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2. 도적

기자명 법보신문

육근으로 접한 환경
평안함 훔치는 번뇌
계정혜로 바로 보면
마음속 고요는 유지

 

불교에서는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마음이 어떤 욕구에 끄달리는 것을 도적에 자주 비유한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六根)을 육적(六賊)에 비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초기불교 이래 대승불교나 선불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화엄경’ 59권에는 번뇌를 도적에 비유한 내용이 나온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보살이 법륜을 굴리는 것이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리시는 바와 같네. 계율(戒)은 바퀴통, 삼매(三昧)는 바퀴살, 지(智)는 장엄, 혜(慧)는 칼이 되어, 번뇌의 도적 깨뜨리고 온갖 마귀와 원수를 부수니 모든 외도들이 이를 보고 도망가지 않는 자 없네.”


보살이 굴리는 법륜과 부처님이 굴리는 법륜이 같기 위해서는 계율과 삼매와 지혜가 갖추어져야함을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온전히 갖춘 자라면, 그가 누구든 그가 굴리는 법륜은 부처님의 법륜과 같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계율은 틀이 되기에 바퀴통(?)으로 비유된다. 바퀴의 크기와 틀을 잡아주는 것이 바퀴통인 것처럼, 계율은 수행의 틀을 잡아주는 것이다. 만약 계율이 바로 서지 않으면 틀이 없는 것과 같으니 수행이 불가능하다. 바퀴통이 없으면 수레가 굴러가지 않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것만 갖고는 안 된다. 바퀴통은 바퀴살을 통해 차축과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온전한 바퀴가 되는 것이다. 삼매는 바로 바퀴살과 같아 바퀴통이 차축을 향해 정확히 고정될 수 있게 해주듯이,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주어 제멋대로 날뛰지 못하게 해 준다. 지(智)는 옳고 그름, 바른 것과 삿된 것을 바르게 분별하는 힘을 말하고, 혜(慧)는 그르고 삿된 것을 끊어 버리는 정신작용이다. 그래서 지혜를 칼에 비유한 것이다.


따라서 계정혜 삼학은 번뇌라는 도적을 물리치고 온갖 마귀와 원수, 외도들로 하여금 도망가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번뇌는 내적인 것을 의미하고, 온갖 마귀와 원수, 외도들은 외적인 것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외적인 다양한 장애들은 내적인 번뇌를 제거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내적 번뇌를 놔두고, 외적인 장애물을 아무리 치워보았자,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도적은 잡지 않고, 울타리만 높이 쌓고, 경비원만 많이 세워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도적을 잡으면 굳이 울타리를 높이 쌓을 필요도 없고, 경비원을 많이 고용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집안에 도적이 있는 줄 모르고, 바깥에서 들어오는 도적을 막기 위해 아무리 애써보았자 그것 역시 허사인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어느 부잣집에 허구한 날 도적이 들어 물건이나 돈을 훔쳐갔다. 그래서 그 집의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온갖 방책을 강구하여 도적을 막으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금고를 바꾸어도 소용없고, 경비원을 물 샐 틈새 없이 세워두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아버지가 금고가 있는 방에 들어갔는데 도둑이 금고를 털고 있었다. 도둑을 잡고 보니 바로 아들이었다.

 

▲이필원 박사

아들과 도둑을 잡을 방책을 강구했으니, 도둑이 잡힐 리 있겠는가. 이처럼, 번뇌란 도적을 처리하지 않고는 아무리 애를 써도 모든 일이 허사가 되고 만다. 그런데 번뇌란 도적을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삼학을 닦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도적의 정체를 바로 알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도적을 보고도 도적인 줄 모르는 것은 내 눈이 어둡기 때문이다. 삼학을 실천하여 눈을 밝게 하면, 도적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