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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인문학 강좌 산책][br]제3강 그림, 불교 속으로 빠지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 특별기획
  • 입력 2013.12.02 16:26
  • 수정 2013.12.02 16:43
  • 댓글 0

한 시선 돌려보면 우리의 삶도 부처님과 닮아 있다

필요 없어 보이는 돌멩이도
없으면 그림의 가치 사라져


마지막 선에 담긴 노력이
‘명품’‘짝퉁’ 차이 만들어


평범해 보이는 일상 장면도
부처님 일생과 다를 바 없어


세상보는 ‘내 시선’ 가질 때
현실이 불국토로 변해 갈 것

 

 

▲ 11월28일 봉은사 법왕루에서 열린 인문학강좌 ‘산책’의 제3강 강사로 나선 조정육씨가 ‘그림, 불교 속으로 빠지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림을 통해 일상과 삶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제시한 조정육씨는 우리의 평범한 삶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님을, 그 속에 소중한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 강조했다. 

 

 

서울 강남 봉은사(주지 진화 스님)가 직장인들을 위해 마련한 인문학강좌 ‘산책’의 세 번째 마당은 그림의 향연이었다. 교과서에서나 봤을 법한 회화사의 대작부터 현대 화가들의 재기발랄한 그림까지, 시대를 뛰어넘는 다양한 분야의 그림들이 세 번째 초청 강사 조정육씨의 이야기보따리 속에 담겨 법왕루로 모여들었다. 혹한의 겨울을 예고라도 하려는 듯 11월에 찾아온 칼바람과 추위가 청중들의 발길을 막아설까 우려했던 마음은 기우일 뿐이었다.

 

마지막 강의가 열리는 28일 오후 7시30분, 봉은사 법왕루는 예의 다름없이 200여 명의 청중들로 만원을 이뤘다.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를 통해 동양그림이 우리 삶 속에 얼마나 깊고 잔잔하게 녹아들어있는지를 일깨워줬던 조정육씨는 이번 강의에서 그림을 통해 인생을 읽는 법을 제시했다. 앞서 출간한 ‘그림공부, 사람공부’에서 지면을 통해 선보였던 섬세하고 잔잔한 필치는 펜 대신 마이크를 잡는 순간 유쾌한 수다로 변해 청중들의 곁으로 다가섰다.


“지난주 고미숙 선생님의 강연에서 치매와 열반은 한끝 차이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림을 보는 한끝, 그 차이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동궐도(1824~30년 무렵. 273×576.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다. 동궐도는 창덕궁과 창경궁, 그러니까 당시 조선왕실의 중심이었던 경복궁의 동쪽에 있는 궁궐들을 그린 일종의 ‘기록화’다. 아무리 촘촘히 그려 넣는다고 해도 한 장의 종이 안에 담아낼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궁궐의 전각 뿐 아니라 주변에 놓여있는 화분 등 각종 기물, 마당의 나무와 꽃, 심지어는 세부 건물의 담장 밑 돌까지도 세어볼 수 있을 만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가뜩이나 넓은 궁을 이처럼 꼼꼼히 그리다보니 두루마리 형태의 긴 종이나 책처럼 접히는 화첩 등 당시 주로 사용하던 종이의 형태만을 고수해서는 이 같은 대작을 그려내기가 불가능하다. 방법이 없을 것 같은 순간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 하지만 그것은 우리 생각의 한계일 수 있습니다. 한계에 부딪혔을 때 누군가는 다른 생각으로 그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을 이 동궐도는 보여줍니다.”


조정육씨가 준비한 슬라이드 화면 속 동궐도를 자세히 확대해 보니 여러 장의 종이가 이어져 있다. 동궐도는 16권의 독립된 그림책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그린 이름 모를 화원은 창덕궁과 창경궁, 이 두 궁궐의 모습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16권의 화첩에 나눠 그리는 파격적인 방법을 택했다. 16권의 화첩을 모두 펼쳐 순서에 따라 배치했을 때 마치 퍼즐이 완성되듯 웅장한 왕실의 궁궐이 완성되는 것이다.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방법을 찾아보니 전혀 새로운 해결책이 나타난 것이다.

 

 

 


조정육씨의 안내를 받으며 그림을 통해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방법은 의외로 쉽고 흥미롭다. 그의 첫 설명처럼 한 끝만 돌려보면 되는 것이다. 과한 것과 부족한 것, 주연과 조연도 한 생각의 차이다.


그 생각 바꾸기의 두 번째 주인공은 ‘감’과 ‘석류’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누가 보아도 감과 석류다. 하지만 그것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잎사귀를 지우거나 과일만 두 개, 세 개 씩 그려 넣어서는 안 된다.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것, 작가가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린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아니다. 그림 속 낙관도, 잎사귀도, 화제도 모두 조화를 이룰 때 그 작품의 가치는 높아진다.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됐던 낙관이나 잎사귀, 화제를 지워버린다면 1000만 원짜리였을 이 그림이 100만 원도 안 되는 작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질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 때로는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기도 하고 우리 삶의 가치를 높여주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는 소소한 것들도 참 중요하다는 점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작품 속의 강약을 읽어내는 요령, 작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명품’과 ‘짝퉁’의 차이를 읽어내는 눈을 키우는 방법을 배운 것도 강의를 듣는 즐거움이 되었다. 유난히 유사품이 많은 김홍도의 그림이 모델로 등장했다.


“김홍도가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이유는 그가 작은 차이를 통해 탁월한 효과를 만들어낼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씨름하는 사람들과 관중들의 모습을 그린 ‘씨름’에서는 중앙으로만 쏠리는 시선을 밖으로 돌려주는 역할을 하는 ‘엿장수’를 배치해 관객들의 숨통을 열어주는 동시에 네 면이 꽉 막힌 그림의 화폭을 그림 밖으로 확장시켜주었다. 그의 작품이 명품이 되는 작은 차이다.


‘서당도’도 마찬가지다. 그림 속에서 훈장에게 야단을 맞아 훌쩍이는 아이의 모습을 확대해보면 그 작은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다른 아이들은 옅은 먹 선으로만 그려진데 비해 울먹이고 있는 아이는 옅은 먹선 위에 다시 강한 먹 선을 그려줌으로써 입체감을 극대화 시키는 효과를 냈다. 마치 울먹이는 아이의 어깨가 들썩이는 듯하다. 이 작품을 ‘짝퉁’과 비교해보면 선이 주는 강약의 차이는 명확해진다. 그림에 담지 못한 울음소리를 먹의 강약, 선의 농담으로 담아냈다. 김홍도의 위대한 점이다.


이어서 강좌는 불화가 아닌, 동양화나 현대화를 통한 부처님의 일생 읽기로 이어졌다. 조정육씨는 옛 선비들의 고고한 정신이 담긴 문인화나 초상화 또는 우리 곁의 평범한 이웃들을 그린 그림 등 다양한 작품 속에서 위대한 성인과 맞닿아있는 삶의 공통분모들을 찾아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비록 성인의 그것과 같지는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각자의 삶엔 의미를 부여할 만한 가치와 노력이 들어있으며 그래서 소중하다는 뜻이다.


“김홍도나 정선이 그린 총석정을 보면 같은 곳을 그렸지만 각자의 시선에서 그려냈습니다. 그것이 똑같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들이 위대한 작가로 손꼽히는 이유도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시선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도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자기의 삶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시대의 불국토를 만드는 방법, 우리도 부처님 같이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3주간 달려온 봉은사 인문학 강의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 도심 속 도량에서 열린 인문학 산책은 추위도 잊게 만드는 지성의 향기를 짙게 남겼다. 그 향기를 안고 돌아서는 청중들의 아쉬운 발걸음 뒤로 ‘시즌 2’에 대한 기다림이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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