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과 민주주의
경청과 민주주의
  • 법보신문
  • 승인 2013.12.1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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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 수상자 남아공 만델라 전 대통령이 타계하였다. 그는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목숨을 걸고 항거하여 무려 27년간이나 반국가사범으로 감옥 생활을 하였다. 그렇게 모진 박해를 당한 그였지만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나서 분노와 폭력으로는 국가를 건설할 수 없다며 가해 세력을 보복하는 대신 사면하고 중용하는 대승정신을 실천하였다.


국정원 대선 트위터 글이 2200만 건이 넘는다는 데 검찰은 수사 인력의 한계로 120만 건만 기소했다고 한다. 검찰의 특별 수사를 방해하고 검찰 수장과 특별수사팀장을 경질하는 등 진상을 은폐하려는 권력의 소행이 드러났다. 이에 범종교계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집권층은 이를 종북 세력으로 색깔 몰이한다. 민주주의 횃불을 들고 빨갱이 콤플렉스에서 빠져나온 지 불과 20년도 안 되어 색깔론의 망령이 되살아나 국민정신을 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보수 언론들도 언론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마치 그것이 정론인 것처럼 국민의 바른 관점을 흐리게 하고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색깔콤플렉스는 그것이 국가를 진정 위하는 길이라고 주장하지만 국민정신을 분열시키는 망상일 뿐이다.


얼마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야외 연설 도중, 한인 교포가 항의 구호를 외치자 비밀 경호원들이 체포하려 들었다. 이 때 오바마는 “그 사람은 거기 있어야 된다”며 경호원들을 제지하였다. 얼마나 멋진 장면인가. 진정한 지도자는 권위적이지 않다. 국가정보기관이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국내외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이다. 다만 특정 권력을 옹호하기위해 국가 안보의 미명하에 여론을 조작하고 그것도 사실과 다른 색깔로 덧칠하여 진실을 말하는 상대방을 통제하고 언로를 차단한다면 이는 음산한 정보 정치의 부활이요 민주주의의 퇴보임이 분명하다.


불교의 불교다움은 파사현정이다. 사회적으로는 불의의 어둠을 물리치고 사회정의를 드높이며 안으로는 가짜 나를 주인으로 삼고 사는 삶이 허망한 망상임을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 불교이다. 부처의 마음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한다. 반면 중생심은 그대로 인정하는 법이 없다. 온갖 이유를 갖다 둘러대고 변명하기 바쁘다.

 

가짜 나가 상처받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자아를 보호하고 방어하는 게 중생심의 본질이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진실을 가장하면서 오히려 진실을 말하는 상대방을 공격하려 든다. 대선 불복이나 대통령 하야도 극단의 논리이지만 집권층이 야권과 종교계의 정당한 비판을 경청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중생심의 발로이지 불보살의 마음은 아니다.


만델라 대통령처럼 적대와 보복의 악순환을 끊고 용서와 화해, 나아가 비판 세력마저 중용하여 국민 화합과 통일의 길을 여는 지도자가 한반도에 필요하다. 그러려면 경청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경청이란 성찰이다. 우선 자신을 성찰하고 난 후에 상대방을 성찰하는 것이 참다운 경청이다. 중생심에 휘둘리지 않게 되면 더 이상 특정 지역 특정 계층만 믿거나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 자기 방어에 애쓰지 않아도 되니 적과 아군이 따로 없어 늘 여유롭다. 야권과 성직자들의 쓴 소리에 귀 기울이고 야권의 균형 잡힌 인재를 중용한다면 그 누가 극단적 비판을 하겠는가?

 

▲최훈동 원장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않다. 고통을 방어하는 고질적 경향성이 개인의 쾌락 추구요 정치의 독재임을 통찰해야 한다. 부디 종교인이건 정치인이건 모두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콤플렉스를 극복하여 대승 보살이 되기를 기원한다.


최훈동 원장  muha817@naver.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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