그렇지 않은 일이 거의 드물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불교계도 그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요, 우리 국민과 불자들의 의식 지평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검찰총장의 사퇴로 끝난 사건이 그러하다. 그리고 요즈음 검사동일체 원칙을 문제 삼고 있는 사태 또한 그러하다. 왜 문제의 본질에 대하여 직접적인 해명이나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고, 전혀 논점이 다른 이야기들만 난무하고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만 거론한다고 하여 필자를 좌파 지식인으로 몰아가려 한다면, 그리고 좌파이기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매도한다면 바로 그러한 논의 방식이 ‘사람에의 추론’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가 어떤 사람인가를 접어두고, 요즘 현실에 일어나는 일이 과연 필자의 이야기와 부합하는지만 살펴보라. 그렇지 않은 일이 오히려 드물다는 것을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논리학의 근처에 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인데, 명명백백한 오류들이 그렇게 반복적으로 쓰이고 있는데도 전혀 그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기하지 않은가?


매번 그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데 익숙해진 정치권을 나무라기 전에 우리를 돌아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우리를 그러한 오류에 쉽게 동참하게 만드는 언론을 위시한 대중매체들을 비판적으로 뜯어보는 훈련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런 행태에 대해 엄한 질책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렇게 오랜 동안 민주를 외치고도 그 민주적인 절차나 방식에 대해 전혀 익숙해지지 않은 우리들….


사회의 문제가 우리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의식 수준이 밖으로 구현된 것일 뿐이다. 그렇게 이루어진 사회의 모습은 다시 우리의 의식을 형성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그렇게 형성된 의식이 다시 사회를 만드는 그런 순환이 있다. 그렇기에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정신을 똑바로 차려 그 문제를 바르게 처리하면 우리의 의식이 한 차원 향상될 수 있으며, 동시에 세상이 좀 더 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런 건강한 순환은 별로 일어나지 않고 나쁜 방향으로의 악순환이 점점 증폭되어 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성태용

논리학을 배우자는 것도 아니다. 조금만 차분히 생각하면 뻔히 알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반성 없이 휩쓸려가는 나와 우리의 모습을 한번 돌아볼 때, 바로 지금이 악순환의 증폭을 끝내는 때가 될 것이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