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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울타리

기자명 법보신문

비교하는 마음이 교만
높을수록 안팎만 구분
수행 방해되는 큰 번뇌
누리는 것에 만족해야

 

민속촌에 가 보거나, 전통 가옥이 보존되어 있는 곳에 가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울타리나 담장이 아담하며 정담 있게 표현되어 있다. 위압감을 주는 경우는 성곽을 제외하고는 없다. 조선시대 궁궐을 보더라도 담장의 높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의 집들은 담장의 규모가 커지는 것 같다. 담장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여러 장치를 하기도 하고, 여기저기에 CCTV가 설치되어 혹여 모를 일에 대비한다. 그런 담장 밑에 있다 보면 몸을 자연스레 피하게 된다. 왠지 그 자리에 있으면 ‘누구냐? 어서 가라’하며 누군가 나올 것만 같기도 하다. 세상이 예전보다 험악해졌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여하튼 이것이 오늘날 세태이니 어쩌겠나. 단독주택보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도 바로 안전이라는 이유도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이처럼 울타리 혹은 담장은 구분하는 경계선이다. 안과 밖을 나누고, 내 것과 네 것을 분별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다 보니, 울타리가 높을수록 그 안에 사는 사람 역시 뭔가 특별한 사람인양 생각하게 된다. 일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란 생각은 그 사람의 머리를 뻣뻣하게 만든다. 바로 교만(驕慢)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화엄경’ 62권에는 교만을 울타리(담장)에 비유한 표현이 나온다.


“세 가지 존재는 성곽이 되고, 교만은 울타리가 되고, 여섯 갈래 태어남(諸趣)은 문이 되고, 갈애(愛水)는 해자가 된다.”


세 가지 존재(三有)란 욕계유, 색계유, 무색계유를 말한다. 그리고 여섯 갈래 태어남은 육도 윤회를 의미하고, 애수(愛水)는 갈애를 의미하는 것으로 악한 결과를 무르익게 하는 격정적인 욕망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각각 성곽, 울타리, 문, 해자로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교만을 주된 번뇌 가운데 하나로 본다. 번뇌 가운데에서도 6가지 근본번뇌(탐·진·치·만·의·악견)에 교만이 속한다. 이 6가지 번뇌에서 수많은 하위 번뇌(隨煩惱)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만이 얼마나 수행에 방해가 되는지 알 수 있다.


교만은 흔히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진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부처님은 이를 세 가지로 나누어 가르친다. 하나는 남과 비교해서 내가 잘 났다고 생각하는 것, 둘째는 남과 비교해서 그 만큼은 나도 한다고 생각하는 것, 셋째는 남과 비교해서 그 보다 내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는 일반적으로 열등감으로 보는 것인데, 부처님은 이것을 만(慢)에 포함시킨다.


이를 통해 본다면, 그것이 잘난 체 하는 것이든 못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든 남과 비교하는 것 일체가 교만한 마음이다. 이것이 수행에 방해가 되는 것은 비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이야 어떻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는데, 그것을 남과 비교하는 순간 마음은 흔들린다.

 

▲이필원 박사

현재 나의 처지나 상황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상대적 박탈감이니 상대적 빈곤이니 하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물론 옛 성현들이 소욕지족(少欲知足)을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욕심을 그 만큼 덜 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에 만족감을 더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만큼 마음의 담장도 낮아지고, 남과 다툴 일도 적어질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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