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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들의 이중 잣대

육류(肉類)는 인간의 미각에 대한 끊임없는 유혹이다. 이에 반해 불교에서는 육식보다는 채식을 권장한다. 채식의 실천여부에 따라 수행의 청정도를 평가할 만큼 육류를 삼가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는 자비정신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가 막상 채식을 실천하려다 보니 채식에 대한 저항이 불교인들 사이에서도 만만하지 않았다. 부처님도 고기를 먹었다느니, 식물도 생명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먹냐느니, 건강을 위해서 고기를 먹어야 한다느니, 고기를 안 먹으면 남들을 불편하게 한다느니 등등 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육식에 대한 논란은 불자들의 교리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고기를 먹지 말라는 불식육계(不食肉戒)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그 밖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도 한국 불자들은 자신의 편의에 따라 불교를 자의적으로 믿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예를 몇 가지만 들어보자.
대승불교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소승불교를 폄하하면서도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는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탈세속을 내세우며 세상을 등지고 지내는 것을 청정한 수행이라고 칭송하는 것이다. 또 말로는 대승을 강조하면서도 대중을 불교와 괴리시키는 난해한 한역경전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다. 일부의 불자들은 부처님이 고기를 먹었다는 이유를 들며 고기를 먹지 말라는 대승계율을 어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처럼 한국의 불자들은 소승과 대승의 교리를 편의에 따라 선택해 자기의 행동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뛰어난 재주가 있다.

부처님 당시는 탁발문화로 오늘날 현실과는 너무 달랐다. 주는 대로 받아서 먹는 걸식인 것이다. 그런데도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채식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부처님이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을 전가의 보도처럼 끌어들여 말한다. 부처님은 요즘 사람들처럼 맛과 건강을 위해 고기를 먹지 않았다. 또 부득이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권장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때면 자신을 부처님과 동격으로 끌어 올려 잘못된 행위를 합리화하기에 바쁘다.

어느 생명체든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없다. 특히 동물들은 네 발 달린 짐승에서부터 나비나 잠자리 등의 곤충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을 상황이 되면 혼비백산하며 달아난다. 본능적으로 고통과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는 다른 생명체의 입장이 되어,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불살인계(不殺人戒)를 넘어 불살생(不殺生)을 중요한 계율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도 우리의 손길이 뻗쳐야 할 자비의 영역이다. 그들 모두가 생태계의 구성에 절대적로 필요한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부처님은 의도적인 살생을 금지하고자 불식육계를 제정한 것이다.

어느 종교치고 이상이 높지 않은 종교는 없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종교는 그 이상이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윤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불교는 그렇지 않다. 온 생명체를 하나의 ‘나’로 생각한다. 불교의 자타불이(自他不二) 사상에서는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생명체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상이 높다한들 실천이 없으면 그것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갈수록 악화일로에 있는 환경문제와 육식문제를 결부시켜 생각해보면 불식육계의 실천은 인류를 비롯한 뭇 생명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자비행의 실천이다. 육식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면 한 달에 며칠이라도 고기를 먹지 않는 날을 정해놓고 실천을 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은 아닐까. 불자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남궁선 파라밀 요양병원장 namgung0302@naver.com

 

[1232호 / 2014년 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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