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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미인초(虞美人草)

기자명 박상준

흔들리는 한 송이 풀꽃은
항우와 그 연인 우미인도
찰나적인 존재임 보여줘

우미인에게 홀렸던 것일까. 시향에 취했던 것일까. 기억에 착오가 있었다. ‘우미인초’의 지은이는 범중엄이 아니라 증공(曾鞏)이다. 두분 고인과 독자님들께 사과의 말씀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참에 20행의 장시여서 소개하기가 주저되었던 ‘우미인초’를 읽어본다. ‘고문진보’ 전집(前集)에도 실려있는 시이다.

우미인초(虞美人草) 
                                    증공(曾鞏)
鴻門玉斗紛如雪 (홍문옥두분여설)
十萬降兵夜流血 (십만항병야류혈)
咸陽宮殿三月紅 (함양궁전삼월홍)
霸業已隨煙燼滅 (패업이수연신멸)
剛强必死仁義王 (강강필사인의왕)
陰陵失道非天亡 (음릉실도비천망)
英雄本學萬人敵 (영웅본학만인적)
何用屑屑悲紅粧 (하용설설비홍장)
三軍散盡旌旗倒 (삼군산진정기도)
玉帳街人坐中老 (옥장가인좌중로)
香魂夜逐劍光飛 (향혼야축검광비)
靑血化爲原上草 (청혈화위원상초)
芳心寂寞寄寒枝 (방심적막기한지)
舊曲聞來似斂眉 (구곡문래사렴미)
哀怨徘徊愁不語 (애원배회수불어)
恰如初聽楚歌時 (흡여초청초가시)
滔滔逝水流今古 (도도서수유금고)
漢楚興亡兩丘土 (한초흥망양구토)
當年遺事久成空 (당년유사구성공)
慷慨樽前爲誰舞 (강개준전위수무)

홍문의 연회에서 범증의 옥두가 눈처럼 깨어지니, 진나라 10만의 항복한 병사들이 밤에 피를 쏟아냈네 / 함양의 아방궁이 3개월 붉게 타는 동안에, 항우의 패업의 꿈도 치솟는 불길 따라 연기처럼 사라졌네 / 강하게 굴면 반드시 죽고 어질고 의로워야 왕 되는 법, 음릉에서 길 잃은 것 하늘이 망하게 한 것 아니라네 / 영웅은 본래 만인을 대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인데, 어찌하여 좀스럽게 붉게 치장한 여인위해 슬퍼했던가 / 전군·중군·후군이 모두 흩어지고 깃발마저 쓰러지니, 옥휘장 속의 어여쁜 여인 앉은채로 죽어갔네 / 향기로운 혼백이 밤마다 검광따라 날아다니더니, 푸른 혈흔 변하여 언덕의 풀꽃 되었구나 / 꽃다운 마음 쓸쓸하게 싸늘한 꽃가지에 붙었으니, 옛노래 들려옴에 눈썹을 찌푸리는 듯 / 슬픈 원한 품고 서성이며 시름에 차 말없으니, 흡사 초나라 노랫소리 막 듣고 놀랐을 때와 같아라 / 도도히 물처럼 흐르는 세월 옛적에 흘러가서, 한나라 초나라의 흥망성쇠 모두 언덕 위의 한줌 흙 되었고 / 그 당시의 옛날일 부질없게 된지 오래거늘, 저 꽃은 술잔 앞에서 비분강개한 마음으로 누굴위해 아직도 춤추는가 /

시인은 지금 우리에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한 송이 풀꽃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활동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를 끝부분의 내용부터 음미하면서 거꾸로 장면 장면을 따라가보면 패왕별희의 소재인 항우와 우미인의 애틋한 이별이 한 떨기 풀꽃의 조연에 불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별의 시발점이 되고 있는 홍문의 연회도 긴박감 넘치게 펼쳐졌던 검무(劍舞)와 한고조의 극적인 탈출과 분을 이기지 못해 옥두를 내려쳐 산산조각 냈던 범증의 역할도 우미인초라는 풀꽃이 되어 바라보면 그저 부질없이 흘러가는 배경화면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일본의 어느 선사는 아침이슬 한 방울 속에서 우주 전체를 본다고 하였다. 이 시에 등장하고 있는 숨어있는 주어인 한 송이 풀꽃은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나라 아이들 가수 못지않게 가무에 능했던 우미인도 보여주고 그녀의 님이었던 항우도 찰나에 사라지고 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런, 내가 지금 공화(空花)의 꽃잎이 몇장인지 세어보다가 잊어버려서 다시 세어보고 또 세어보고 있구나. 우미인초는 꽃잎 하늘하늘거리는 개양귀비 꽃이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29호 / 2014년 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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